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31. 10:16

가면 20회-수애와 주지훈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 김빠진 해피엔딩

정의는 살고 악은 죽는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이 한심한 주제를 관철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당황스럽다.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점에서 특별할 것도 없지만, 작가의 안일함과 한계는 결말에서 더욱 완벽하게 드러난 셈이다. 20부작으로 진행되기에는 너무 긴 내용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행복하라 그리고 반성하라;

민우와 지숙은 행복하고 석훈과 미연은 반성해라, 손쉬운 작가의 한계

 

 

 

과연 <가면>이라는 드라마는 뭘 남겼을까? 착한 일을 하고 착하게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작가가 이런 의도를 담았다는 실패다. 흥미로운 전개에 한계를 느낀 작가가 정신없이 결말을 위한 결말에 집착했다면 이는 맞는 답이 될 것이다. 그만큼 초반과 달리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계를 드러낸 것은 분명하다.

 

꿈같은 하루를 보낸 민우와 지숙은 함께 경찰서로 향한다. 지숙은 자수를 하기 전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찾아 밥을 함께 먹는다. 그 행복한 기억을 유지하고 집을 나서던 지숙은 미연과 마주한다. 미연을 만난 지숙은 경찰서가 아닌 민우가 제안하고 석훈이 연 기자회견장으로 향한다.

 

기자 회견장은 이 모든 논란을 마무리한 공간이 되었다. 석훈은 이 자리에서 민우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안전하게 죄를 벗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석훈이 아닌 민우를 위한 장소가 되었다. 죽었다던 지숙이 기자 회견장에 등장하며 석훈의 모든 계략은 무산이 되었다. 죽었다는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라고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복잡하고 단단해 보였던 석훈의 모든 악행은 지숙의 등장 하나만으로 끝났다. 자신이 은하가 아닌 지숙이라고 밝히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뭔가 그럴 듯한 반격이나 반전을 혹시라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민망하고 황당한 결론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럴 듯하게 늘어놓기는 했지만 이를 수습할 능력이 없자, 그저 말로 모든 것을 풀어 단죄를 하는 형식은 최악이다.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모두가 바라보는 상황에서 도망을 치는 석훈의 모습도 황당하기만 했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생각한다면 보다 그럴 듯한 반격을 해야 하지만 스스로 그 자리를 피하는 순간 자신이 바로 범인임을 인정하는 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주를 한 석훈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능함이 가득한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석훈은 그저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런 석훈을 도와 함께 해외로 떠나려던 미연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고 포기한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위해 그의 안녕과 행복을 빌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미연. 그런 미연의 마음을 뒤늦게 깨닫고 전화를 해보지만 이미 미연은 죽고 난 후였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미연을 찾은 석훈.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였다. 그렇게 감옥에 갇힌 그는 책 속에 나온 미연의 사진을 보고 "조만간 내가 곧 찾아갈 여자다"는 말로 미연을 평가했다. 뒤늦게라도 진실한 사랑을 깨달았으니 석훈에게도 행복이겠다.

 

지숙 역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복역을 한다. 그런 그녀를 잊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어가는 민우. 그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재벌 회장이 아닌 평범한 남자가 되어 지숙과 행복한 생활을 하는 그는 그게 행복이라고 확신했다. 지숙의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이야기했던 꿈이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현실이 되었다.

 

 

작은 레스토랑을 열고 지숙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들에게는 어떤 고민도 불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한 모습만이 가득한 그들은 <가면>이 표현하고 싶은 최고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악의 편에 섰던 미연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악의 중심이었던 석훈은 감옥에서 일생을 보낸다. 남겨진 선한 편인 민우와 지숙은 딸도 낳고 행복한 삶을 산다.

 

<가면>은 무척 흥미로운 소재였다. 자신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타인의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초반 이야기 흐름은 의외의 걸작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반으로 넘어서며 작가 스스로 감당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버린 이야기를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작가의 문제는 결국 <가면>이라는 드라마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렸다. 자중지란에 빠진 작가로 인해 드라마는 길을 잃어버렸고, 오직 주요 출연자들에 기댄 드라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애와 주지훈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두 배우의 매력이 살아났고, 연정훈과 유인영의 악인으로서 활약도 그들의 연기를 다시 보게 했다. 물론 어설픈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한계가 명확했음은 분명했다. 캐릭터 구축에도 실패하고 오직 배우들의 연기에만 기대야 하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는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가면>은 색다른 시도를 통해 흥미를 유발했지만 작가의 한계는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결과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드라마의 질은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한심한 결과는 모두 작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능력이 곧 드라마의 질이라는 점은 <가면>이 잘 보여준 셈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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