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 08:20

용팔이 17회-시청자들마저 능욕하는 작가의 한심한 능력, 이게 최선인가?

연장을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많았던 작가의 한계는 바닥까지 드러나는 느낌이다. 나름 반전을 한다고 내보인 형식이 참 구태의연하기만 하다. 이런 드라마를 써내는 것도 힘들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엉망인 드라마도 이제는 1회만 남기고 있다. 

 

다시 보기 힘든 용두사미;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최악의 이야기 전개, 작가의 시청자 우롱 끝판왕

 

 

 

 

작가라는 직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탁월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아쉽게도 그렇게 뛰어난 작가들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작가라는 명칭마저 부끄러운 글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참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연장이 된 두 번의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 마음에도 없던 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 그런 그 사람의 죽음을 위해 복수를 한다는 설정은 과연 어떤 사고 체계에서 만들어질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초반 시청자들을 흥분하게 하던 이야기의 흐름은 여진이 깨어나며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용팔이>는 가장 뜨겁던 초반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유사한 설정일 뿐 표절은 아니라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논란 이후 이야기는 허약해지기 시작했고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린 것도 사실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과연 초반 글을 쓰던 작가와 현재의 작가가 동일 인물이냐고 물을 정도로 이야기는 완벽하게 꺾이고 무의미한 이야기의 연장일 뿐이다.

 

최악의 용두사미 드라마가 20%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주원과 김태희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제목과 상관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 <용팔이>에 용팔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허울뿐인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만 존재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 태현은 작은 의원을 하면서 신선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죽을 수도 있었던 여동생은 완벽하게 회복해 돌아왔고, 세상 그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행복이 보인다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는 듯한 이야기는 한심할 정도다.

 

 

조폭과 간호사, 태현이 어울려 한낮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장면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것도 모자라 채영은 모든 것들을 관조하듯 멀리서 여진이 이런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통해 여진을 잔혹하게 죽이는 복수에 나선다.

 

채영은 죽은 남편의 복수(갑작스럽게 사랑하게 된)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여진을 죽이는 것이 곧 복수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선택은 잔인하게 이어진다. 환각을 불러오는 약을 물에 타서 먹이는 방식을 통해 여진을 압박하는 장면은 드라마 <가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를 이용해 물에 약을 타서 환각을 보게 만들고 주치의까지 짜고 한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가면>과 동일하다. 패러디라고 하기 에도 민망한 이 장면을 보며 <용팔이>가 왜 한심한지 다시 깨닫게 된다.

 

뜬금없이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여진은 간암 2기라는 진단을 받고 이를 철저하게 숨기며 그녀가 죽기를 바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 드라마를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은 대단할 뿐이다. 과연 작가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작진들이 돌아가며 대충 써서 촬영을 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서글프고 아픈 여진은 모든 것을 내던진 태현 곁으로 가려고 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말려 죽이려는 비서실장과 일당들은 잔인한 방법을 선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태현이 나서고 그녀의 죽음을 막으려는 노력들은 버려진 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여진의 진료 기록을 철저하게 숨겼지만 그녀가 이끌던 팀의 엉뚱한 천재는 해킹을 통해 알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살리기 위한 수술은 이 과장의 몫이 될 것이다. 죽을 줄 알았던 여진은 살아나고 잔인한 피의 복수가 아닌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회사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고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식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이야기 전개가 필수다. 하지만 <용팔이>는 이를 철저하게 지키지 않고 있다.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공감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반 그럴 듯한 이야기 전개는 표절 논란이 불거진 후 급격하게 엉망이 되었다.

 

논란이 되었던 설정까지만 그럴 듯하게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엉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시청자들은 표절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작사에서는 이미 나와 있던 대본이라고 일갈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용팔이>는 좀처럼 드라마다운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고 풍문에 휩싸인 채 마지막 한 회만 남기게 되었다.

 

참 신기하다. 이렇게 엉망으로 진행되는 드라마가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미스터리하다. 막 써도 그저 시청자들에게 호평 받는 배우들만 출연하면 시청률 걱정은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해외 시장에 <용팔이>가 팔리고 방영이 된다면 한류에 도움은 커녕 한국 드라마의 몰락을 이끄는 징표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개연성도 공감대도 존재하지 않는 쥐어짜듯이 그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에 급급한 드라마는 분명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런 식의 드라마는 모두를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드라마들의 완성도가 급격하게 퇴보하는 상황에서 <용팔이>는 그 정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다시는 이런 허무한 드라마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정도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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