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6. 06:24

추노 24회-업복이와 대길의 죽음으로 만든 '희망'이 진리다

누구나 예측한 죽음도 이 정도면 행복합니다. 죽음이 단순한 한 인생의 종결이 아닌 남겨진 자들을 위해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살았었던 세상에 대해 남겨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일 테니 말입니다. 그들은 죽었기에 더욱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대길이 태양을 향해 활을 쏘듯이 말입니다.

죽음도 그들에게는 희망이다


1. 업복이의 죽음이 남긴 희망

24회 동안 많은 죽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들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한 제작진들의 노고가 모두 담긴 마지막 회였습니다. 어설픈 희망가가 아닌 죽음으로 들려주는 희망은 강한 울림으로 전달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피디가 밝혔듯 서로 다른 엔딩을 통해 새로움과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의미 있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업복이와 초복이-대길이와 송태하, 언년이-짝귀와 최장군과 왕손이-설화' 등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사이에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과 삶 모두 희망에 대한 갈구가 존재했기 때문이지요. 피디가 각기 다른 엔딩을 준비했듯 어떤 엔딩이 자신의 것인지에 대한 호불호보다 의미 있었던 건 모두 하나의 가치를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추노>를 보면서 가장 애정을 가졌던 업복이의 죽음은 그 허구의 극대화가 주는 강렬함이 최고였습니다. 양반 놈들의 농간에 홀려 자신들의 꿈을 저당 잡히고 몰살을 당해야만 했던 천민들. 그렇게 죽어가는 상황에서 끝봉이가 업복이에게 건넨 마지막 한 마디는 가슴을 울립니다. "무섭다. 저 놈들 정말 무서워"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무서운 그놈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초복이와 함께 재미있게 살라는 끝봉이의 마지막 당부와 달리 이미 서로에게 희망을 이야기한 업복이는 세상에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리는 최후를 준비합니다. 총을 들고 궁궐 안으로 들어서는 업복이는 자신들의 이상을 짓밟고 희망을 담보 삼아 죽음으로 내몬 주범들에게 복수를 합니다.

노비들에게 희망이었던 그 분의 배신과 그 분을 만들어낸 좌의정까지 업복이는 자신들의 희망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결자해지를 해줍니다. 그의 마지막 장면이 누군가의 시각으로 보면 대중을 선도하는 포퓰리즘과 같다고 이야기되겠지만, 이는 자신의 죽음으로 민초의 삶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위대한 죽음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살아서 할 수 없는 일을 죽어서 할 수 있음을 우린 2009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욱 가슴이 저려오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해 남겨진 수많은 노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 속, 아니 뼈 속 깊이 세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평소 업복이의 노비답지 않음을 탐탁하게 보지 않았던 나이든 노비의 '자각'은 불끈 쥔 두 주먹에 희망이 담기고, 이 희망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로 유행처럼 되어버린 '자각'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업복이는 죽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조선비와 좌상의 죽음을 목도한 살인귀 황철웅에게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만들었던 업복이의 최후는 <추노>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가치였습니다.

2. 사랑의 가치를 극대화한 그들이 아름답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이야기를 다룬 <추노>는 마지막까지 그 집요한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대미를 장식할 수밖에 없는 건 대길과 송태하, 언년이일 수밖에는 없지요. 그리고 그들을 쫓는 황철웅의 마지막 대결에서 누가 죽고 살아남느냐의 문제는, 어느 순간 경계를 넘어서고 무한한 희망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길은 죽음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살아남은 송태하와 언년이는 민초들에 묻혀 희망을 설파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남겨진 철웅은 업복이로 시작된 '자각'이 대길의 죽음으로 완성되며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신의 부인을 껴 앉으며 오열합니다. 그의 눈물 속에는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였던 병든 아내에 대한 사랑과 후회, 그리고 죽어간 이들에게 배운 '희망'이 섞여 있었습니다.

신분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송태하도 혜원이든, 언년이든 상관없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위대한 죽음들을 통해 얻은 '자각'의 힘일 것입니다. 청나라 행을 버리고 민초들 속에서 희망을 꿈꾸는 송태하와 언년이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대길을 품에 앉고 눈물의 가락을 부르는 설화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안타깝지만 그렇게 자신의 품에서 자신이 만든 옷을 덮고 죽어간 대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설화이지만 그에게는 덧없는 사랑을 영원한 사랑으로 세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던 <추노>는 마지막에 '사랑'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함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 사랑했기에 아름다웠습니다.

3. 떠오르는 해는 우리의 것

은실이와 함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초복이가 건넨 해가 누구 것이냐는 질문과 답변 속에 <추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은실아. 해가 누구 것인지 알아?"
"누구 건데요?"
"우리 것"
"왜요?"
"왜냐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저항의 상징이었던 총을 들고 희망을 이어갈 은실이와 함께 해로 상징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초복이의 모습은 <추노>에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마지막 그들의 대사를 들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가지지 못한 해에 대한 갈구 때문이겠지요. 죽은 대길이가 떠오른 해를 사냥하는 모습은 죽어간 이가 남겨둔 절절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세상에 메여있는 모두가 노비"라는 대길의 이야기와 "세상이 만만하면 내가 숨어 살겠냐"는 짝귀의 씁쓸한 한마디는 모두 우리의 모습이라 더욱 뭉클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오포교가 업복이의 죄를 짊어지고 문초를 당하지만 서민들의 피를 빨던 오포교를 대신한 육포교는 한 술 더 떠 서민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렇듯 변하지 않고 더욱 정교해지는 권력자들의 수탈은 지금도 여전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가'를 놓을 수 없는 건 절망하면서 살기에 우리의 삶이 너무 짧기 때문이겠지요.

