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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구가의 서 22회-이승기와 수지 슬픈 결말? 해피엔딩 일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by 자이미 201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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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2회를 남겨둔 <구가의 서>는 강치와 여울의 슬픈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여울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이별을 선택한 강치와 사랑을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는 여울이 과연 이렇게 헤어질 수 있을까? 결코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헤어지고 잊혀질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한 결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가 이미 존재해 있었습니다. 

 

강치와 여울의 슬픈 사랑;

사랑은 믿음이고 믿음을 흔드는 것은 두려움 이었다

 

 

 

 

 

20년 만에 만난 어머니 서화와 슬픈 이별을 하고 돌아선 강치. 비가 내리는 날 늦은 시간까지 강치를 기다리던 여울. 빗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여울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강치는 여울을 안고 한없이 울기 시작합니다. 그런 강치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여울 역시 이 지독한 사랑이 아프기만 합니다. 만나서는 안 되는 운명이었다는 강치와 여울이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월령과 서화의 꽃무덤

 

지독한 사랑은 20년 만에 서로 하나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다시 만난 그들은 함께 꽃무덤에 누워 영원한 동면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새드 엔딩이라고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의 사랑은 완벽한 해피엔딩입니다.

 

월령과 서화가 영원한 동면에 들었는데 해피엔딩이라는 말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이들은 그것 외에는 서로 함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20년 전 인간이 되기 위해 치성을 드리던 월령은 서화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서화를 죽이면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월령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그의 모습은 뒤늦게 서화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뒤늦은 깨달음은 서화의 몫이었고, 사랑에 배신을 당한 월령은 천년악귀가 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20년이 흘러 월령과 서화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사랑이란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폭주하는 월령을 막아 세운 서화는 그를 다시 신수로 돌려놓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20년 전 자신이 죽었다면 월령이 천년악귀가 되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선택은 사랑이라는 희생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20년 전과 후. 월령과 서화는 그렇게 서로를 희생해 한 번씩 각자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죽어야만 끊어낼 수 있는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함께 영원한 동면에 들어서며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동굴의 입구까지 막아버린 월령의 사랑은 그렇게 영원한 안식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살아서 누리는 행복만이 사랑이 전하는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는 그 무엇보다 값진 행복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서로가 느끼는 감정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화의 죽음과 죽은 서화 곁에서 영원한 영면에 들어간 월령은 영원한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꽃무덤을 만들어 서화를 눕히고 곁에 자신도 함께 눕는 월령은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서화의 손을 잡고 스스로 숲과 하나가 되어버린 월령은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는 월령은 영원히 서화와 함께 일 수는 없었습니다. 서화는 늙어갈 수밖에 없고 어느 순간 자연의 섭리처럼 죽을 수밖에는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서화를 위해 영원불멸의 삶을 사는 월령은 스스로 모든 것을 봉하고 그녀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둘의 사랑은 영원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될 수 없었던 신수의 슬픈 사랑은 20년이 지난 그렇게 서로 영원히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꿈을 이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 역시 사랑이라는 점에서 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2. 법사의 운명론 도화나무 아래 초승달이 걸린 운명

 

법사는 월령이 인간이 되려할 때도 막았던 인물입니다. 결코 될 수 없는 일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월령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100일 치성을 드리다 잘못되어 죽어버린 월령을 보며 슬펐던 법사는 그의 아들인 강치마저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이면서도 유일하게 신수의 삶을 알고 있는 법사는 인간처럼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서화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그를 백년객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며 20년을 보냈습니다. 20살 생일을 지나면 강치는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독한 운명은 그를 그대로 인간이 될 수 있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강치가 신수로 변하고 고통스럽고 힘겨워하는 모습 속에서 법사가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월령의 운명을 강치가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20년 전 월령과 서화의 운명처럼 강치에게도 여울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강치와 여울의 사랑은 법사로서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준 강치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여울은 우연하게 재회한 강치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첫사랑이었던 강치를 사랑하는 여울에게는 너무 큰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강치가 인간이 아닌 신수라는 사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장벽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사가 도화나무에 초승달이 걸린 곳에서 만나는 남자와는 상극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상극이라는 운명 속에 강치와 함께 있었지만 여울에게는 큰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수로 변한 강치를 보면서 여울도 두려울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길지 않았습니다. 강치가 인간이 아닌 신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울은 20년 전 서화와는 달랐습니다.

