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0. 13:38

갑동이 7회-이준 김지원vs윤상현 김민정 괴물에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이들이 괴물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괴물을 잡으려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들의 현실은 결국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고통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통일 뿐이었습니다. 

 

이준 김지원에 대한 고백;

하무염과 오마리아 관계, 태오에게 존재하지 않는 인간성을 부여했다

 

 

 

 

20년 전 있었던 '갑동이' 사건이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는 현재. 심정은 있지만 확증이 없는 범인 류태오에게 총을 겨누며 분노하는 무염은 자신이 살인자가 되어서라도 이 범죄를 끊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양철곤의 선택은 의외였습니다.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양철곤에게는 확실하게 범인이라고 특징지을 수 없는 태오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범인이라고 해도 체포가 아닌 사살은 있을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무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갑동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한 철곤이 더욱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이기도 했습니다. 

 

'갑동이'를 잡기 위해 자신의 성공을 버리고 일탄으로 내려 온 그에게도 이 순간은 역사적인 상황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갑동이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무염이었습니다. 무염의 총을 쏴서 살인을 멈추려 했지만, 탄피가 튀어 무염의 뇌에 박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꺼낼 수도 없는 그 총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뇌관 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갑동이>가 가지고 가고 싶어한 갈등이자, 불안이었습니다. 

 

양철곤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그 딸은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뿐입니다. 20년 전 갑동이라고 스스로 불렀던 무염의 아버지와 함께 있던 딸이 성벽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무염의 아버지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양철곤에게 무염의 아버지는 갑동이이자 딸 선주를 망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갑동이 4차 살인이 벌어진 후 양철곤이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20년 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사실입니다. 완벽하게 동일하게 사건을 재현하는 상황 속에서 4차 사건은 하무염과 그의 아버지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4차 사건의 범인은 류태오에게 강요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물론 무염의 아버지가 살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현실 속 무염과 그의 아버지는 현 시점 일어난 4차 살인사건과 동일하게 해석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양철곤이 느끼는 고통은 그래서 크고 아프게 이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냈고, 이런 고통은 자신마저도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과거의 기억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던 철곤은 자신이 쏜 총으로 인해 무염이 쓰러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한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의도적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무염을 쏜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철곤의 죄책감과 달리, 무염은 수술 후 깨어나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갑동이었습니다. 철곤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근원인 갑동이를 잡아내지 않으면 이 모든 악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은 무염을 더욱 바쁘게 만들 뿐입니다.  

 

치료감호소 안에는 분명 갑동이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갑동이를 찾아내는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갑동이가 아닐까 하고 의심받던 이 역시 실제 갑동이와 만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가며 갑동이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키워내고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갑동이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바보 같은 존재로 보입니다.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갑동이>의 반전이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했던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이기만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감정을 단 한순간도 가져보지 못했던 류태오에게 갑동이는 재미있는 존재였습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잡히지 않은 그가 만나고 싶었습니다. 잔인한 자신의 본능을 눈치 챈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도 감정의 변화가 없었던 태오. 그런 태오에게 "갑동이"라는 발언을 처음으로 했던 이가 당시 말단 형사였던 하무염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목표나 목적도 없었던 류태오가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살인마로 태어난 그는 그렇게 아버지의 피를 머금고 진정한 살인마로 거듭났고, 갑동이를 만나고 그가 저질렀던 20년 전 사건의 재현하며 잔인한 본능에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최대한 잔인하게 살인을 이어가던 그가 오마리아와 하무염을 바라보며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 감정은 류태오에게는 독이 될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 악랄한 존재가 되어야 완벽한 살인마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조금씩 태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균열을 시작되었습니다.

 

5차 범죄가 여고생이었다는 점에서 하무염을 사랑하는 웹툰 작가인 여고생인 마지울은 위기에 처하고 맙니다. 감정을 흔드는데 재능을 가진 태오에 의해 오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던 지울은 그곳에서 무염이 마리아를 백허그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미친 듯 달려서 멈춘 곳에는 류태오가 있었습니다. 그가 잔인한 살인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지울은 태오 앞에서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잔인한 살인마의 다음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갑동이>는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테마로 삼아 제작된 이 드라마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갑동이>의 흥미로움은 그곳에서 멈춰있다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캐릭터들은 <갑동이>만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를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패턴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상함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절반을 넘기지 못한 <갑동이>가 다시 동력을 되찾고 상승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익숙한 방식으로 흥미로운 재미를 부여하기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캐릭터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할 수단이 너무 익숙해서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쉽기만 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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