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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괜찮아, 사랑이야 16회-노희경 작가는 왜 우리에게 사랑을 이야기 했을까?

by 자이미 201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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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열과 해수는 결국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며 행복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 중에 이렇게 화끈하게 행복한 결말이 있어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행복해진 <괜찮아, 사랑이야>는 단순한 사랑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최근의 걸그룹 교통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들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우리를 향한 헌시 같은 노희경 작가의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재열과 해수의 행복한 결말;

모두에게 사랑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긴 괜찮아 사랑이야는 국민들에게 던진 속삭임 이었다

 

 

 

 

해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실제 있다고 믿고 있던 강우가 허상이라는 것을 재열은 뒤늦게 확인하게 됩니다. 3년 동안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강우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자아라는 사실을 깨달은 재열은 해수에게 부탁합니다. 착각과 모순의 차이를 알게 된 재열은 해수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힘들게 강우라는 또 다른 자아와 결벌을 할 수 있게 된 재열은 스스로 입원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해수가 강우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신발을 선물합니다. 재열 곁에 강우가 있지 않았다면 죄책감에 지금까지 살지 못했을 거라고 합니다.

 

강우를 위로하면서 사실은 자신을 위로했던 것이라며 강우와 이별을 하는 재열의 모습은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던 어린 재열은 의붓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엄마와 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재열은 불쌍한 엄마를 선택했습니다. 불을 질러 의붓아버지를 죽인 진범은 엄마였지만, 재열은 그날의 기억을 지워버린 엄마를 위해 형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재열은 그렇게 14년 동안 지독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형의 공격으로 사경을 헤매던 재열은 그 지독한 공포 속에서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강우를 만들어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우를 통해 자신을 스스로 치유해내고 있던 재열은 해수라는 운명적인 여인을 만나며 자신의 아픔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강한척하며 살아왔지만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던 재열은 그렇게 스스로를 방어하며 살아왔습니다. 형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치도록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잊혀지는 듯했던 그날 형의 공격은 극적으로 그를 시한폭탄으로 리셋 시켰습니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독한 고통 앞에서 그는 그렇게 새로운 자아를 등장시켜 위안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강우라는 가상의 존재를 통해 자가치료를 하기는 했지만, 그의 고통이 작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행복해지면 행복해질수록 자신에 대한 행복에 대해 힘겨워하는 재열은 스스로 자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시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해수를 만나며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재열. 그리고 그런 재열이 스키조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들의 사랑이 왜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는 명확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 정신병은 타부 시 되는 경계 대상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작고 큰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애써 외면한 채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드라마는 정신병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병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위해 끔찍이도 사랑했던 재열과 헤어지라고 강요하는 해수의 어머니. 그 지독한 아픔의 근원은 자신의 딸이 자신과 같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존재했습니다. 끔찍한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엄마가 딸 역시 비슷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수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열은 그녀에게 예정된 안식년을 가지라고 합니다. 1년 동안의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자신을 다시 만날 생각이 있다고 다시 만나자는 재열의 제안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해수 가족들에게 당당해질 수 있다는 재열의 이야기는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랑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해내는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는 사랑이라는 가치 역시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란 그저 상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상대가 보다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한 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어머니에게 전하고 예정된 여행을 떠나는 해수와 그런 딸을 보내며 '독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아픈 삶보다 행복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지를 알고 있는 눈물이었습니다.

 

해수가 여행을 떠난 1년 동안 재열은 열심히 재활에 집중했고, 그는 당당하게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흰머리에서 검은머리로 바뀐 재범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재열은 집단 심리치료를 병행하며 살아가고, 어머니와 재범 역시 집단치료를 통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해수. 그런 해수를 무덤덤하게 맞이하는 재열은 "매일 매일 생각해서" 1년이 어제처럼 느껴진다는 말과 함께 진하고 행복한 키스를 나눕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지 1년 후 재열과 해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저 연인이 아니라 부부가 된 그들은 임신까지 하며 행복한 생활은 모두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 어떤 위험과 고통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얻은 그들의 행복은 어쩌면 시청자들 모두를 위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평온과 행복 앞에서 사랑싸움을 하던 그들이 벌인 토마토 전쟁은 우리에게 건네는 제안이었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토마토를 던지던 출연진들의 모습 속에 힐링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담고 있는 고통들을 빼내고 그렇게 쏟아낼 수 있도록 요구하는 작가의 제안은 그래서 행복하게 다가왔습니다.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해 재열이 항상 하던 굿나잇 인사를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해 합니다. "그럼 오늘 밤도. 굿나잇 장재열"이라고 속삭이던 모습은 수광이에게도 동민과 해수에게도 이어졌습니다. 타인에 대한 고민만 존재할 뿐 자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작가의 제안은 그래서 뭉클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강우의 발을 씻기고 해수가 선물한 신발을 신긴 후 이별을 하던 재열. 그런 재열을 떠나보내는 강우와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안녕 한강우" "안녕 장재열" 자신의 자아와 이별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재열의 모습 속에 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나 역시 강우와 같은 존재를 마음속에서 키우며 스스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 말입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2014년은 더욱 지독한 아픔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2014년처럼 지독하게 큰 고통이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사회적 침몰이 우리 모두를 바다 밑으로 잠기도록 한 현실 속에서 애써 현실을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은 지독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참사는 존재하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는 이 미친 사회에서 유족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극심한 고통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평생 살면서 경험하지 않아도 될 지독한 고통에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되어 버린 국민 모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희경 작가가 던진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지독한 정신병에 시달려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괜찮아, 사랑이야>의 사랑법은 충분히 참고할 만 합니다. 그 지독한 고통과 마주하며 피하지 않고 아픔을 공유하고 이겨내는 과정. 그런 과정이 없으면 모두가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분열과 분노의 시대 노희경 작가가 던진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듯합니다.

 

 

 

뛰어난 작가의 필력과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낸 감독의 연출력. 최고의 연기로 모든 이들을 감동시킨 배우들의 열연 역시 <괜찮아, 사랑이야>가 웰메이드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크고 작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던진 그들의 해법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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