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3. 10:01

무한도전 하시마 섬의 악랄했던 민낯 들춰낸 배달의 무도

하시마 섬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근대 건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사실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일본의 만행은 지난 '우토로 마을'에 이어 '지옥의 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배달의 무도가 보인 가치;

국가가 하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 바로보기, 무도가 보여준 광복 7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처량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조직적인 움직임들은 여전하다. 독재 시절에 실행되었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은 그래서 섬뜩하다. 독재를 미화하고 친일을 정당화하는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던 이들이 다시 국정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명확하다.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는 4번의 방송으로 마무리되었다. 해외 동포들에게 고국의 맛을 전달한다는 단순하지만 대단한 도전은 수많은 사연들을 특별한 감동으로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모두 담은 이번 특집에서 핵심은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이었다.

 

강제 징용되었던 한국인들의 진실을 담고 있는 두 곳은 우리가 애써 잊으려고 했던 역사의 진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지만 결국 우리는 강제적으로 역사를 잊으라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주체가 타자가 되어 스스로 타자에 의해 진짜 타자가 되어가는 이 황망한 현실을 무한도전은 적나라하게 바라봤다.

 

우토로 마을의 과거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봤던 <배달의 무도>는 이번 주에는 하시마 섬을 찾았다. 이미 반복된 예고로 인해 많은 이들은 '하시마 섬'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느끼기도 했다. 도대체 그 섬이 무엇이고 왜 중요하게 다가오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문제의 하시마 섬은 2015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 측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그래서 처량하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바라본 하시마 섬은 분명 그 가치를 담고 있다. 1916년 일본에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조의 집합주택 '30호동'이 건설되었다. 그 시절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한 대단위 주거 시설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시마 섬이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1921년 미쓰비시 중공업이 건조하던 일본 군함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별칭이다. 1941년 석탄 출탄량이 최대치에 올라서자 일본은 한국에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해 군마도로 보냈다.

 

전쟁 말기 군수품 조달에 혈안이 되었던 일본은 한국인들을 강제 노역을 통해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문제는 그들의 이런 강제 징용의 문제는 부당함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렇게 자랑하는 철근 콘크리트 주택에 호화스럽게 생활하던 일본인들과 달리, 강제 징용된 한국의 젊은이들은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역을 하고 추한 지하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실제 당시 강제 징용을 당해야만 했던 젊은이들은 이제는 노인이 되었다. 그들의 증언과 하시마 섬 안내인이 설명하는 내용과의 지독한 괴리감은 <배달의 무도>가 보여준 가치다. 진실을 왜곡하고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무도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이 현재 가치로 500만 원이 넘는 고액의 월급을 받고 현대화된 시설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던 사진들로 홍보를 하는 모습은 섬뜩하다. 그들의 자랑과 달리, 강제적으로 악마의 섬으로 가아야만 했던 한국 젊은이들은 팬티 한 장만 입은 채 40도가 넘는 탄광 속에서 12시간이 넘는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강제 징용을 당해 악마의 섬으로 가야만 했던 그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한 고통은 배고픔이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밥도 존재하지 않고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을 그것도 양껏 먹지 못하는 이 지독한 현실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진실이다. 악랄한 노동 탄압을 일삼은 그들의 만행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지독한 현실을 버텨낸 생존자들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난 쌀과 고깃국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은 가슴 저미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청년들은 그렇게 지옥의 섬으로 끌려가 40도가 넘는 탄광에서 쓰레기를 먹으며 지하층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버텨야만 했던 이 지독한 현실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다.

 

강제 징용되어 지옥의 섬에서 지독한 노동을 해야만 했던 한국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수백 명이 죽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강제 징용되었던 한국인들은 다카시마 섬으로 옮겨져 묻혔다. 하지만 이 악랄한 존재들은 숨진 한국인들의 모든 것을 태워버려 증거를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공양탑이 세워졌다는 다키시마 섬을 찾아간 하하와 서경덕 교수, 그리고 제작진들까지 흩어져 그곳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좀처럼 공양탑을 찾을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키시마 섬에 사는 주민을 통해 어렵게 찾은 그곳에는 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잡풀이 가득한 그곳을 헤치고 들어가 찾은 공양탑은 자연스러운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찾은 공양탑이지만 좀처럼 찾기가 어려운 이 한심한 현실이 끔찍하다. 그곳에 하얀 쌀밥과 고깃국을 올리고 추모하는 무도의 모습에 울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지원해서 갔다고.....하시마 섬을......"

 

일본 정부는 하시마 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강제 징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 젊은이들이 지원해서 그곳에 갔다는 그들의 왜곡에 실제 강제 징용이 되었던 생존자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지옥의 섬.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세포가 모두 기억하는 이 지옥의 섬을 알아서 찾아갔다는 일본의 행동은 당연히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일본의 이런 역사 왜곡에 분노하듯 우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이는 집단들에 대해서도 소리쳐야만 한다. 친일을 왜곡하고 독재를 찬양했던 역사 교과서 파동이 일어 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 왜곡된 교과서를 만들었던 무리들이 이번에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의 왜곡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잘못된 역사 왜곡 역시 막아내야만 한다.

 

<무한도전>은 정부도 하지 못하는 살아있는 역사 바로알기를 보여주었다.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이 품고 있는 일제 강점기 탄압의 역사는 <무한도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크게 공론화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대한민국에서 강제적으로 잊혀져 가는 역사를 바로 알리는 <무한도전>은 역시 최고였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Trackback 0 Comment 1
  1. Favicon of https://breadcorps.tistory.com BlogIcon -_________-0 2015.09.13 21:4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이 편은 못 봤네요~ 늦었지만 봐바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