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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비밀의 문 의궤 살인사건 16회-반전 이끈 이제훈 상생의 정치 이끈 그를 추억한다

by 자이미 2014.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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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후반으로 이어지며 반전을 위한 노림수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죽음의 정치를 버리고 상생의 정치를 외친 세자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강렬했고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청나라 사신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상황을 타개하려 노력한 세자는 영특하기만 했습니다. 

 

김택을 살린 세자;

잔인한 정치 속 상생은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상생을 꿈꾼다

 

 

 

 

정치는 잔인한 동물입니다. 살아 움직이며 가장 잔인한 수로 상황을 지배한 자들에게 큰 힘으로 다가서는 정치는 그래서 잔혹하기도 합니다. 과거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정치는 잔인함이 당연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잔인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정치판에서 상생은 여전히 요원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청나라 사신들을 받은 세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영조의 제안을 받은 세자는 가장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세자가 이번 청과의 관계 개선에 성공할 것이라 보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인 영조마저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확신했고, 노론과 소론 모두 세자의 무모함에 비판을 할 뿐이었습니다.

 

청 황제를 위한 진상품인 인삼이 벌레로 들끓는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세자는 청 사신에게 무릎까지 꿇는 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덜 잃게 되는 싸움인가가 관건이라는 이번 대결 구도에서 세자는 영조에 의해 내세워진 장기의 졸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전면에 비타협적 존재가 절실했고, 그 역할은 국본의 몫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국본을 잘 알고 있는 영조로서는 이일을 해낼 수 있는 이는 세자뿐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김택의 농간으로 썩은 인삼이 진상품이 되고, 이런 상황은 더욱 지독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세자를 궁지로 몰아넣은 김택은 왕의 종친인 이교를 찾아 자신들의 군주로 모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경종 때와 마찬가지로 영조를 죽이고, 조선의 22번째 왕으로 이교를 모셔 노론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이 쉽다고 확신하는 김택에게 현재는 새로운 주군을 통해 자신들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 당연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는 상대의 수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느냐의 싸움입니다. 상대를 읽고 전체의 판을 파악해 대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세자는 능숙한 존재였습니다. 정치 9단이라고 외쳐대던 영조나 김택마저도 세자의 수를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서책들을 통해 다양한 문물들을 받아들인 세자. 어느 하나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 세자는 그렇게 시각을 넓혔습니다. 넓어진 시각은 판을 읽는 눈을 높여주었고, 정치 9단들이 판치는 조정에서 세자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을 궁지에 몰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려는 김택과 세자를 이용해 청의 요구를 무력화해서 최고의 선택을 하려 했던 영조. 이런 상황에서 세자는 판을 읽고 자신에게 이로운 상황을 이끄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세자가 승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청 사신 중 하나가 목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해 서학의 가치를 확인하고 그들을 위한 주문까지 쓰는 세자는 영특했습니다.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세자는 상대가 믿는 사상과 가치를 거스르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런 세자의 행동은 청 사신들마저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민우섭을 통해 세자가 북벌을 꿈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립니다. 이미 야욕에 빠진 김택을 무기력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이교를 잡아들이고, 북벌론에 분노한 청 사신들을 이해시키며 대반전을 이끌었습니다.

 

서학과 북벌이라는 두 가지의 화두를 통해 반전을 이끈 세자의 정치는 탁월했습니다. 청 사신들 앞에서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세자의 모습은 감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이런 세자와 같은 인물이 존재할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의 탁월한 능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게 해주었습니다.

 

 

조업권을 내주고 청나라인들에게 치외법권까지 달라는 청 사신. 그것을 대처하려면 조선 군사 5만을 파병하라는 요구 속에서 세자는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탁월함을 선보였습니다. 그들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절실한 것은 바로 '공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청나라 사신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방법은 오직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감'이라는 사실을 세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적을 알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만 하는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서학을 믿는 청 사신을 위해 주문까지 적는 노력은 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연 청 사신들과의 협상은 세자에게 유리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세자가 흘린 북벌론은 김택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세자가 진정 얻고 싶은 가치는 다양한 신문물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 취하는 것이 곧 북벌이라는 세자의 논리는 청 사신들마저 당황하게 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자신들에게 도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청의 문화와 서역의 문물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세자의 모습은 감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자가 탁월하고 그래서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세자는 그래서 꺾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영조가 김택과 왕과 죄인으로 마주한 상황에서 세자를 칠 수 있는 유일한 자는 자신 외에는 없다는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복선으로 자리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자식이 아비의 정적이 되지 않겠노라는 생각이 당연하다는 영조와 처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이는 곧 우리의 방식이라 외치는 김택은 죽음의 정치를 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청 사신들이 밝혔듯, 새로운 조선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는 세자. 그리고 학문과 지식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전에는 본적 없는 위대한 세자에 대한 기대치는 곧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김택을 직접 베라는 영조는 "권력은 이렇게 지키는 거야"라는 말을 남깁니다. 권력이란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며 강력한 입지를 다진다는 순리를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노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이 외치는 죽음의 정치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가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터무니없지 않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 상생의 정치가 얼마나 힘겹고 고달픈 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문명화된 현재에도 이런 상생의 정치가 죽음의 정치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꾸준하게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청과 조선의 어업권 분쟁은 현재에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 정치와 참 많이 닮아 있기도 합니다. 노론과 김택의 기고만장이 현실 사회에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은 시청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치란 무엇이고, 그런 정치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사멸하는지에 대한 보고서처럼 쓰여 지고 있는 이 드라마는 분명 흥미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중요했던 존재인 서지담이 민폐로 전락하며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고,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분명 탁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중 세자도 상생의 정치를 외쳤지만, 그렇게 풀어준 김택의 무리에 의해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른 정치, 일부 권력에 집중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려했던 세자의 죽음은 그저 남의 일처럼 다가올 수 없습니다. 죽음의 정치는 세자만이 아니라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에까지 이어지며 그 지독함을 만천하에 알렸지만, 여전히 우리는 죽음이 아닌 상생의 정치를 꿈꿉니다. 비록 그 상생이 죽음을 부르는 주문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상생은 놓을 수 없는 최고 가치의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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