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3. 09:30

용팔이 9회-잠에서 깨어난 김태희 활용법 실패가 부른 민망한 전개

갈수록 긴장감과 재미도 하락하는 <용팔이>는 씁쓸하다. 대진 운이 좋았다는 것과 주원의 초반 폭풍질주가 시청률 상승을 이끌었지만, 잠에서 깨어난 김태희 활용법 실패는 시청자들마저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생방송 촬영에 모두가 지쳤는지 이야기의 흐름마저 인공호흡 수준으로 떨어진 게 <용팔이>다.

 

주원과 김태희 연이은 키스;

병원에서의 긴박함은 성당 안에서 봉인되었다, 과분한 시청률과 상반된 어색한 전개

 

 

 

 

태현과 여진이 한신병원을 탈출해 성당으로 향한다. 죽어야만 사는 여진을 병원에서 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죽어도 다시 죽어야만 모든 것이 끝나는 현실 속에서 여진을 가능한한 그들 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태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이코가 되어버린 황 간호사가 고 사장의 지시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후 모든 것은 정리된 것처럼 다가온다. 한도준과 고 사장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여진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 그들은 한신병원 원장마저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 과장이 급하게 도피를 시도하며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이어진다.

 

김태현 역시 제거 대상이 된 상황에서 도준의 부인인 채영은 노골적으로 그를 보호하고 나섰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세워 태현을 지키기 위해 나선 채영이 어떤 역할을 해줄지 알 수는 없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 과장과 함께 반 한도준의 편에서 태현과 싸울 수밖에는 없다.

 

한신그룹을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알력 싸움은 여진의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서로 손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동지가 된 듯하지만, 언제든 균형이 무너지면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평화는 곧 잔인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준에 맞서기 위해 나섰던 이채영은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던 고 사장의 본심을 확인한 후 분명한 거리감을 갖춰야만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결혼이라는 관계를 유지할 뿐 도준과 채영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여진의 죽음의 최전선에 나섰던 이 과장은 악몽에 시달려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시에 의한 선택이었지만 피할 수도 있었던 살인에 동참하고 결정을 냈다는 점에서 불안은 더욱 강화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장이 살해당한 것을 확인한 후 그의 불안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앞에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여진의 죽음은 당연하게도 여진을 돌보던 이들을 제거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알고 있는 자들을 살려둘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제거해야만 범죄의 완성이 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살인 행각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는 없다. 

 

불안함은 곧 죽음의 행렬로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태현과 여진은 성당 안에서 그들만의 행복에 빠져있다. 금사빠라도 되는 듯 어느 날 갑자기 죽을 듯한 사랑에 빠져 행복이 불안할 정도다. 사선을 넘나들며 정이 쌓이고 그게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에는 뭔가 속 시원한 몰입이 존재하지 않는다. 간절함이 간절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용팔이>를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 듯한 장소를 찾아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진부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PPL까지 함께 하면서 멋진 화면을 담아내는 것이 그들의 사명감이라도 되는 듯 방송의 거의 대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은 당혹스럽다. 3년 만의 고해성사를 하면서 그 남자를 잃을까 두렵다는 여진의 고백 역시 몰입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일 뿐이다.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급락하는 이유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잠에서 깨어난 여진에 대한 활용법이 어떤가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은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실패했다. 물론 과정이라는 점에서 선언적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초반 흥미로웠던 이야기 구조는 여진이 깨어나는 순간 무너졌고, 과도한 연애 감정에 몰입한 이야기는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용팔이>는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대표적인 갑들이 재벌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사회적 문제들을 의식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고, 마치 의무적으로 등장하는 사회 문제는 깊이 있는 사고나 관찰이 없는 하나의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불쾌하게 다가올 정도다.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니 사회적 문제가 강렬하게 다가올 수없는 것도 사실이다. 철저하게 돈에 의해 서열이 정해진 현실을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 이유는 작가의 아쉬운 전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용팔이>가 살기 위해서는 깨어나 이제는 식사도 잘하는 여진을 어떻게 활용할 것 인가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여진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현재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만 흘러가는 이야기가 과연 어떤 균형감을 잡으며 흥미롭게 이어질지 기대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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