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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Sitcom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24회-백진희의 근천스러움, 공감되어 더욱 슬프다

by 자이미 201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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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희가 등장하면 흥미롭다는 점에서 '하이킥3'의 초반 재미는 그녀의 몫은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24회는 김병욱 시트콤 특유의 슬픔이 가득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윤계상이 왜 보건소에서 재직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청년 실업의 지독함을 온 몸으로 보여준 백진희의 모습은 씁쓸한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답답했습니다.

근천스러운 백진희의 발악이 흉하다고요?




항상 웃기만 하는 윤계상의 한없이 슬픈 눈물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최고 학교 의대를 나와 같은 대학병원에서 소위 잘 나가던 의사였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왜 보건소에서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왜 보건소에서 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실은 윤계상에 대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부피가 커지는 병원이 점점 병원으로서의 기본 의무를 저버린 채 오직 돈벌이에만 급급해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돈 없는 서민들은 아파서도 안 된다는 진리입니다. 아픈 것도 돈 있는 자들의 특권이 되는 세상은 이미 현실에서도 재현되고 있고 만약 영리병원이 국내에 도입된다면 1%의 가진 자들을 제외한 99%는 아픈 것도 죄악이 되는 세상이 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미국의 경악스러운 의료보험 제도의 허상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고 오바마마저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국내에 도입하려는 일부 가진 자들의 만행은 오직 자신들의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반증이겠지요.

계상은 돈 없고 나이든 그리고 수술을 해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환자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포기하는 병원의 행태에 반발해 수술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그는 병원을 나서야만 했고 현재의 보건소에서 일을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계상이 항상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수술을 감행한 환자가 살아났다는 점이지요. 돈과 의사로서의 근본적인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계상이 현실에서는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봉사를 다니는 계상을 우연히 따라 다니며 발견한 지원은 그들이 함께 보살폈던 독거노인이 끝내 숨진 모습에 한없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건네주었던 막대사탕을 자신이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만들었던 로켓에 실어 하늘높이 날리는 계상과 지원은 눈에 보이는 별들이 몇 백만 년 전의 모습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라는 말로 현실 속 슬픔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사멸되었을 수도 있었을 별을 보며 우리가 그 별을 이야기하듯 지금 곁에 없는 죽은 이들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말은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쏘아올린 로켓을 바라보며 덧없는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고 우리의 짧은 삶에 대한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빚쟁이가 되어야만 했던 진희는 취직도 쉽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가난한 대학생이 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는 이들은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난한 대학생은 공부보다는 사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는 삶에서 경쟁은 이미 공정성을 잃은 상태이니 말입니다.


고시원에서도 쫓겨나 그나마 대학 선배인 박하선의 집에 얹혀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다행일 정도로 힘겨운 일상입니다. 선배의 도움으로 방송국에 알바를 하기도 했지만 예기치 않은 일로 그만둬야 했고 보는 면접마다 떨어지는 그녀는 보건 의료직에서도 부정행위 의심으로 탈락하고 맙니다.

뭐하나 잘 되는 일 없는 진희는 그래서 더욱 배가 고프기만 합니다. 허한 마음과 불안한 현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챙겨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만들지요. 우리 몸이 신기한 것은 불안이 급습하면 이를 막아보려는 행동이 자동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불안은 그녀에게 언제 굶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만들었고 그런 불안은 음식에 집착하게 만들게 했습니다.

줄리엔이 생활비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그녀는 방송국에서 임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날아갈 듯이 기쁘기만 합니다. 그동안 얻어먹기만 하던 진희는 큰 맘 먹고 햄버거 세트를 식구 수대로 사오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활비를 하선에게 건네는 이 일상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하기만 합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짐이 아니라 당당하게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은 진희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다가왔으니 말입니다. 이런 진희의 모습은 청년실업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진희의 이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는 급한 돈 이야기이고 엄마를 돕기 위해서는 하선에게 건넨 생활비마저 다시 받아 보내줘야 할 처지입니다. 조금의 갈등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비굴하게 눈치를 보는 것보다 현실적 고통이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다시 돌려받은 생활비를 대신해 최소한 자신이 이 집에 살면서 경제적인 누를 범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지요.

줄리엔이 남긴 짜장과 단무지, 음식 쓰레기로 버려질 위기의 잔반들과 밥. 옆집에서 간보며 한 끼 해결하기 등 그녀가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들은 비록 시트콤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정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남들이 보면 근천스러울 수도 있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 처지. 아낄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수밖에 없는 남루해진 청춘은 그래서 슬프고 화가 날 뿐입니다.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임에도 그 모든 인생을 사회에 저당 잡혀 평생 근로자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네 인생. 그 기득권에 들어서지 못한 다수의 슬픔은 백진희가 느끼는 보여 지는 슬픔보다 더욱 큰 근원적 아픔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화가 나는 이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되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자신도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조적으로 소수의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잘사는 삶을 살 수 없는 경직된 사회는 필연적인 고통은 안겨주고만 있습니다.

'하이킥2'에서 파격을 선사했던 정보석의 보사마 랩을 능가하는 백진희의 하이브리드 랩. 같은 대학생이면서 다른 듯 유사한 황정음과의 평행이론들이 대입되며 동정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가는 백진희는 그래서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난감해하는 하선과 달리, 그런 행동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줄리엔의 말은 경직을 버리고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어 따뜻했습니다. 줄리엔이 '하이브리드 진희'라고 이야기를 하듯 우리들의 삶도 어쩌면 모두 '하이브리드'가 되도록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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