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1. 08:27

괜찮아, 사랑이야 9회-공효진 조인성 치열한 사랑과 지독한 운명,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재열이 품에 안고 사는 강우의 진실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어린 시절 살았던 양수리로 갔던 재열이 보인 행동은 마을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허공과 싸우는 재열의 모습과 이 장면을 모두 본 친구를 통해 진실은 재열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유정신병적 장애와 재열의 정신분열증세;

사랑이 깊어지며 드러나는 재열의 상처, 해수는 재열을 구원할 수 있을까?




재열과 해수는 오키나와의 바닷가에서 둘 만의 첫 날밤을 보냈습니다. 지독한 강박증마저 버리게 만든 재열과 뜨거운 밤을 보낸 해수는 30여 년 동안 지켜 온 모든 것을 벗어 던졌습니다. 밤바다에 비친 달빛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이들의 사랑은 해수에게는 행복하고 달콤한 잠을 유도했습니다. 

 

 

 

잠든 해수를 옆에 두고 조심스럽게 글을 쓰는 재열은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투구게에게 조용하라고 신호를 보낼 정도로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그에게도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잠깐 든 잠 속에서 지독한 악몽이 재열을 옥죄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행복해 감당이 안 되는 즐거움 속에서 꿈속의 악몽은 실제처럼 너무 또렷하기만 했습니다.

 

재열의 마음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강우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상황에 이어 형 재범이 자신을 칼로 찌르는 지독한 모습에 어떻게 할 수 없어 합니다. 이런 고통은 잠에서 깬 이후에도 선명한 기억으로 재열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열의 고통에 잠이 깬 해수는 그가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고, 재열은 잠에서 깬 후에도 여전히 선명한 피를 보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을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잠시이지만 재열은 해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배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저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재열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가 정신분열증처럼 또 다른 자아와 소통하고 믿고 있는 상태는 그가 앓고 있는 루게릭병이 만든 증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형의 피습으로 시작된 도경수의 등장, 그리고 점점 굳어가는 손가락 등 그에게 드러나고 있는 증세와 함께 악몽과 현실 사이의 잔상은 그저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로 다가옵니다.

 

해수가 본 환자의 증세는 재열 혹은 다른 사람들의 증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 등장한 부부의 증세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SPD 공유정신병적 증세라고 불리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재열의 분열된 자아와 현실 속에서도 환시를 보는 것은 유사하게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부부는 집안에 엄청난 양의 바퀴벌레가 존재하고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이 혹시나 해서 설치한 CCTV에 담긴 부부의 모습은 정상인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정신병이 옆사람에게 감염이 될 수는 없지만 동조하듯 따라갈 수 있다는 공유정신병적 증세는 재열과 다르지만 그가 보이고 있는 행태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비슷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환청과 환시가 일상이 되어버린 재열은 자신 안에 살아가는 강우를 통해 과거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점점 현실 감각이 마비되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동일시되는 증세가 강해지면서 문제는 점점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재열의 이런 증세는 강우의 집이라고 이야기하던 양수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집안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강우를 구하기 위해 그 싸움에 끼어들고 그 과정에서 지갑을 흘린 재열. 가정폭력을 방치했다며 양수리 경찰서에 신고하며 제대로 수사하라고 엄포까지 놓았던 재열이지만, 경찰이 확보한 CCTV 속 재열은 혼자였습니다. 혼자 상대가 없는 상대와 싸우는 그의 모습은 결국 그만의 증세가 세상에 적나라하게 공개되기 시작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재열의 지갑을 찾아가기 위해 양수리 경찰서에 들린 친구는 그곳에서 재열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철저하게 감춰두었던 아니, 감춘 게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가상의 존재인 강우의 실체가 드러난 상황에서 재열의 붕괴는 시작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강우가 실체 없는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이 타인에 의해 알려지게 되고, 스스로도 이를 자각하는 순간 그의 병세는 그만큼 깊고 힘겨워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재열을 통해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강박증에서 벗어난 해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외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어린 시절 어머니의 그 낯설고 불쾌했던 장면이 떠오르고 힘들지만, 처음으로 어머니의 입장에서 그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병든 아버지와 집안 사정 생각하지 않고 의대에만 가겠다고 고집하는 딸. 그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던 어머니가 그나마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김사장 일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어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곧 해수가 지독한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에서 조금씩 헤어 나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수광의 부탁으로 소녀에게 성교육을 해주기 위해 어렵게 만난 그곳에서 그들의 대화 속에서 소녀의 고통과 해수의 현실 감각은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폐지를 줍는 것은 삶을 살아가고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상황에서 소녀는 의지할 수 있는 그 누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피상적으로 보이는 해수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소녀에게 그녀는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소녀가 보는 모든 것은 그저 피상적인 부러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든 것이 빚이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모두가 하루 20시간이나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모습과 달리, 그런 모습을 갖추기 위해 빌린 돈을 갚는데 인생 모든 것을 소비해야 할 정도로 서민의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니 말입니다. 여전히 모든 이들을 경계하고 있는 소녀가 떠난 후 병든 아버지에게 자신이 오키나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어머니를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재열에게 받은 해수의 사진을 보여주며 행복해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해수는 달라졌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그 모든 분풀이를 해야만 끝날 상황에서 해수의 대처는 가족들마저 당황스럽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재열의 사랑은 해수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재열이 해수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서며 폭풍처럼 들이 닥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더욱 단단하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일하는 동안은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하는 재열과 해수. 알면서도 개입하고 그런 상황이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이지만 이내 합리적인 방법들을 찾아내며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만 확인하게 합니다.

해수가 있는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출입하는 과거의 연인으로 인해 서로 충돌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극한 감정까지 치닫게 됩니다.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과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품고 사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사랑해서 헤어지려 노력하는 수광의 모습 역시 서로 상처에 상처받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재열과 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던 해수는 그가 곧 이사를 간다는 말에 당황합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이사'라는 단어가 당혹스러운 해수와 달리, 재열에게 이사는 자연스러운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해수에게 한 공간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지만, 재열에게 그 공간의 문제는 크게 다르게 오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공간의 변화가 갈라놓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사랑에 빠진 재열과 해수. 그리고 주변인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우리들의 정신병은 현대인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증세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다시 한 번 재열에게 다가왔고, 그 고통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재열 곁에 해수가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루게릭병과 재범의 분노, 그리고 점점 스스로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넘쳐 주변에서 발견하게 되는 재열의 현실은 <괜찮아, 사랑이야>가 왜 이런 제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