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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Documentary 다큐

축구, 그리고 세 개의 조국-자이니치 누가 그들을 울게 하는가?

by 자이미 2010.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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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적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정대세는 월드컵에서 브라질전과의 경기를 앞두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 세계 축구팬들을 감동시켰었습니다.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월드컵 무대에 나선 그의 뜨거운 눈물은 자이니치로서 세개의 조국을 가진 그들을 대변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자이니치,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다



독일 2부 리그이기는 하지만 지난 해 1부 리그였던 보쿰에 스카우트되었던 정대세는 리그 첫 경기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트리며 그의 독일 시대는 열렸습니다.
정대세, 박강조, 이충성이 걸어 온 길은 우리의 역사이자 우리가 반성하고 품어야 하는 진행형 역사이기도 합니다. 한 명은 조선 국적을 또 다른 한 명은 한국 국적을, 남은 한 명은 일본 국적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에게 국적 선택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는 2010년 8월 29일. 그들은 우리의 어두운 역사와 여전히 그 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지 100년, 남과 북이 전쟁을 일으킨 지 60년.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아집과 집단 이기심 외에는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월드컵의 해에 축구를 하는 세 명의 자이니치를 통해, 우리의 아프고 힘들었던 역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국적은 한국이고 조국은 조선이며 살고 싶은 곳은 오키나와라는 정대세는 자신은 세 개의 나라가 모두 하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특별한 환경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자이니치만의 고민이자 한계이기도 합니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으로 극적인 모습들을 만들어왔던 그는 자신과 부모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조선 국가대표로 일본전에서 골을 넣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던 대세는 그 꿈을 힘겹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국적인 한국이 아닌 조선을 선택한 그는 지금까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여권도 나오지 않은 한국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다녔던 민족 학교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는 조선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원하던 조선 대표가 될 수 없는 그를 위해 자이니치들은 나서서 피파에 자이니치의 현실에 대해 꾸준하게 알려 특별한 조항이 만들어지고 그는 원하던 조선 대표로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세 개의 조국을 가진 대세는 자신을 통해 일본에 살아가는 자이니치와 조선 그리고 한국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조선인 학생은 보쿰으로 가는 대세를 위해 자이니치 학생은 북한 국가를 부르며 전 세계에 자이니치라는 존재를 알린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자이니치라는 특별한 위치에 서 있는 그들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감정. 그런 특별한 감정은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아픔이었고 서러움이었습니다.

한국 국적으로 일본 대표를 선택한 이충성은 아유미의 남자친구로 국내에서는 더욱 알려진 선수입니다. 그가 한국 국적이 아닌 일본 대표를 선택한 것은 안타깝게도 추성훈과 너무 닮아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팀이 되고 싶어 국내로 들어왔지만 심한 편견과 차별로 인해 일본 국적을 달고 금메달을 딴 추성훈처럼 이충성도 같은 아픔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청소년 대표로 파주에서 훈련을 하던 그는 일본에서 받았던 자이니치라는 설움과는 달리 같은 동포와 함께 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조국은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일본에서도 듣지 못했던 비하와 차별을 받고는 조국을 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추성훈이 그랬듯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이충성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일본 국가대표를 선택했습니다. 일본 내 조선인들에게도 한국인들에게도 배신자와 나라를 버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자이니치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았던 그들은 그에게 감히 욕할 수 있는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가 들었던 '반쪽바리'라는 비하는 지금까지도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파주에서의 일은 그의 세계관을 바꿔버렸고 그렇게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일본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결코 쉬울 리 없는 선택을 통해 이충성은 일본 이름인 리 타다나리로 귀화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일본으로 선택하기는 했지만 뿌리와 정신은 잃지 않기 위해 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는 자이니치의 또 다른 미래입니다.

일본인들에게도 위협을 받고 조선과 한국에서도 욕을 들으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그는 자서전을 통해 이야기했습니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동경하는 자이니치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 대표를 선택한 안영학, 정대세 같은 위대한 선배들도 있다"
"그러한 길도 있다는 거을 알아두길 바란다"
"두 가지 선택을 고려한 후 각자의 입장에서 결정하기 바란다"

 

자이니치 출신 최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였던 박강조는 조선과 일본을 선택한 그들과는 다른 또 다른 자이니치의 모습입니다. 그가 한국 일화에서 뛰면서 자이니치는 외국인이 아닌 국내선수로 인정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생기고 이후 많은 자이니치들의 선택이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일화에서 뛰었던 3년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국내에서도 뛰어 많이 알려진 안영학은 북한 대표이면서 한국 프로에서 뛰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안영학을 두고 '이중 스파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다시 일본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조선에서 마저도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온갖 비난을 이겨가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조국에서도 비난을 받는 자이니치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어떤 조국을 짝사랑만 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대세는 다른 곳과는 달리 축구에만 열중할 수 있는 독일이 좋다고 합니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독일 교포들은 팬클럽을 조성해 그를 응원하기 찾아왔습니다. 남북한 단일팀의 국기를 가지고 응원하러 온 교민들은 정대세를 통해 아이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정체성을 찾아가며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역사가 만든 자이니치는 그들의 조국마저 버린 상황에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서도 당당히 그들이 열망하는 조국을 위해 버티고 살아왔습니다. 누가 감히 그들에게 욕을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조국은 그들을 버렸고, 의지할 곳 없는 낯선 나라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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