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7. 05:31

동이 43부-동이의 위기가 중요한 이유

위기에 몰린 동이는 곧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과정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이 되어가는 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역사 속에 없었던 숙원의 아비가 검계였다는 설정은 작가와 피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해법이기도 합니다. 

검계는 약자에게만 강한 사회 시스템을 위한 설정이다




검계 수장이자 자신의 어린 시절 동무였던 게둬라가 체포되는 현장에는 동이와 숙종이 함께 했습니다. 동이는 게둬라를 피신시키기 위함이었고 숙종은 검계 수장 체포 현장을 함께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숙종과 동이는 만나서는 안 되는 현장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얄궂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장희빈의 계략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도와 남인 재건에 앞장서는 장무열을 앞세운 희빈의 반격은 틈을 보이지 않고 거세게 동이를 몰아쳤습니다. 모든 상황을 숙종에게 목격하게 함으로서 동이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전략은 잠시 유효해 보였습니다.

의금부에 끌려간 동이는 자신을 전략적으로 몰아가는 장무열에게 당당합니다. 모든 상황들을 알고 조작하고 있음을 동이 역시 모를 리 없습니다. 희빈과 장무열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알고 있기에 우선 숙종을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숙종을 만나 자신이 과거 검계 수장의 여식이고 최가 동이임을 밝힙니다. 단순히 양반을 이유 없이 몰살하려는 조직을 검계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과거이기는 하지만 검계 수장의 여식이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당연하게 분노할 수밖에는 없고 그런 왕의 분노는 동이를 궁지에 몰아넣은 이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을 숨기고 속이려 노력하는 희빈 장씨와는 달리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당당한 동이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더욱 거짓이 판을 치고 그 거짓을 바탕으로 출세를 하는 세상에서 동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인 진실은 더욱 값지게 보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거짓이 거짓으로 용인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유용하고 필연적인 도구라고 인식하는 현대사회에 동이가 보인 진실에 대한 당당함은 비웃음일 뿐입니다. 사극 <동이>에서는 진실에 대한 갈구와 진실만이 진리라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런 진실한 동이를 잊지 못하고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숙종은 철저하게 동이를 감쌉니다. 의금부에서 동이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려해도 왕이 나서서 이를 막으니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신하들과 유생들까지 나서서 동이에 대한 처벌을 강요해도 숙종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이를 흔들 수 있는 무기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아랫사람들입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고 그래서 동이를 따르는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다면 당연하게 동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논리는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거짓으로 일관된 이들의 조직은 쉽게 와해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짓으로 욕심만 채우려는 무리들에게 그 대상이 사라지면 당연하게도 조직은 쉽개 사라지고 새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무리들로 대동단결되는 것이 순리입니다. 이와는 달리 진실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쉽게 사라지거나 외압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숙원과 희빈의 관계는 바로 이런 상징적인 대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권력욕에 사로잡혀 중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던 희빈과는 달리 권력과 상관없이 진실 앞에 당당했던 숙원의 성공은 욕심을 버렸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두 인물을 통해 <동이>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너무 당연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검게 사건에 대한 수많은 보고들을 읽어봐도 이상한 것은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에는 왜 그런 일을 벌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하건만 유독 검계 사건에는 이유가 적시되지 않아 궁금한 숙종은 직접 검계 수장인 게둬라를 찾습니다.

게둬라는 숙원의 억울함을 고하며 숙원의 아비였던 과거 검계 수장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더욱 과거 검계 수장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검을 든 것이 아니라 약한 천민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고 고합니다. 이는 숙종이 숙원을 잊지 못하고 애틋함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검계가 왜 양반을 죽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게둬라는 "천민들의 억울함을 대신해 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억울한 죽음과 아픔 앞에서 언제나 양반의 편에 서있는 조직 앞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검계를 조직하는 일밖에는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검계가 천민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면 현재는 지키는 수동적인 방식을 벗어나 극단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양반들을 직접 처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다를 뿐입니다. 과거 양반을 직접 해하지 않고 천민을 지키던 검계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몰살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게둬라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적인 행동 밖에 없음을 숙종 앞에 토로합니다.

철저하게 약자에게만 강한 사회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이런 검계 조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도록 조장하고 극단적인 양극화는 당연하게 극단적인 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우리의 현실이 사극 <동이>속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약자에게만 강한 사회 시스템은 대중들을 억울하게만 만들 뿐입니다. 소수의 가진 자들을 위한 시스템은 다수의 억울함을 만들고 그런 사회적인 문제는 폭발 일보직전으로 이끌 뿐입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을 믿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강자만을 위한 시스템은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만을 강요할 뿐이지요. 더욱 심화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더욱 소수의 가진 자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해갈 뿐입니다. 그런 사회를 우린 <동이>를 통해 되돌아보고 대리만족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조금은 지루하게 전개되기도 하고 생각보다 늘어진 사건들로 인해 아쉽기는 하지만 <동이>를 버릴 수없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예고편을 통해 동이는 첫째 아들이 병으로 죽는 아픔을 맞이합니다. 이후 그녀는 사가로 내보내지고 그곳에서 이후 조선의 왕이 되는 여조 금을 낳아 키우는 과정이 보여 집니다. 이후 동이가 본격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대해 잘 보여 지는 대목이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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