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1. 10:07

트라이앵글 6회-진부한 작가 답답한 이범수, 김재중만 바라보는 드라마의 한계

세 형제들이 어린 시절 헤어진 후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만나게 되는 이야기의 기본 틀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6회가 끝난 상황에서도 <트라이앵글>의 재미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함만 가득합니다. 새로움과 재미라는 가치를 찾기 어려운 <트라이앵글>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김재중이라는 사실은 드라마의 한계가 무엇인지만 명확하게 합니다.

 

식상하고 진부한 이야기 전개;

특별함 없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한계, 그저 기댈 수 있는 것은 김재중이 전부다

 

 

 

 

형제들의 슬픈 운명이 만들어가는 그 한스럽고 안타까운 현실은 <트라이앵글>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갈등입니다. 그 갈등을 조장하는 원죄를 품은 고복태와 윤태준이라는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역할은 아직 그 무게감을 느끼기에는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만 합니다.

 

 

<트라이앵글>의 시작과 끝은 사북입니다. 탄광촌이 카지노로 변하고 그렇게 변한 사북. 인간의 탐욕이 들끓는 그곳에서 살기 위해 발악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모습은 분명 흥미롭습니다. 폐광된 그곳에 세워진 카지노는 화려하지만 누구에도 행복을 전해주지 못하는 신기루와 같은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고 뿔뿔이 헤어진 삼형제는 다시 사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북을 기반으로 재벌이 된 고복태와 윤태준 역시 노동자의 피가 여전히 가득한 그곳에서 그 지독한 탐욕만 탐할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그곳으로 향하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상황들은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가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자리하게 하는 <트라이앵글>입니다.

 

6회까지 진행된 현재까지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 볼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김재중 홀로 시작부터 독주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과연 어떤 재미의 흐름을 찾아가야 할지 막막하게 합니다. 드라마의 재미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촘촘함이 절대적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런 촘촘함은 익숙한 과거의 그 무엇에서 차용한 형식만 존재할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울 것도 없는 과거의 형식으로 현재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는 이 한심한 이야기의 틀 속에서 예고된 갈등을 대단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흐름은 결국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가옵니다. 캐릭터 구축과 그렇게 구축된 캐릭터들의 이야기들이 흥미를 유발시키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트라이앵글>의 가장 큰 문제는 더는 새로울 것도 없는 최완규 작가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최완규 작가가 과거 굵직한 작품들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트라이앵글>은 배우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심하게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시청자들을 만족시켜줄 이야기의 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저 김재중과 임시완만 바라보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다는 사실은 한심하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갈등 구조가 드러난 삼형제들 사이의 관계로 국한된 상황에서 특별할 것 없는 관계들의 교집합은 당연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만 높아 보입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삼각관계 역시 긴장감을 유발하는 형식은 아니라는 점에서 식상해 보입니다.

 

 

 

동수와 신혜 사이에 악의 기운이 선명한 현필상과의 삼각관계는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경직된 동수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거부감으로 다가왔고, 이런 거부감 속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동수와 신혜의 관계는 당혹스럽게만 합니다. 한 회 등장했던 짧은 과거 회상만으로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쌓여 결국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트라이앵글>은 친절하지 못한 드라마입니다.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함께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그저 대사로 처리하는 방식은 작가에게는 편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만 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도 단순한 이야기로 풀어가는 과정에서는 결코 동수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응원하기 어렵기만 합니다.

 

이범수가 맡은 동수라는 역할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큰형으로서 형제들을 찾아내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만큼 그가 해야할 일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절대 악이라 불리는 고복태와의 대결 구도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도 동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첫 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하나의 표정으로 일관하는 이범수의 연기는 답답함을 넘어 이제는 웃기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빈약한 캐릭터와 한심한 연기가 합해져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캐릭터로 전락해버린 동수. 오직 눈에만 힘을 준채 화만 낼 줄 아는 동수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인물이 영달이 전부라는 사실도 <트라이앵글>로서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김재중이 허영달이라는 밑바닥 인생을 잘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동안 김재중이 보여주었던 그 어떤 연기보다도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역할이 엇박자를 내고 전체적인 조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니 허영달이라는 인물 역시 극중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쓰러울 정도로 <트라이앵글>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반등은 어려워 보일 뿐입니다.

 

재미도 흥미로움도 잃어버린 식어빠진 음식 같은 느낌을 주는 <트라이앵글>이 극적인 반전을 하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이야기가 먼저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6회까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보여주었습니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의 과거와 악연들이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 특별한 반등이나 반전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관계들 속에서 그 어떤 변화를 추구한다고 한들 그 안에서 흘러가는 이야기의 흐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복수를 해야만 하는 대상이 명확한 상황에서 그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형제들로 인해 문제가 유발되고 해결되는 방식으로는 결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삼각관계를 구축하기는 했지만, 정작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신선함이 없는 <트라이앵글>은 점점 저주로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트라이앵글>에서 얻을 수 있는 절대가치가 김재중의 연기 변신이 전부라는 사실은 아쉽습니다. 김재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 자체의 힘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작가와 제작진의 한심할 정도로 식상한 틀을 깨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일 듯합니다. 한숨만 터져 나오는 이 진부함으로 눈높이가 한껏 올라간 요즘의 시청자들을 사로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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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1
  1. Favicon of https://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5.21 10: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