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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뿌리깊은 나무 9회-정기준의 정체보다 중요한 것은 세종의 한글에 담은 의미

by 자이미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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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에 관한 사극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무한 반복하듯 자주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이야기이지만 <뿌리깊은 나무>처럼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그동안 없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세종은 왜 한글을 반포하려 했는지가 중요하다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은 정체를 숨긴 정기준입니다. 밀본의 3대 본원이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을 진두지휘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20세 이후로 정체를 숨긴 채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청자들과 수수께끼를 하는 듯한 모양새는 흥미로움으로 다가옵니다.

밀본의 숨겨진 3대 본원인 정기준이 처음에는 가리온이라는 도성의 유일한 백정이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제는 정체가 완벽하게 드러난 심종수가 아닐까라는 의혹과 반촌 노비이자 가리온의 친구인 개파이에 대한 무게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문만 잔뜩 품은 양반인지 알 수 없는 입이 싼 한가놈이 정기준이라는 설까지 현재 드라마를 통해 등장했던 인물들 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들에 대한 언급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가리온의 경우 자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화살을 맞고 죽임을 당하고 분노하던 자신이 현재의 백정이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이 정기준의 어린 시절과 너무 닮았다며 그가 바로 정기준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더욱 9회 '밀본' 수사에 직접 뛰어든 조말생에 의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이 돼지를 잡는 백정의 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그는 범인으로 몰려 의금부에 투옥되는 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채윤과의 대화 속에 여전히 그가 정기준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가며 많은 이들은 '정기준=가리온'이라는 심증을 굳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노골적으로 가장 정기준과 비슷하다고 밝히고 있는 그가 추리를 풀어가는 형식의 드라마에서는 가장 의도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기준이 아닐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 보입니다. 

한량 선비로 등장하는 한가놈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는 이유는 추리극의 특성상 가장 아닐 듯하지만, 그 근처에서 맴도는 존재중 하나가 그 존재로 알려지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양반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고 한 없이 가벼운 입에 민중들 사이에 숨어 있는 모양새 등이 모두 정기준이 이야기한 형태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민중 속에 섞여 살며 후일을 도모하겠다며 이신적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무척이나 설득력이 있습니다. 

가리온처럼 노골적으로 상황을 정기준과 맞추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가놈이 정기준이라는 이야기는 현재까지 떠돌고 있는 이야기 중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 전에는 가리온과 함께 생활하는 개파이가 가능성이 높아보였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눈빛을 가진 그가 주기적으로 화면에 등장하고는 했기 때문입니다. 채윤의 수사에 도움을 주는 역할로 등장한다는 설정에서 그가 살짝 정기준이라는 가능성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가 정기준일 가능성도 농후한 게 사실입니다. 

한가놈이 유력해 보이기는 하지만 개파이 역시 정기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면 그럴 듯하니 말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천한 모습으로 민중들의 가장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니 말입니다.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을 정기준이 누구일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방송을 통해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면서 그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만 합니다. 드라마의 흥미를 이끈다는 측면에서 정기준을 찾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세종의 한글입니다.

그가 왜 성리학이 지배하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인 시대에 조선만의 글자를 가지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청자들이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라 불리던 시절에 그들의 글자가 아닌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 모든 이들이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세종의 선언은 충격을 넘어 천지개벽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성리학에 기반을 둔 '밀본'과 관료들이 중국(당시 명나라)을 배신하는 행위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밀본 인 심종수가 당당하게 밝히듯 성리학을 위태롭게 하는 일은 곧 나라를 멸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당시 지배계급을 지배하는 논리였습니다. 유학에 통달한 이들이 나라의 기득권자로 자리한 상황에서 중국의 문자가 아닌 우리의 문자를 반포하고 사용하겠다는 것은 천지개벽을 넘어서는 일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종은 이 일을 철저하게 함구하고 은밀하게 진행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만의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포부는 단순히 문자를 만들어내겠다는 욕심이 아닌 당당한 국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더욱 커 보입니다.

2011년 대한민국은 현 정권이 들어서며 가장 먼저 내세웠던, 강한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인 즉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면 '오뤤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은 경악스럽기만 합니다. 한글날이 쉬는 날에서 빠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더욱 사라져가고 모국어인 한글보다는 영어를 더욱 위대한 언어라 치부하며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사용하기를 바라는 분위기는 당혹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그저 비즈니스 언어인 영어를 한글을 대체할 언어라 인식하는 무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영어에 대한 기능적인 의미보다는 피부터가 사대주의에 찌든 존재들의 문화 종속주의일 뿐입니다.

세종 당시 지배계급의 문화 역시 우리 고유의 문화보다는 거대한 중국의 문화에 종속되어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것을 찾아내고 우리만의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신하들의 반대에 부딛쳐야만 하는 상황은 세종에게는 가장 힘겨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시계, 해시계, 측우기 등을 만든 장영실이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당해아만 하는 현실 등은 세종에게 태종에게 맞서는 것보다 더욱 힘겨운 일들이었을 겁니다.

'칼의 정치'가 아닌 '문의 정치'를 하겠다는 세종에게 칼의 반란을 일으키는 '밀본'은 세종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태종이 그토록 경고하던 문의 정치의 한계가 다가왔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세종은 다시 한 번 똘복이 채윤을 통해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자신이 살린 첫 번째 백성인 똘복이를 통해 다시 흔들렸던 세종은 자신의 일을 과감하게 실행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그렇게 성삼문과 박팽년을 비밀의 방으로 불러 한글의 기본이 되는 '아설순치후'순으로 모여진 연구 성과들을 공개합니다. 문자라는 것이 단기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수천 년을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임에도 이런 식의 연구를 통해 단기간에 문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성삼문의 반론과 자신의 글자가 쓸모가 없다면 반포를 하지 않겠다는 세종의 단호한 한 마디는 드라마에 강렬한 힘으로 다가옵니다.

하나의 국가로서의 자존감을 고취시키고 백성들이 어려운 한문이 아닌 우리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로 소통하게 되는 날을 꿈꾸었던 세종의 원대한 꿈은 이제 시작되려 합니다. 문화 종속주의에 찌든 시대 우리의 위대함을 돌아보게 만드는 한글과 세종의 의지는 다시 한 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신자유주의만이 가장 민주주의에 가깝다는 논리로 99%의 피를 빨아먹는 지배 권력의 종속 시스템 고착화는 지배와 피지배를 명확하게 가르는 기능을 합니다. 영어 사대주의가 마치 순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한글은 그 사용 기능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지배 세력들과 수구세력들의 농간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한글이 왜 백성들에게 반포되고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의 글로 남겨져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고자 했는지는 드라마를 통해 좀 더 세밀하게 다뤄지겠지만, 정기준 정체 찾기 못지않게 세종의 한글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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