2015.10.25 10:17

무한도전 바보전쟁 세상 모든 헛똑똑이들에게 던지는 바보들의 외침

바보전쟁을 선언한 무도의 자체 기획안은 의외의 변수를 만들며 흥미로운 재미를 던졌다. 상식 대결을 통해 선발된 '바보 어벤져스'의 위엄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였을 뿐이었다. 그들이 진정한 바보인지 확인을 마친 이후 준비된 것은 뇌섹남들과 대결을 벌이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바보들과 헛똑똑이의 대결;

다중지능이론을 검증하게 한 무도의 바보전쟁, 편견을 깨면 세상이 보인다

 

 

 

 

편견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무한도전은 새로운 재미를 던졌다. 상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모든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상식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누가 어떤 기준으로 '바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궁금하게 한다.

 

홍진경, 은지원, 솔비, 심형탁, 간미연, 채연, 김종민, 박나래와 무도 멤버인 하하와 광희가 하나가 되어 '바보 어벤져스'를 구축했다. 왜 그들이 세상에 바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을 거치게 되었다. 예능이라는 틀 속에서 그들의 바보 검증은 때로는 웃기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방송에서 순백의 남자 심형탁이 보여준 '미니언즈' 노래와 춤은 모두를 경악하게 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상식을 파괴하는 심형탁의 그 기괴한 모습이 곧 <무한도전 바보전쟁 순수의 시대>를 대변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왜 심형탁의 '미니언즈' 공연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었을까?

 

장기자랑이나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식의 요구들은 예능에서 자주 접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정해진 형태와 규범과 틀 속에서 소화되는 것이 일상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들도 좋아한다. 예측 가능성과 그 가능성에서 최대한 자신을 보여주는 형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이라는 틀 속에서 심형탁의 장기자랑은 분명 파격이었다. '바보전쟁'의 핵심 멤버가 된 '바보 어벤져스' 마저도 심형탁의 이런 행동에 부끄러워하거나 도대체 이건 뭔가 하는 의구심을 보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외계어에 이상한 춤으로 이어지는 심형탁의 행동은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났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이상했다.

 

 

장기자랑을 하는 무대에서 누가 그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 이상한 행동으로 혐오감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노래를 선택하고 춤을 춘다 해도 그게 이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이유로 그 대상이 부끄럽고 이상하다고 지적질을 받는 상황 자체가 <무한도전 바보전쟁 순수의 시대>가 지향하고 싶은 모든 가치를 품고 있었다는 점에서 심형탁의 이 행동은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심형탁의 이런 돌발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연예계 뇌섹남이라고 불리는 이들과의 대결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물론 그들이 겨루는 퀴즈 대결 한 번으로 뇌순남녀와 뇌석남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외형적인 학벌과 시험 과정의 통과 유무가 그들을 규정할 수도 없음은 분명하다. 이런 모호한 기준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할 수밖에 없음을 무도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형탁이 '미니언즈'를 부르며 모두를 경악하게 했듯, 세상이 기준으로 삼아 모두가 그 안에서 살도록 강요하는 상식이라는 틀 속에서 보면 '바보 어벤져스'에 속한 이들의 엉뚱함들은 모두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일반적인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특정한 사안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들은 마치 '기인'처럼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재미있는 이론을 제시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지능지수 검사를 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등 다양한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IQ라고 불리는 지능지수 검사를 해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정하는 것이 현재의 바보와 천재의 기준이다.

 

 

멘사라는 곳은 특정한 수치 이상의 지능지수를 넘어서는 이들에게 회원 자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멘사회원은 마치 지구상 가장 위대한 종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지능지수(다층적인 검사 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를 통해 스스로를 차별하고 천재라 부르는 이 현실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기준을 통해 인간의 지능을 판단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그런 단순한 지능검사에 반박해 인간은 IQ와 같은 한 가지 지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지능이 있다는 이론을 폈다.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펼친 '다중지능이론'에는 언어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공간 지능, 신체-운동적 지능, 음악 지능, 개인 간 지능, 개인 내 지능, 자연주의적 지능, 실존 지능 등 9가지 지능으로 인간을 평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저 단순한 하나의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지능 등이 존재한다는 이 이론은 흥미롭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학교 공부를 잘 한다고 사회에서 잘 살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인간관계가 좋거나 뛰어난 장사수완을 발휘해 큰 성공을 거둔 이들도 많이 보고는 한다. 지능지수가 평범한 이들 역시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해 잘 사는 이들이 태반인 모습들을 보면 IQ 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기준인지 알 수 있게 한다.

 

 

<무한도전 바보전쟁 순수의 시대> 역시 이런 인간들의 다중지능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학술적인 접근을 통한 다큐멘터리로 풀어가는 방식이 아닌 예능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구라는 잡식성 지식에 강하고 전현무는 언론고시 3관왕에 재벌 회사에도 동시 합격을 했던 공부를 통한 지식은 모두를 능가한 가치를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이 허무하게 바보라 손가락질 받던 이들과 대결에서 패하는 과정은 단순한 통쾌함 이상의 무엇이 존재한다.

 

그들의 지식과 다른 지식의 대결은 결국 그 누구도 상대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유용한 지식과 기술은 존재한다. 전현무의 지식이 바로 사회에서 타인들에 비해 보다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현무 만이 제대로 된 삶을 산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역시 공부 지식을 벗어나서는 누군가에는 바보 같은 모습들을 자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 머리가 있고 세상을 사는 머리는 다르다는 어른들이 이야기도 이번 무도 특집을 잘 증명한 셈이다. 인간들의 지능에도 수많은 다양성들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잡은 누군가는 한국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서 하나의 역사만 가르치겠다고 강요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형태의 고민들이 담겨야만 한다. 힘 있는 자가 강요하는 역사란 곧 그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역사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국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가 '바보'다. 그저 헛똑똑이처럼 스스로를 꾸미고 위안을 삼기 위해 '바보'라는 본질을 '헛똑똑'이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이번 특집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가치는 편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는 취지이기도 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 이번 특집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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