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4. 08:13

힐링캠프 강신주의 귀찮아진 아버지를 제거하는 방법

강신주가 출연했던 <힐링캠프>는 많은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강신주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번 방송은 그가 누구인지 알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직설적 화법으로 문제를 해결시키는 강신주식 화술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힐링을 거부하는 강신주의 힐링캠프;

독해서 오히려 개인성찰을 요구하는 강신주의 힐링캠프가 반갑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존재하는데 강신주에게도 대중들의 시선은 그렇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강할수록 반대급부가 늘어가는 만큼 강신주식의 독한 이야기들은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강렬한 화법은 많은 이들에게 힐링 이상의 가치로 다가왔을 듯합니다. 

 

 

연예인들의 성공담을 이야기하던 <힐링캠프>가 시청자들과 함께 힐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힐링을 부정하고 증오하는 철학자를 힐링캠프에 초대하는 아이러니를 보이며, 그들이 강신주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힐링캠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갈증이 확연하게 드러난 방송이었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은 마지막 시청자의 고민에 담긴 아버지와 자식들의 관계였습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시선의 문제는 바로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소중하고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처럼 일만 하던 아버지가 초라해진 순간 그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우리에게 강신주는 강렬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를 제거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30년이 넘게 일하던 아버지가 병이 들어 이제는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힘들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고백을 듣고 강신주가 건넨 이야기는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아닌 귀찮아진 아버지를 제거하고 싶은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무서운 질문이었지만 사실 우리가 품고 있는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편안해지게 해주고 싶다는 것은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지 아버지를 위한 바람은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단순하지만 힘들 수밖에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거라는 단어와 부모는 어울릴 수가 없는 조합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시각의 다름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결과가 만들어낸 고통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살기 위해 바빴고, 그렇게 바쁜 아빠와 친해질 수 없었던 아이들은 성장하며 점점 그 넓이를 멀게 만들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되돌아 봤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관계의 안타까움은 그래서 더욱 힘겨움을 만들어낼 수밖에는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살기 위해 소처럼 일만 했던 아버지의 피곤한 노년은 그렇게 가족들과도 멀어지는 이유가 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싸이가 부른 아버지라는 노래가 잘 보여주듯, 강신주 역시 아버지와 딸의 관계 속에서 소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와 정겨운 시간 한 번 가지지 못했던 딸의 소원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제거하기 힘들면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딸에게 강신주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평생 힘들게 일하고 피곤해서 잠든 아버지의 모습만 지켜봐왔던 딸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저 그런 존재였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자기 시각으로 아버지를 위한다는 착각이 곧 우리의 민낯이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끄집어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은 고통이지만 감내하지 않으면 넘을 수 없는 산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면을 쓰고 예쁜이 병에 걸려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강신주는 그 가면을 빨리 벗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예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우리 사회는 부모가 편해지기 위해 아이들에게 예스맨으로 살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영혼 없는 예스맨이 만들어지고, 이는 곧 사회적인 문제로 중첩될 수밖에 없다는 강신주의 해법은 충분한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타인을 위해 쓰는 가면은 사실은 자신을 위한 가면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애써 외면할 뿐입니다. 그렇게라도 외면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그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을 증오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친구, 우정, 사랑'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강신주는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관계의 핵심은 사랑이고 그런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에 대한 밀도 있는 이야기들은 시청자들에게 중요하게 다가왔을 듯합니다. 

 

 

실천을 강요하는 꿈과 개꿈 사이에서 진정 자신의 품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품고 있는 꿈마저 타인을 위한 보여주기 식 혹은 스스로를 환각에 빠트리게 만드는 거짓 꿈을 품고 우리는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강신주의 힐링캠프는 흥미로웠습니다. 꿈은 철학자들의 용어로 이상이라고 하고, 불교에서 사용하는 근기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끈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끈기가 결국 꿈을 이룰 수 있게 만든다는 그의 발언 역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했을 듯합니다. 

 

꿈은 이룬 후에야 거둘 수 있는 지독한 저주라는 발언은 어쩌면 시청자들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개꿈이 아닌 자신의 진정한 꿈은 이루지 못하면 결코 버릴 수 없는 저주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채득하고 있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그런 사랑이 곧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강신주의 힐링은 그가 부정하듯 힐링이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과 결혼의 경계 속에서 사회적 관계인 결혼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그의 지독한 화법은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의 이런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아집처럼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근본에서 돌아보기 위해서는 외부의 이런 강렬한 자극이 중요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강신주의 등장은 새해 새로운 자신을 찾기 위한 시작점이 되는 중요한 시간이었을 듯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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