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거위의 꿈'을 스스로 보여준 인순이의 멋진인생

by 자이미 2009. 7. 2.
반응형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나라에서 혼혈아 더욱 흑인 혼혈아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편견과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이미 상상할 수있는 그 이상이었을 듯 합니다. 그렇게 인순이는 1년이나 고사하고 있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1.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가수생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우연하게 찾아온 매니저. 인순이의 가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던 매니저에 의해 발굴된 그녀는 '희자매'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가수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짧았지만 너무나 화려했다는 그녀의 '희자매' 활동은 매니저와의 불협화음으로 일찍 막을 내리고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번째 앨범을 내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대표곡으로 기억되는 '밤이면 밤마다'는 그녀를 일약 가요계의 스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인순이의 멋진인생


우연하게 시작되었지만 그녀가 가진 가수의 자질은 그렇게 발현되어졌습니다. 아주 우연하게 찾아왔던 가수로서의 삶. 아버지는 없고 엄마와 이모, 동생만이 있는 집에서 스무살이 된 그녀는 생활전선에 나서야 하는 절박함에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자신만이 가족을 먹여 살릴 수있는 노동력을 가진 상황에서 찾아온 가수 제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가수로서의 삶은 시작되었고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슬픈 영혼은 화려하게 비상할 수있었습니다. 우연하게 찾아왔지만 스스로 기회를 저버리지 않고 노력한 그녀였기에 성공할 수있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요.

2. 피처링으로 시작한 제 2의 가수인생

국민 가수라는 칭호는 함부로 받을 수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이런 칭호를 던져주지도 않지요. 화려한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한 인순이이지만 그렇게 평탄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인순이와 리듬터치'라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개인 백댄서들을 대동하고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던 인순이에게도 슬럼프라는 것은 찾아오고 이는 다른 가수들보다도 더욱 힘든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김완선, 이주노, 박철우등이 백댄서로 활동했던 리듬터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댄서로서 많은 것들을 남겨주었었지요. 그런 그녀가 자신을 발굴하고 키워주었던 매니저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김완선 때문이었다고 고백을 하지요.

김완선의 이모이기도 했던 그 매니저는 "너는 지는해이고 완선이는 뜨는 해"라는 말로 충격을 주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무척이나 아프게 다가왔지만 자신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준 고마운 충고였다고 담담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 그녀를 다시 최고의 가수로 발돋음 할 수있도록 만든 거은 피처링과 후배 가수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가수보다는 제작자로 더욱 알려진 박진영의 제안으로 소울 음악에 발을 들여놓았고 조PD의 제안으로 그의 노래에 피처링을 하며 다시 한번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공연 피날레 곡으로 선택한 그 문제의 노래. 카니발의 '거위의 꿈'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축약한 듯한 이 노래는 인순이라는 이름을 드디어 모든 이들이 편견없이 사랑하는 이름으로 바꿔놓았습니다.

3. 거위의 꿈을 전설로 만든 인순이

카니발의 이 곡은 무척이나 훌륭한 곡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인순이가 리메이크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온 국민이 흥얼거릴 정도의 노래가 되었을까요?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거위의 꿈'의 가사와 인순이라는 가수의 삶이 묘하게 일치하며 깊은 울림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쁘지도 않고 너무나 다른 피부와 편견으로 둘러쌓인 최악의 조건에서 태어난 그녀 인순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주홍글씨와도 같은 낙인을 물리치고 화려한 비상을 했습니다. 그 비상 하는 과정에서 숱한 고생과 눈물을 어찌 상상할 수없었을까요?

자신에게 찾아온 인생의 최고의 순간에도 망설여야만 했던 여인. 그러나 죽음 일보직전까지 가서야 자신을 되돌아 보고 흥쾌하게 결혼을 승낙했던 그녀는 고등학생 딸을 둔 행복한 주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할 수있을 만큼 그녀는 고단한 삶을 잘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상상할 수없었던 '거위의 꿈'을 현실로 바꿔놓았습니다. 절대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꼽슬머리의 흑인 혼혈아 인순이는 우연하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최고의 가수가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어쩌면 인순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고 이야기할 수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최선이 아닌 그녀에게는 차선이었지만 그것이 인생을 바꿔놓고 자신의 삶 모두를 변화시켜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은 그 누구라도 '거위의 꿈'이자 가능한 꿈일 수있음을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다른 성공한 연예인들과는 달리 너무나 많은 약점을 가진채 살아야만 했던 그녀가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줄 것입니다. 실패는 있어도 절대 좌절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렇게 최고의 가수가 되어있었습니다. 30여년 동안 해왔던 가수로서의 삶. 한때는 자신에게 비수와도 같았던 말을 했었지만 자신을 가수로 만들어준 고인이 된 매니저를 위해 30주년 콘서트에서 눈물로 감사를 드릴 줄 아는 그녀의 '거위의 꿈'은 단순한 노래이상의 의미를 가진 삶의 지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은퇴없이 영원히 노래하는 디바로서 우리곁에 남아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유익하셨나요? 구독클릭 부탁합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방송연예드라마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