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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Broadcast 방송

김선아의 슬픈 버킷리스트, 열악한 제작 환경을 이야기 하다

by 자이미 201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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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 논란이 제작 환경의 문제를 직접 건드리기는 했지만 방송국과 제작사 그리고 일부 배우에 의해 완전히 묻히고 말았습니다. 한예슬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면피를 위함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지적한 열악한 환경 개선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촬영 중 쓰러진 김선아, 그녀의 슬픈 버킷리스트




한예슬 논란이 채 잊혀 지기도 전에 주말 드라마에 출연 중인 김선아가 촬영 중 쓰러졌다는 소식은 슬펐습니다. 그들도 노동자일 수밖에는 없는데 노동 현장에서 과로로 인해 쓰러진 상황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항상 안타까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고액 출연료를 받고 있으니 그 정도의 노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은 아무런 불평 없이 하겠다는 초딩스러운 답변들은 문제의 본질만 흐려놓을 뿐이지요.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고 이를 통해 그들이 만들어 놓은 특별한 존재감을 무시한 채 그저 눈앞에 보이는 금액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척박한 제작환경은 단순히 드라마 촬영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 말입니다. 그나마 영화 현장이 조금 선진화되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 영화 현장 역시 열악함은 여전합니다. 장시간 무더위 혹은 추위 속에 노출된 채 시간에 쫓겨 촬영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 철야와 밤샘 촬영은 일상이 되어 있으니 말이지요.

그럼에도 드라마와 달리, 최소 몇 개월 동안 생방송 같은 방송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현장은 여유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국내 드라마 촬영 현장이 이토록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방송국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자체 제작을 하던 드라마 등을 외주 제작으로 돌리며 제작 단가와 자체 제작이 가져오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버린 방송국은 강력한 갑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새로운 프로덕션들이 많이 생겼으니 취업난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아니겠느냐는 말들도 하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자리가 열악함 속에 놓여있고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과연 의미 있는 행위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배우들에게 높은 임금을 제시하며 외형적으로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는 듯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하는 스태프들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정직원 개념도 아니고 높은 임금을 받기도 힘든 현장 스태프들은 갑인 방송국에 수주를 받은 을인 제작사에 일시적으로 고용된 일용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당장 밥줄인 제작사의 농간에도 버틸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에 놓은 현장 스태프들의 열악함은 상상이상이라는 것은 이제 많은 이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지요.

물론 그런 현장에도 높은 임금을 받는 스타 노동자는 존재합니다. 소위 말하는 스타 연출자의 경우 회당 연출료를 받기도 하고 외주 제작사에 스카우트가 되는 경우 수십억의 목돈을 쥐기도 하니 그들은 스타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드라마는 철저하게 작가 놀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듯 작가에 대한 대우 역시 스타를 능가합니다. 회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작가의 몸값은 앞으로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질 가능성은 없기에 그들 역시 스타 이상의 존재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이든 스타들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값만으로도 투자를 성사시키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스타에 대한 대접은 그에 걸 맞는 초특급 대우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수밖에는 없겠지요.

높은 임금을 받는 소수의 스타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합리적인 제작 방식을 서둘러 도입해야만 합니다.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 열악한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이 현실적인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쪽 대본과 생방송용 촬영으로 촬영 일주일 전에 대본이 넘어오는 상황에서 촬영 현장에서 매일 밤을 새면서 촬영하는 것은 바뀔 수가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능력이 탁월한 연출자와 작가를 다수 두고 확실한 분업화를 통해 합리적인 촬영 스케줄을 만들어 간다면 가능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현재의 상황에서는)일 수밖에는 없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도 아닙니다.

제작 합리화를 위한 기본적인 소통이 먼저 이뤄져야만 하고 이를 통해 현장에서 최소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촬영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만 합니다. 미국의 경우 법적인 노동 시간이 촬영장에도 그래도 적용되어 최소한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는 있습니다.

추가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스태프들에게 추가 노동에 따른 임금을 더 주면 됩니다. 배우 역시 정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촬영을 하면 되는 것도 현실입니다. 아동의 경우 더욱 철저하게 노동법을 적용시키는 것과 달리, 국내의 경우 아이들의 꿈을 담보로 초등학생인 아역 배우가 다른 성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은 지독한 아동 학대와 다름없습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정을 이런 식의 부당 행위로 노동력을 빼앗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 이 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가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김선아는 연일 이어지는 밤샘 촬영에 지쳐 자신의 SNS에 "다리 뻗고 단 5분이라도 누워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현장의 힘겨움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의 5일 동안의 버킷 리스트가 5분 동안 편안하게 누워보는 것이라니 이보다 슬픈 외침이 어디 있을까요? 함께 출연하고 있는 이동욱 역시 10일 동안 침대에 누워 본적이 없다며 이동 차량에서 쪽잠을 자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입니다.

스타들이 이 정도이니 현장 스태프들의 열악함은 어느 정도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모든 열악함의 완결판을 짊어지고 현장에서 촬영을 해야만 하는 스태프들에게 과연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한예슬 사태가 불거진 상황에서 방송사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파이 명월'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드라마가 이렇게 촬영되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는 방송국의 발언은 모든 것을 가진 '갑'의 입장만을 강조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렇기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런 열악함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현실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방송사에서 이런 막말을 쏟아낼 정도로 우리 제작 환경은 최악입니다.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으면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이 들어가는 드라마는 사장되거나 케이블을 통해 빛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방송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현재의 열악한 제작 환경은 결코 바뀔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방송국이 앞장서서 합리적인 제작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어기는 제작사에게 책임을 물리지 않는 한 현재의 열악함은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 하나가 아니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이런 열악함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현장에서 숨지는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촬영 후 이동 중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이어지는 것 역시 열악한 제작환경이 부른 필연적 사고였습니다. 한예슬의 이탈이나 김선아, 이동욱의 힘겨운 외침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열악함을 알면서도 고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 고치려 하지 않는 다면 이는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이자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탐욕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럴 일은 거의 전무하지만 제작 현장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연대해 파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드라마 왕국 대한민국에 결방이 속출할 수밖에는 없게 되겠지요. 어쩌면 이런 열악함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대한민국에서 드라마가 모두 멈추는 순간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비로소 구체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정도로 현재의 제작 환경은 강력한 갑에 의해 열악함이 더욱 고착화되기만 하니 말입니다.

김선아의 슬픈 버킷리스트는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현장의 스태프들과 모든 배우들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희망 사항이라는 사실이 더욱 슬프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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