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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김제동의 톡투유 우리 사회 만연한 폭력을 이야기 하다

by 자이미 201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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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진행하는 본격적인 힐링 토크쇼인 <김제동의 톡투유>가 첫 방송을 했다. 그에 대한 기대감은 파일럿에서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첫 방송에서 보다 확실해졌다. 최진기, 정재승, 요조가 고정 MC로 김제동과 함께 한 <김제동의 톡투유>는 일방적 이야기가 아닌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김제동의 소통 통했다;

폭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다양한 폭력을 함께 이야기 하다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김제동의 토크콘서트>가 JTBC로 이식되며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로 재탄생했다. 이미 파일럿 방송을 통해 그 가치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만큼 첫 방송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말초적인 재미에만 집착하는 지상파 방송의 그렇고 그런 토크쇼와 달리, 김제동이 함께 하는 소통은 매력적이었다.

 

김제동이라는 브랜드 하나 만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이미 드러냈다. <김제동의 토크콘서트>는 전회전석 매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시즌6까지 성공시킨 공연의 힘은 그대로 방송에서도 이어졌다. 김제동은 총 231회 공연으로 누적관객만 24만 9천 명이라는 기록을 보유 할 정도로 성공한 토크 진행자이다. 비록 방송이 그를 외면하기는 하지만 실전에서 그는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최고의 존재인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방적 방식의 토크가 아니라 현장에 있던 관객들이 곧 주인공이 되는 그의 토크쇼는 특별하다. 대본도 필요 없고,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곧 관객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그는 증명했고 확인시켜주었다.

 

공연장에서 진행되던 김제동의 소통은 방송을 통해 재현되었다. 정규 편성이 된 후 보여준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모두가 김제동과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김제동의 톡투유>는 분명 특별한 공감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감 이야기의 달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 김제동은 방송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만들어진 주제와 이야기를 그저 들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으로 온 이들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 다른 토크쇼와는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실체를 서로 드러내고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공감을 이끌어가는 과정은 김제동의 힘으로 다가왔다.

 

'폭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적 폭력 등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폭력'이라는 주제는 그래서 특별했다. 집의 평수와 자동차 등 물질적인 재산이 비교의 대상이 되는 현실. 이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고통이다. 어린 아이들까지 만연한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폭력은 무척이나 다양하게 사회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육교사의 아이 폭행 논란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린이 집에서 만연하는 폭력이 근절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일부의 문제를 모든 보육교사들이 폭력을 행하고 있는 범죄자라고 보는 것 역시 '폭력'일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스타강사이자 인문학자인 최진기와 카이스타 뇌 과학자 정재승, 그리고 요조가 함께 하는 소통과 공감의 장은 흥미로웠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여성 뮤지션이 관객들과 함께 '폭력'이라는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재미였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폭력'이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어가는 과정은 시청자들마저 명료해졌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폭력'임은 분명하다. 최근 개그맨들의 비정상적인 언어폭력들은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일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폭력은 두렵기까지 하다. 

 

"폭력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들이 많다. 우리는 왜 화를 낼까? 호랑이가 화를 내는 걸 봤냐. 그냥 가서 물어 죽인다. 호랑이와 사자는 짖을 필요가 없다. 반면 개는 짖는다. 내가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는 하고 싶어서, 그 내제된 욕구를 분출하기 위해서 화를 낸다"

 

뇌과학자 정재승은 상황에 대한 통제를 '폭력'을 풀어가는 중요한 단초로 이야기하고 있다.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호랑이나 사자는 짖을 필요를 못 느낀다 하지만 개는 짖는다. 이 전혀 다른 비교는 결국 '폭력'이라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고민하게 한다.

 

개는 많이 짖는다 그렇게 짖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통제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스스로 나약한 이들은 소통을 위해서라도 분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재승이 이야기를 했듯 통제할 수 없지만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제된 욕구를 분출하고 이것이 곧 '화'라는 행위로 다가온다는 말은 흥미롭다.