마지막 대길이가 태양을 향해 희망을 쏘듯 그 희망이 담긴 태양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희망을 갈구하는 우리(초복이와 은실이로 상징되는)의 몫일 것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따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추노>는 마지막에 강렬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업복이의 통쾌함과 초복이의 당당함, 대길이의 희망가는 <추노>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들이겠죠.

어설픈 자만심이 만든 '죽음'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는 <추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 이상의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난무하는 죽음들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곽정환 피디는 그의 전작인 <한성별곡-정>과 같은 메시지를 이야기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말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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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7
  1. 10 2010.03.26 10:47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 이게 아직 없지만 앞으로 이룰 희망의 저 태양은 우리꺼 란건가요.

    전 통상 마지막을 안보는데 오랜만에 봤네요. 아이리스도./ 누군 휑하니 떠난자리가 좋다고 한다지만ㅋ.
    추노에서 가장 스릴 있는게 전 업복이의 총쏘는 샷이였어요. 총구 세우고 바삐 소지하고 댕기고 쏘는 그. 피디도 그걸 즐기는거 같아요. 해서 업복의 만화같은 액션으로 좌의정까지 남김없이 쓸어내 버려주네요.
    대길 태양샷과 예고 후 최장군 장면이 또 있었다면서요ㅎ. 어쨌든 추노2 가능성은 낮지만 존 껀수라서 걸어봐야겠네요, 1년이란 시간이 길어서글치.

    • Favicon of https://dramastory2.tistory.com BlogIcon 자이미 자이미 2010.03.26 13:24 신고 address edit & del

      희망이란 어느 소수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란 것과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은 우리 곁에 있으니 절망하지 말자는 메시지였지요^^;;

  2. 2010.03.26 22:45 address edit & del reply

    보고나서 일주일은 기분 안좋았던 지붕킥 결망에 비해 성공한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태양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은 정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뻥 뚫리더군요..

    황철웅에 대한 자이미님의 글을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대.. 항상 자신의 머리속에 2인자에 있었고, 그것을 탈출하기 위해 뇌성마비 아내를 얻고도 2인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황철웅.. 그리고 증오했던 아내의 무릎에서 울고마는 황철웅.. 마지막에 '너까지..너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라는 대사를 듣고 저번화까지 비난했던 황철웅이 불쌍하게 느껴지더군요.
    장혁만큼이나.. 어쩌면 장혁보다도 죽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살려둔 제작진은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이렇게 썼어도 사실 비참하다고 말할정도로 비참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할수 있는사람은 장혁정도??)

    지붕킥을 매개로 들어오게 된 자이미님 블로그도 이제 드라마쪽으로는 들어올 일이 없겠내요. 지붕킥 80회 정도부터 자이미님 리뷰를 보게 됬는데, 추노까지 같이 이어서 쭉 보게 되더라구요. 정말 이렇게 리뷰를 잘 쓰시는 분은 처음이였습니다. 여러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글이라도 보러 가끔 들릴테니까 항상 열어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결말때문에 하나는 명작으로 하나는 망작으로.....명작을 하나 버린거 같아 기분이 꿀꿀합니다..

    • Favicon of https://dramastory2.tistory.com BlogIcon 자이미 자이미 2010.03.27 07:09 신고 address edit & del

      음님의 말씀처럼 결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죠. 황철웅을 살려둔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쳐줘야 하지요. 말씀처럼 평생 일인자가 될 수 없지만 일인자가 되고자 했던 그가 죽음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아내의 품에 안겨 통곡을 하는 장면은 <추노>를 의미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찾아오시면 되죠. 같은 죽음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렇듯 다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랄께요^^;;

  3. 당신 마음 속에 흐르는 강 2010.03.27 00:56 address edit & del reply

    위에 음 님 말씀처럼 정말 결말로 이렇게 두작품(<추노>와 <지붕킥> )이 극명하게 갈릴 줄 몰랐어요. 사실 저는 <지붕킥>은 마지막회 전까지는 아주 애정을 가지고 보면서 명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회를 보고 그 전회들을 포함해 <지붕킥>에 정이 뚝 떨어졌답니다. 한편 <추노>는 그 반대로 "전반적으로다가" ^^ 훌륭하기는 해도 <한성별곡>에 비해 주제 부각 면에서 많이 모자란다고 좀 아쉬워했는데 마지막회가 그 부분을 훌륭히 만회해주면서 작품 전체가 살아났다는 생각입니다. 스뎅김의 테러, 으, 진짜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치미네요. (125회가 마지막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곽정환 PD는 차기작도 많이 기대됩니다. 이렇게 마지막회의 비중이 어마어마할 줄이야.

    • Favicon of https://dramastory2.tistory.com BlogIcon 자이미 자이미 2010.03.27 07:13 신고 address edit & del

      모든게 그렇다고 하듯 마무리가 중요할 수밖에는 없죠. 님의 말씀처럼 초반의 흥겨움과 중반의 아쉬움을 넘어 값진 마무리로 <추노>는 많은 이들에게 오랜시간 남겨질 작품이 되었네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랄께요^^;;

  4.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10.04.11 04:33 address edit & del reply

    마지막회까지도 정말 재밋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