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3. 11:03

돌날 386세대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 지독한 이야기의 힘

드라마스페셜이 재미있는 이유는 좋은 단편 소설을 한 편 읽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방송된 <돌날>은 386 세대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 스페셜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 섬뜩함으로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너무 적나라해서 무서운 돌날;

지독한 현실의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 돌날, 이 지독한 현실도 우리 몫이다

 

 

 

 

돌잔치를 준비하며 힘겨워 하는 정숙은 넋이 나가 있습니다. 정숙의 돌잔치를 돕기 위해 친구들인 신자와 미선이 도우러 그녀의 집을 찾았지만, 그들에게 돌잔치 준비가 그리 행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방 안에 켜진 향은 이들의 돌날이 결코 행복할 수는 없음을 암시했습니다. 

 

 

넋이 나간 채 어린 딸의 머리를 묶어주는 정숙은 돌잔치가 반갑지 않습니다. 몸도 안 좋은 상황에서 손님들까지 불러 돌잔치를 준비하는 그녀에게는 이 모든 것이 허망하기만 합니다. 넋이 나가 있는 집 주인 정숙을 대신해 열심히 도와주는 신자와 말만 많은 미선은 그저 중년이 된 친구들의 일상적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정숙의 남편인 대학 강사인 지호와 대학 동창들이 모여 돌잔치는 시작되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조촐하게 이어진 그들의 돌잔치는 소박하지만 일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드라마 스페셜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386 세대들의 모습을 함축해서 보여준 상황극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현실을 부정하고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지호는 공부에 매진했지만 여전히 정교수가 되지 못하고 대학 강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호의 현실은 지독한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아이 둘을 가지고 있지만 매번 닥치는 전세 계약하는 날이 가까워지면 고통스러운 현실에 힘겨워 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대학 교수라는 목표를 위해 매진하고 있지만 결코 현실에서는 그에게 그런 행운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실력만으로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지호는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부모덕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성기는 직설적인 존재입니다. 거침없는 그의 성격은 오늘 돌잔치에서도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는 동적인 존재였습니다. 시민운동가이면서도 다단계 판매원인 경우는 '양키 고 홈'을 외치던 그가 이제는 미국에서 만든 제품이 최고라며 물건을 판매하는 존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만년 과장인 달수는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직장인일 뿐입니다. 실적을 위해서 친구인 성기에게 아부를 하는 그에게는 오직 실적을 쌓아 승진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시인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강호는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시상을 가지며 살아가는 낭만파 시인이었습니다. 

 

 

정숙을 도와주기 위해 온 미선은 결혼한 주부이지만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가면 남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친구의 돌잔치에 와서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돈 많은 친구인 성기와의 로맨스를 가져보려는 생각만이 전부였습니다. 자신이 이혼한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던 신자는 한때는 큰 꿈을 품고 살았던 평범한 우리 시대 여대생이었고, 주부였었습니다. 남편의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하기에 급급했던 신자는 그런 삶이 자신의 외로움만 키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대단한 꿈을 키우며 살았었던 그들이지만 세파에 찌들어 중년이 된 그들의 모습에는 과거의 열정도 젊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꿈꾸며 살았던 그 패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삶에 찌든 그들의 지독한 껍데기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저 과거의 추억 속에나 존재하는 과거를 생각하는 이들은 현실의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고, 이런 그들의 삶은 그런 괴리감을 더욱 키울 뿐이었습니다. 

 

20대 청춘들과 달리, 이제는 지치고 거친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돌잔치는 아슬아슬하기만 합니다. 과거 이상과 꿈을 향해 달려가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나이든 그들에게 그 모든 가치의 기준은 부정할 수 없는 돈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본의 시대 자본의 가치가 곧 삶의 가치 기준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들의 친구 관계도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서열로 줄 세우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만년 과장 딱지를 떼고 싶은 친구도, 전세 값이 시달리는 것이 서러워 돈이 궁한 친구도 모두 돈 많은 친구 성기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노골적으로 아부를 하는 친구와 자존심을 챙기면서도 궁색하게 돈을 원하는 이들까지 이들의 전혀 다른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만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이 단막극이 재미있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386 세대의 일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상의 모습 속에 담겨져 있는 드라마적 재미도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사실입니다. 부부인 정숙과 지호 사이에는 단짝 친구인 경주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들의 삼각관계의 중심에 지호를 의식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반전은 드라마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습니다. 삼각관계의 흐름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 극적인 변화는 드라마의 재미를 안겨주며 완성도 역시 높였다는 점에서 반가웠습니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 것은 지독했습니다. 월급도 적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대학 강사가 새로운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키우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 뿐이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낙태를 하고 힘겨워하는 부인을 뒤로 하고 죽은 아이를 위해 돌날 친구들을 초대해 돌잔치를 한 남편 지호의 지독한 변태적 성향은 그저 찌든 삶에 지쳐 부리는 히스테리만은 아니었습니다.

 

돌날 벌어진 사건을 통해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격렬하게 투쟁했던 386 세대의 현실은 초라함을 넘어 지독할 정도입니다. 냄새가 자욱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돌날>은 그래서 섬뜩할 정도로 두렵고 힘겹게 다가왔습니다. 현실을 잊게 하는 드라마가 아닌, 우리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돌날>은 그래서 낯 뜨거운 체험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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