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6. 12:14

휴먼다큐 사랑 헬로 대디-외면할 수 없는 코피노 민재, 우리 이대로 괜찮나?

2015년 <휴먼다큐 사랑>의 세 번째 이야기는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민재 이야기였다. 태어나 7살이 된 현재까지 아빠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민재가 서울을 찾아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아프게 다가왔다. 무슨 이유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아버지를 찾는 수많은 코피노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코피노 민재 헬로 대디;

헬로 대디라는 인사에 답이 없는 한심한 현실,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코피노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단기 어학연수 등을 떠난 한국인들과 필리핀 여성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버려져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오래된 문제이다. 한국인(Korean)과 필리핀인(Filipino)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바로 '코피노'이다.

 

현재 필리핀에 코피노가 수만 명이라고 알려진 상황에서 이는 사회 문제로 커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이탈이 만든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게 쌓이면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은 국가 차원의 문제로 커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 국민들의 대부분이 카톨릭이라 낙태를 금기시 하고 있다. 더욱 낙후된 경제 환경이 이런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빈민촌 방 하나에 세 가족이 함께 산다. 몇 평 되지도 않는 곳에 천 하나를 두르고 살아가는 그들 속에 필리핀 사람과는 다른 한 아이가 있다. 필리핀 사람들 속에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이 민재라고 한다. 학교 시험 답안지에도 필리핀 이름과 함께 한국 이름인 강민재를 함께 쓸 정도로 어린 민재에게 한국은 특별한 곳이다.

 

민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부의 가난한 빈민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자신의 전부라고 여겼던 엄마마저 일하던 곳 사장의 잘못으로 인해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모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는 민재가 느끼는 불안과 힘겨움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구치소 안에서도 비즈 공예를 하고, 이모와 이모부가 함께 일해 민재를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민재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학교에서도 우등생인 민재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환한 웃음만 가지고 있던 민재에게도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필리핀 내에서도 홀대 받는 코피노인 민재. 잘 먹지 못해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은 민재와 그를 괴롭히는 선배에 맞서다 생긴 문제는 그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힘으로 안 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선배의 신발을 던진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신발은 사라지고 이를 모두 민재의 몫으로 돌린 상황에서 최고급 구두를 사오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민재나 그의 이모에게는 고통이었다. 항상 웃기만 하던 민재는 처음으로 서글프게 울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한국 돈 5천 원도 벌기 어려운 현실에서 2만원 이 넘는 구두를 사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민재의 구두가 낡아 해져도 사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그 집에서 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나라에 가고 싶었던 민재는 힘겹게 입국 비자를 발급받았다. 후원자들에 의해 이모와 함께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민재는 행복했다. 드디어 아버지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과 아버지와 만날 수도 있다는 이 상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7년 전 떠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알려줬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단서의 전부였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빠를 찾기 위해 떠난 한국행. 그 한국 땅을 밟은 그들을 반겨준 것은 후원자 가족이었다. 그들이 아빠를 찾는 기간 동안 묵을 수 있는 숙소와 함께 민재의 아빠를 찾는 일까지 도와준 그들이 아니라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 어느 곳보다 차갑고 두려운 곳이었을 듯하다.

 

아빠를 만나면 전해주려 준비했던 앨범과 편지를 꼭 쥐고 주소지를 찾아간 민재는 닫힌 문을 그 여린 손으로 두들기기만 했다. 문틈 사이에 넣었던 편지를 겨우 꺼내 이사 간 아버지를 다시 찾던 민재는 드디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비록 아버지는 아니지만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민재는 그저 이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저 버림받은 채 내던져진 존재라고만 여겨졌던 민재는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엄마가 보내주었던 민재 사진을 할아버지는 고이 간수하고 있었고, 손자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 궁금했던 할아버지에게 민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사진만 가지고 돌아가야 했지만 민재는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찾을지 그리고 자신을 아들로 받아줄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 가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재는 행복했다.

 

민재는 여전히 아빠와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만남을 가진 후 필리핀으로 돌아갔지만 민재는 여전히 아빠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그나마 민재는 코피노 중에서도 행복한 축에 속한다. 아버지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민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를 사랑으로 품었기 때문이다.

 

코피노 문제는 그저 몇몇 한국인들의 이탈로만 볼 수 없다. 수만 명에 달하는 코피노들이 필리핀 현지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채 살아가고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백인 혼혈을 제외하고는 외면을 받는 코피노는 그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지독한 상처를 안고 성장하고 커가는 코피노에게 아버지의 나라 한국은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사는 나라 한국에 대해 행복한 기억을 가질 수조차 없는 코피노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지 의문이다. 조선시대 홍길동도 아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고,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른 채 지독한 가난에 내팽겨진 코피노 역시 우리의 반쪽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빠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생각 하나로 버티며 살았던 일곱 살 민재. 그 누구보다 공부에 열중하고 엄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아이 민재.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도 즐거워했던 민재가 그 웃음을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다. 자유에는 분명한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 방종이 아닌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자유는 수많은 고통을 양산하는 무서운 도구가 될 수밖에 없음을 민재 이야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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