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8. 07:43

작은 드라마의 무한한 가능성 보인 '런닝, 구'

4부작 <런닝, 구>가 오늘 3, 4 부가 연속 방송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방송될 <로드 넘버원>의 방송 시기 조절을 위해 마련된 특집 4부작 두 편은 단막극의 부활을 점칠 수 있는 좋은 실험대가 되었습니다.

단막극이여 부활하라!



단막극의 선두주자이자 가장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MBC의 베스트극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폐지된 이후 KBS는 올 해부터 다시 단막극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KBS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24편의 단막극을 선보인 그들은 현재까지 선보인 4편만으로도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기존의 드라마와는 달리 단막극이 주는 빠른 전개와 명확한 주제는 함축적인 메시지를 통해 잘 표현해주며 단편 드라마의 힘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모두 담아내야 하는 단막극의 특성상 군더더기 없는 진행은 필수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함축적인 의미들을 요구합니다.
이는 늘어지는 내용 전개와 그런 과정 속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태의연한 전개가 단막극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동안 작가와 연출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극적 장치들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긴 여운을 남기고 곱씹을 수 있도록 만드는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일 수밖에는 없지요. 더욱 막장이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막장을 덮기 위해 만들어낸 선한 동작들이 마치 좋은 드라마인양 포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막극은 청정 드라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쾌한 재미를 던져줍니다.

KBS가 본격적인 단막극 시대를 다시 열었다면 MBC는 가정의 달과 후속 대작을 이어주는 실험적인 드라마 편성을 선보였습니다. 4부작 특집 드라마가 바로 그것이지요. 신성일과 하희라가 출연했던 <나는 별일없이 산다>에서는 70대 노인이 암 선고를 받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노인의 시각은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고민들을 던져주었지요.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알고 마지막으로 느끼게 되는 사랑에 대한 간절함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3, 4부 연속 방송으로 마무리된 <런닝, 구>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였습니다. 70대 노인의 사랑과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다르면서도 닮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멋진 작품이 이토록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듯 <런닝, 구>는 달리기를 청춘에 비유해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이나 세련되었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죽마고우들이 불행한 사고를 통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들에게는 허물기 힘든 벽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성장 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를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으로 담아낸 <런닝, 구>는 백성현, 박민영의 연기와 멋진 연출과 극본으로 더욱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적은 등장인물들이지만 그들 간의 관계들을 촘촘하게 엮어내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결국 청춘은 도전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들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항상 노력과 비래하는 것도 아니지요.

결과가 나쁘다고 그들이 노력을 못했다거나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지요.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은 상황에서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그에게 '달리기'는 억눌렸던 청춘을 표출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잘 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대구의 말에 코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방법은 있는데 방법이 없어. 달리는데 방법은 없다. 뚜벅뚜벅 정직하게 달리는 것. 마음속에 있는 나쁜 것들을 모두 비워내고 달리면 최고가 될 수 있어" 

이는 달리기 실력을 늘리는 방법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거짓된 삶과 과도한 욕심으로 마음을 졸이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빨리가기 위해 오버페이스를 보이면 도중에 쓰러져 버릴 수밖에 없는 달리기처럼 자신의 페이스대로 뚜벅뚜벅 정직하게 달리다보면 자신이 목표한 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런닝, 구>에서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특별한 주제였습니다.

<런닝, 구>는 4부작 특집 드라마로 끝이 났지만 단막극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청춘과 달리기를 하나로 묶여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방식은 짧은 드라마가 아니면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긴 드라마, 수백억을 들인 드라마들만 존재한다면 이 역시 지겨울 겁니다.
장편 드라마가 있으면 단편 드라마도 필요합니다. 수백억을 들인 드라마가 있다면 작은 제작비를 통한 실험적인 드라마도 필요합니다. 그런 다양함 속에 새로움이 잉태되고 이런 도전들은 더욱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단막극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신인 연출자나 각본가, 배우들을 위한 실험의 장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과 제작비 안에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신선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특별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도전은 기존 드라마의 습성에 젖어 있던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겠지요.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결국 대한민국의 드라마 시장의 질을 높이고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드라마가 한류를 이끌었던 점을 상기해 봐도 드라마를 더욱 탄탄하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줄 단막극의 부활은 절실하며 필수적입니다.  

비록 낮은 시청률이 아쉽기는 했지만 꾸준하게 편성되어 방송된다면 고정적인 시청 층이 늘어나며 단막극의 재미를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는 것은 단막극은 시청률의 노예가 아닌 새로운 방식에 대한 도전이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루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노인과 청춘의 삶과 사랑을 담백하면서도 멋지게 담아낸 <MBC 4부작 특집드라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KBS 드라마스페셜>과 함께 이제 MBC에서도 단막극이 부활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값지게 다가온 단막극이 꾸준하게 제작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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