 

강치의 곁에서 흔들림 없이 그를 지켜본 여울의 힘은 신수가 된 강치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신수가 되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던 강치를 바로잡은 것은 바로 여울의 사랑이었습니다. 여울이 보여준 사랑의 힘은 강치를 신수가 아닌 인간으로 만들어주었고, 그런 힘은 결국 월령과 서화가 20년 동안이나 걸려 만들어낸 '구가의 서'이기도 했습니다.

 

법사는 월령과 서화의 슬픈 운명을 보면서 강치와 여울 역시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죽을 수 없는 신수가 아닌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과의 운명은 어긋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월령과 서화의 영원한 동면이 슬픔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슬픔을 안고 사는 결과론적 운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월령이 선택한 행복한 삶은 홀로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원한 동면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법사에게는 이 모든 것이 슬픈 죽음일 수도 있겠지만, 신수와 인간의 사랑으로는 이를 능가하는 사랑은 없습니다.

 

강치와 여울의 사랑 역시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본 전제로 인해 여울이 먼저 죽어 슬픈 사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법사의 예언은 그저 평범한 예측일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3. 강치의 두려움과 여울의 현재론

 

 

강치는 월령과 마지막 만남을 가졌습니다. 서화의 죽음으로 다시 신수로 돌아온 월령은 마지막으로 아들인 강치를 만나러 무형도관을 찾습니다. 그리고 아들 강치 역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사실을 알고 중요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아버지 월령은 아들 강치에게 행복한 사랑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건넵니다. 월령은 20년 전 서화가 자신을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무게만큼 비대해진 두려움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믿어야 하고 그런 믿음은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하는 월령은 그런 두려움을 버린다면 강치와 여울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법사의 말과는 달리 월령이 강치의 사랑을 막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자신은 실패했지만, 아들인 강치는 자신이 하지 못한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두려움을 버린 진정한 사랑이 전제가 되지만 말입니다.

 

강치보다 더욱 강한 인물은 여울입니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까지 오게 된 사실을 알고 강치가 나무라자 여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여울의 강한 긍정은 모든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월령과 서화의 사랑이 이뤄지기 힘들었던 것은 두려움과 함께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과 달리 강치와 여울은 그 모든 것이 갖춰져 있습니다. 강치에게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울에게는 서화와 다른 강한 믿음이 존재합니다. 물론 강치가 여울에게 상처를 입히고 두려움이 마음에 자리 잡으며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강한 믿음을 가진 강치의 두려움 없는 사랑은 다시 발현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순신과 태서의 작전으로 조관웅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며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예고했습니다. 도저히 이순신을 넘어설 수 없는 조관웅이 왜인 자객들을 동원해 이순신을 죽이겠다고 나서지만 이것은 곧 스스로 자멸하는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치가 '구가의 서'를 찾을 수 있도록 여울이 포기하라는 담평준의 말에 3일의 시간을 달라며, 강치를 위해 소원인 밥 짓기를 하는 여울. 마치 새댁이 된 듯 고운 한복을 입고 강치에게 밥을 해주고 흐뭇해하는 여울과 돌이 든 밥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한 강치의 모습은 <구가의 서>가 보여준 결말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구가의 서>는 20년 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 가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신수와 인간이라는 동일한 조건에서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느냐는 이야기는 이제 마지막 두 번의 이야기에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이야기의 흠만 보면 이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일 수밖에 없습니다. 운명이란 스스로 개척해갈 수 있다는 여울의 강한 믿음은 두려움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강치를 되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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