 

"지금 자연과학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똑같이 보고 있다. 사회과학에서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비교당할 때 화를 낸다. 상대 옆집 애 이야기할 때 초등학생이 화를 낸다. 사회적 문제인 빈곤에서도 상대적 빈곤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야기한다. 이게 바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다른 점이다"

 

인문학자인 최진기 자연과학자인 정재승과는 다른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간과 동물은 같다는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서 둘은 다르다고 말한다. 인간이 화를 내는 이유는 '비교' 당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누군가에 비교가 될 때 화를 부른다는 말에 많은 이들은 공감했을 듯하다.

 

 

빈곤의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적 빈곤은 극복의 대상이지만 상대적 빈곤은 비교의 대상(비교는 곧 사회과학에서 화의 원인)이라는 논리는 명징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는 화가 많이 나고 이는 곧 폭력적인 사회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도 공감이 갔다. 실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극대화되면서 사회적 폭력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치닫고 있음을 수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불평등 지수가 10% 늘면 학교 폭력이 4% 늘어난다는 통계학적인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사회 만연한 폭력을 어떻게 근절할 것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국제공중보건확회지의 <학교 폭력과 살인, 소득 불평등도 분석>에서 알 수 있듯 학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불평등 지수를 내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은 분명하다.

 

불평등이 비대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학교 폭력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문제는 학교 폭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대, 사회 등 그들의 성장과 함께 폭력도 함께 커간다는 사실이다. 학교 폭력은 결국 사회 전반을 위태롭게 하는 폭력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김제동의 톡투유>의 화두는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산후우울증, 성희롱, 취준생 압박면접 등 관객들이 다양하게 느끼는 분노의 이유들이 적나라하게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단순하게 해법을 찾아주고 이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모든 이들에게 힐링이 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무겁고 쉽지 않은 주제인 '폭력'을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힐링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김제동의 톡투유>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로 다가온다. 일방적인 주입식 방송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주제를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며 그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은 결코 기존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폭력 문화는 경쟁에서 시작된다는 최진기의 발언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오디션과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분출된 그의 분노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치열한 경쟁을 당연하게 만들고, 그 상황에서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폭력이 가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쟁 과정에서 이기기 위해 정당화되는 폭력과 패배한 사람들이 대리만족 하기 위해 새로운 희생양을 끌어들이는데 그게 바로 '왕따'라는 주장이었다. 패자가 패자를 만드는 형태는 결국 폭력의 정당성을 강화시키기만 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폭력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산다. 더욱 미국의 실패한 신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이식한 한국 사회는 이런 폭력에 너무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죽음을 내보는 학교 폭력. '왕따' 문화는 잔인한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런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잔혹한 폭력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몰아간다. 그렇게 평범한 학생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는 이를 통제하거나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체계에서 이런 죽음은 부수적인 결과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본주의를 만들어낸 미국의 몰락은 곧 대한민국의 붕괴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근혜 시대 일상화된 신자본주의는 불평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무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그럴 듯한 포장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경쟁은 지독한 분노만 만들 뿐이다. 그런 분노들은 결국 뇌관을 건들게 되고 이는 곧 사회적인 폭력이 일상이 되는 사회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만 하다.

 

민주적인 방식의 합리적인 요구의 시대가 지나고 그저 자신의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폭력으로 비화되어 세상에 표출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붕괴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배 권력자들은 이제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폭력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지나친 여성혐오는 남성의 경쟁문화가 심해지면서 나오는 현상이라는 최진기의 발언은 진중권의 장동민 논란 진단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여성을 혐오하고 그런 그들을 옹호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폭력에는 경쟁문화가 낳은 폐단이라는 진단은 명확하다고 본다.

 

'폭력'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소통되는 것도 즐거웠다. 그리고 김제동이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허물며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형식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자의 구도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요조의 역할 역시 <김제동의 톡투유>를 보다 흥미롭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핵인 관객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가는 과정은 이 프로그램의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이자 장점이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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