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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공부의 신에는 공부는 있고 교육은 없다

by 자이미 201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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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방송되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꽃보다 남자>의 성공을 재현하기 위한 KBS의 노력은 일본 만화 원작 드라마인 <공부의 신>으로 이어졌습니다.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는 그들의 전략은 반절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보입니다. 공부는 있지만 교육은 사라진 <공부의 신>의 문제는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이었습니다.

공부만 있고 교육은 사라진 현실

1. 공교육의 사교육화

화제에 오른 드라마에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고 이슈를 위한 이슈 만들기는 일상입니다. 당연하게도 <공신>에도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나돌고 나름대로의 평가와 예측, 비난까지 이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곁가지처럼 취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변호사 출신인 강석호가 문제의 학교에 파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의 목적과 이사장의 계산이 맞아 떨어져 진행되는 것이 바로 최고 대학을 가기 위한 특별반이었습니다. 엉망진창 학교는 학생이나 선생들도 모두 최악입니다. 망조든 공교육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이 학교에서 다섯 명의 학생을 선택해 특별 교육을 진행합니다.

공교육에 사교육을 접목시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교육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메달리라는 현 정권의 교육 정책과 다름없습니다.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면 이사장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킬 수 있고 변호사는 자신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노력해 최고의 학교에 들어간다면 이 역시 윈윈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들이 자의적인 선택을 통해 자아 성취를 이루고자 했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춤과 노래에 남다른 능력을 보인 찬두나 패션에 남다른 현정, 음식점 아들 봉구 등은 공부로 승부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능력을 특화시켜 대성 할 수도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꿈이나 자질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고 학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대학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뻔한 어른들의 거짓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공신>에는,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시각이나 아이들을 위한 배려보다는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고 이에 부응하는 일꾼을 키워내고자 하는 욕심만이 보입니다.
학교에서 교육이 사라지고 공부만 남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학창시절은 있었기에 자신을 추억하면 공교육의 폐단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학교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정년까지 보장된 교사라는 직책은 사명감보다는 안일함이 우선이고 학생보다는 실적이 앞섭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학생이 서울대 경영학과는 부족하고 그 보다 낮은 학교의 관련 학과는 입학이 가능합니다. 학생을 위하고 학생의 미래를 위해선 당연하게도 학생이 원하는 학과를 추천하고 보내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녔던, 그리고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서울대 커트라인을 보며 학과를 찾습니다. 

일단, 학교에 입학해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다니며 과를 바꾸던지 다시 시험을 보는 방법들도 가능하다며 서울대 입학에 목을 멥니다. 서울대 입학생 수가 곧 학교를 빛내는 가치로 취급 받는 사회에서 이제는 법적으로 규제하는 플래카드를 학교에 내거는 행위들은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교육이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합니다.

그들에게 학생들은 그저 자신들 사회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에 불가할 뿐입니다. 학생들의 적성과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평가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공교육의 미래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습니다. 안일함 속에서 평생 똑같은 교수법으로 변치 않음을 자랑하는 우리의 선생님들에게서 교육은 고사하고 공부의 열정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것일까요? 공교육 장소에 사교육 선생들을 모아 쪽집게 과외를 시키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목표는 단 하나 뿐입니다. 목표한 대학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크게 문제될게 없다는 그들의 논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2.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처할 수는 없다

사교육 열풍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MB방송에서 사교육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방송을 제작해, 교육에 민감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공교육의 불합리함을 사교육이 대체할 수 있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다섯 명이 최고의 대학에 합격하면 이 학교를 오기 위한 학생들이 줄을 서고 그렇게 된다면 학교에도 이득일 수밖에는 없다는 그들의 논리 속에 최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다수의 학생들에 대한 고민은 없습니다.

교육이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학교를 세우고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에서 학교는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다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공간인 학교가 바로서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철학이 부재한 사회를 만든 건 교육은 없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찾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굳이 고등학교에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학교는 타인의 시선을 위함이고 대입을 위한 교육은 사설 학원에서 이뤄지는 상황이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사교육을 시간으로 제약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사교육을 규제하면 할수록 소수의 가진 자들만이 혜택을 받는 악순환이 지속될 뿐입니다. 우린 이미 상고 출신 대통령이기에 무시당해야만 하는 사회를 살아왔습니다. 공공연하게 학연이 지배 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교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경제는 후퇴하고 가진 사람만을 위한 격전장이 된 사회에선 모든 이들이 보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라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이타적인 행동은 바보로 취급 받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을 저질러도 용서가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정권을 위해 수많은 국민들을 살육한 전두환에게 성공한 쿠테타는 쿠테타가 아니라고 판결하는 나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비리를 온 몸으로 채득하고 가훈으로 삼고 살아가는 대기업 사주가 "국민들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저 결과만 우대받는 사회에서는 <공신>이 추구하는 교육이 해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라는 본연의 임무는 상관없이 특정한 학교를 위한 맞춤식 교육만이 필요하다면 학교 시스템을 학원 시스템으로 바꾸면 되겠지요. 엄청나게 늘어갈 수업료를 감당할 수없는 서민들은 교육도 받아서는 안 되는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세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교육이 공교육으로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면 더 이상 공교육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대학지상주의 사회에서 공교육의 합리화를 외치는 것만큼 무모한 일도 없습니다. 학벌지상주의를 파괴하고 능력과 자질을 우대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공교육의 몰락과 사교육의 대체 현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공부의 신>에는 교육은 사라지고 목적을 위한 맞춤식 공부만이 있는 소수 정예 학원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에 부화뇌동해 공교육의 사교육화를 칭찬하는데 열을 올리는 일부 언론들의 무뇌 적인 행동들도 씁쓸하기만 합니다.

많은 이들은 TV속 연예인과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회를 지적하곤 합니다. 정치적인 좀 더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한 고민들이 있어야 하는데 왜 많은 이들은 말초적인 재미만을 전달하는 그들에게 열광하느냐고 자문합니다. 재미있게도 그곳에선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그곳에선 자신이 가진 실력과 노력이 그나마 진솔하게 대접 받는 사회입니다.

사회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학벌 중심에서 벗어난 그들의 모습에 열광하는 것이 단순한 유희만을 위함이라 치부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은 학교와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신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동년의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달콤한 이야기들로 시선을 잡아 둔 채 잠재의식 속에 대학만을 위한 공부, 결과를 위한 삶만을 강요하는 <공부의 신>은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잔혹한 동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워 고가의 교복을 팔아대던 업자들과 <공부의 신> 제작진들이 다른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바꾸려 노력한다면 가시적으로 성과들은 나타날 것입니다. 삭막한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감성이 풍부한 사회로 바꾸는 역할은 우리의 몫입니다. 스스로 버린 권리를 찾아 조금씩 바꿔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섬뜩하기만 합니다.

공부하는 기계를 만드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발굴하고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는 교육. 그런 교육을 꿈꾸는 것이 무모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공부의 신>은 목적을 위해 과정을 생략하는 어른들의 시각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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