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6. 08:21

풍문으로 들었소 22회-고아성 퇴출시키는 유준상, 을들의 반란이 낯설고 부담스러운가?

한정호 집안이 파업까지 하며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호와 최연희는 모든 논란은 새로운 식구가 된 서봄 탓이라고 확신합니다. 자신의 들보는 생각하지 않고 외부에서 부는 바람 탓을 하는 그들은 봄에게 당장 집을 나가라고 분노합니다. 

 

을들의 당연한 권리 주장;

을 반란이 낯설고 부담스럽다면 이 드라마는 성공했다

 

 

 

 

불편부당함이 일상이 된 현실을 한정호와 서형식 두 극단적 집안을 배경으로 풍자하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블랙코미디의 재미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초반의 풍자가 주는 우스꽝스러움과 달리 후반으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을들의 반란이 본격화되며 이견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조주의적 우월감만 가지고 있는 슈퍼 갑 정호와 연희, 그리고 그들의 무리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세운 갑의 논리에만 집착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이는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한정호의 집을 하나의 사회를 축약해 그 문제의 본질과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몰락의 위기에 처한 가난한 집 둘째 딸인 봄이 운명처럼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인상을 만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저지른 불은 거대한 씨앗을 만들었고, 그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봄은 갑중의 갑이라는 한정호의 거대한 성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런 봄의 시선으로 갑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변화를 지켜보는 과정이 바로 <풍문으로 들었소>입니다.

 

풍문은 봄을 통해 이어지고, 그렇게 전해진 풍문을 통해 갑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알지 못했던 갑들의 세계를 바라보고 부조리한 세상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을들의 반란은 후반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상과 봄의 과외를 하는 박 선생이 복귀하며 집안의 질서가 잡히기 바란 정호는 동상이몽이었습니다. 노동자 편에 서서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복귀한 박 선생은 정호의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과거 시대로 회귀하며 노동강도는 더욱 강해졌고, 노동자들의 자유는 크게 침해 받을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갑에 대항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박 선생은 천군만마였습니다.

 

 

제대로 된 계약서를 요구하며 문건을 정리해 전달하는 역할을 한 박 선생과 그런 개선 요구에 분노하는 정호. 비록 사람들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정호와 연희는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감히 고용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반박을 하고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로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준 기회와 돈으로 먹고 사는 자들이 감히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식의 괘씸함은 갑이 가지고 있는 우월적 지위가 만든 월권일 뿐입니다.

 

무노조를 자신들의 가장 큰 미덕으로 생각하는 모 재벌의 모습도 드라마에는 잘 투영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자본의 힘으로 노조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돈으로 노동자들의 입을 막는 행태는 그들의 자랑입니다. 군소리 나지 않도록 돈으로 통제하겠다는 그들의 논리 역시 결국 노동자들의 분노로 인해 균열이 찾아왔다는 점에서도 한정호 집안의 문제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우월적 지위로 고용인들을 종 정도로 생각하는 한정호와 최연희의 사고 체계에서는 이들의 이런 반박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주는 대로 감사해하고, 자신들이 기분이 좋아 돈을 올려주거나 추후에 두둑한 보너스를 주면 그만인 것을 감히 종들이 주인님에게 반기를 들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반역 정도로 생각하는 한정호와 최연희는 우리시대 갑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섭정왕후가 된 연희가 과거로 회귀하겠다고 선언하며 그들의 불만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 집에 입주하면서 억압과 통제가 일상이 된 시절과 달리, 조금은 자유로워진 현실 속에서 갑자기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연희의 행동에 반발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세하게 정리해 새로운 계약서 작성에 반영하려는 그들은 시간외 근무수당과 추가 업무 수당 등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면서도 그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습니다. 당연한 주장마저 당연함으로 이야기될 수 없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그곳. 바로 그곳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임은 을들의 반란을 통해 명확해졌습니다. 

 

집사 부부가 받는 한 달 월급이 합쳐서 300이라는 발언 속에 그들이 얼마나 착취를 당하고 살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그저 언제가 될지 모르는 퇴직금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버텨가는 그들은 이미 그런 생활에 녹아들어가 있었습니다. 너무 착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이야기도 하지 못하던 집사 부부는 나쁜 것도 많았지만 살면서 정도 많이 들었다는 말로 그들의 처지를 대변합니다.

 

박 선생이 이 비서에게 호되게 야단을 치듯, 계약 관계에서 정에 휩쓸리는 을들의 그 마음은 곧 갑들이 을들을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위가 곧 갑들이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갑들이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는 스스로 그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기도 하는 게 현실입니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 황당한 현실은 이미 권력자들의 지배 논리가 잠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의해 조장되고 확장되어 이제는 고착화된 그 지배논리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이어졌습니다.

 

 

갑과 을의 반란만이 아니라 을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상충되는 것도 현실입니다. 봄이의 가족들인 형식과 진애마저 이 사안에 대해 첨예한 대립을 보입니다. 정당한 권리 주장을 통해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진애와 혹시 딸인 봄이 핍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 가 우려하는 형식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둘 모두 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을들의 반란을 연목구어라 생각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이 뜻은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고사성어 입니다. 한정호의 안정적인 가정을 파괴하는 봄의 행동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수만 행복한 가정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부당함에 숨죽인 채 그들의 행복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1%를 위해 99%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지배 권력의 논리가 어느 정도 국민들에게 투영되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에서도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99%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 비이성적인 논리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현실. 드라마는 을들의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들의 반란에 흥겹기만 합니다.

 

 

인력 포식자의 포악한 관계 정립에 반기를 들고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 그리고 그런 모든 원인이 자신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오직 봄으로 부터 시작된 문제라 인식하는 한심한 행태가 문제입니다. 자신들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다른 사람 탓만 하는 형국은 우리가 지금 최고 권력자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도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혼 중인 영라는 자신의 딸이 인상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상이 애를 낳은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 그는 인맥을 통한 사돈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 욕심에 연희를 부추기고 봄을 내몰려는 행위는 결국 또 다른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가식적인 삶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정호와 연희 부부의 식사를 망치는 이지의 한 마디는 호기롭기만 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재산은 포기하지 못한 채 부모의 가식에 진저리를 치는 것은 과도기 증세가 낳은 과정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려면 갑들의 각성과 변화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인상과 이지라는 존재는 특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상황이라는 것은 너무 현실이라 반갑기까지 합니다. 

 

블랙코미디 특유의 재미를 담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는 완벽한 현실 풍자의 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일방적으로 봄을 쫓아내려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혼자는 안 된다고 맞서는 모습은 당돌하지만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갑들의 횡포에 맞서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을들의 반란이 낯설고 부담스럽다면 우리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반추해봐야 할 것입니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당황해할 정도로 우리는 지배 권력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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