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짝패 28회-탐관오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by 자이미 2011. 5. 11.
반응형
조선달의 죽음은 과정과 분량에 비해 무의미하게 지나가며 마지막을 위한 혈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친부이지만 짝패의 아버지라 알고 있는 김대감을 척살해야만 하는 운명을 맞이한 천둥과 자신의 아들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김대감의 모습은 <짝패>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긴박한 대립일 듯합니다.

우매한 백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조선달은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은 김대감이 사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달의 입을 막기를 원하는 인물들은 많지만 가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김대감만큼 강렬한 존재는 없기 때문에 그가 조선달을 죽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확신으로 굳어갑니다.

막순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던 조선달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막순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깊어진 귀동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부탁까지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사과를 사가지고 와서 깊어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귀동에게 한없는 행복을 느끼는 막순은 어린 시절 귀동이 자신에게 사과를 입에 넣어주던 것처럼 쇠돌에게 사과를 건넵니다.

그렇게 그들은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며 살아있음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없이 작아 보이는 그 관심에서 가장 깊고 넓은 행복을 느끼는 그들이 <짝패>에서는 가장 행복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귀동과 막순이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다른 이들은 자아 찾기와 순간의 선택 속에서 깊은 시름과 혹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동녀는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신념 같았던 반상의 법도와 양반에 대한 집착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장난이라도 하듯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천둥이 김대감의 아들이고,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했던 귀동이 거지 움막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천둥을 선택할 수도 없는 동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독한 애증이 뒤섞인 여각을 처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는 없다는 판단을 합니다. 김대감에게 빌렸던 돈을 갚고 마음까지 정리한 그녀는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몸을 바쳤던 서당을 다시 열기를 희망합니다.

중국으로 갔다고 믿었던 천둥은 사실 그녀를 속이고 아래적이 되어버렸고 자신이 사랑했던 귀동은 거지 움막에서 자란 아이였다는 사실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천둥을 생각하면 거지 움막부터 떠올랐다는 그녀가 귀동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겹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할 테니 말이지요.

그런 동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선택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낙향해 살아가는 것. 이를 통해 마지막 회 누군가와 만나더라도 자연스러운 해후가 될 수 있도록 만들려는 작가의 노력이 얼마나 그럴 듯하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동녀는 완벽하게 실패한 캐릭터임을 작가 스스로도 인정해버린 듯해 씁쓸하기만 합니다.


아래적인 임포졸과 납치된 종사관을 서로 교환하자는 아래적. 이를 통해 아래적을 일망타진하겠다는 포청과 임포졸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는 아래적은 예고된 충돌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아래적이 표방한 척살 탐관오리 5인 중 하나가 김대감 임을 알게 된 천둥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짝패인 귀동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처단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가 청렴한 선비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따스한 손길로 이끌어 주었기에 대의명분을 앞세워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천둥의 혼란은 아래적 내부에서 분란을 초래합니다. 당연하게 척살해야만 하는 탐관오리의 원흉인 김대감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지 않으려는 두령에 반기를 드는 상황까지 몰고 옵니다. 누군가가 김대감을 죽여야만 한다면 자신이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천둥이 어렵게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임포졸 구출작전과 김대감 척살 작전은 한꺼번에 시작되었습니다. 임포졸 구출작전에는 포청의 군사들과 대결을 해야만 하고 김대감 척살 작전에는 금위영 군사들과 싸우게 된 그들. 아래적이 꿈꾸는 세상을 위한 그들의 노력들은 과연 성과를 맺을 수는 있을까요?

오늘 방송분에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은 귀동과 김대감의 대화였습니다. 여러 가지 징후들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이상 자신은 김대감의 자식으로서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귀동은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고 김대감에 맞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탐관오리로 아래적의 살생부에 오른 김대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짝패>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요한 화두를 시청자들에게 던졌습니다.

"이 혼탁한 사회에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말이 변명으로 들리는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너는 니 당대에 맑고 청량한 사회가 올 거라 생각하느냐?"
"탐관오리가 없어지고 그 자리를 정의와 양심을 가진 사람이 대신 한다면 청량한 세상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탐관오리가 그리 쉽게 없어질 것 같으냐? 청빈한 선비는 쉽게 물러나지만 탐관오리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물러난다고 해도 앙심을 품는 법이다"
"또한 청빈한 선비는 남을 해칠 때 양심의 자대를 들이대지만 탐관오리는 양심의 자대라는 것이 없다. 양심의 자대가 없는 사람들에게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이길 수 있습니다. 백성들을 깨우쳐서 양심의 자대를 백성들에게 쥐어주면 됩니다"
"어느 천 년에 그 우매한 백성들이 자대를 손에 넣겠느냐. 그런 날은 올 수 없는 것이야"

정의를 이야기를 하면 혹자들은 세상을 덜 살아서 그런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합니다. 세상에 나와 보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렇다면 그런 이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실제 학창시절 민주화에 앞장서던 이들이 학교를 나서며 스스로 타도의 대상이 되어가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감의 말처럼 우매한 백성들은 그 양심의 자대를 가질 수조차 없을 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는 그들에게 양심의 자대를 투표라는 방식으로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자대는 우매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고는 했기에 김대감의 말은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짝패>속의 김대감 같은 존재는 여전히 우리 곁에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매한 백성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단한 가치를 이야기하지만 마지막 지점에는 언제나 자신의 안위에 귀결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양심의 자대를 가지지 못했기에 그 자대는 쥐어주면 백성들이 바른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 자대를 쥐게 된 백성들은 좀 더 정교해진 탐관오리들로 인해 여전히 우매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양심의 자대를 공명정대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자대를 바보처럼 탐관오리의 세치 혀에 휘둘려 그들의 배를 채우는 짓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천둥은 자신의 친부에게 칼을 겨누었습니다. 김대감 역시 자신의 친아들인 천둥에게 칼을 들이대며 선택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가렸지만 눈빛을 잊지 않은 김대감이 천둥에게 어떤 반응을 할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이미 예고되어있고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 4회는 무슨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해지는 <짝패>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