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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육룡이 나르샤 2회-빅엿 든 김명민에 환호하는 이유

by 자이미 201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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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나라 사신을 제거하고 수교를 막으려는 정도전의 행동은 2회 최고의 장면이었다. 지략 싸움을 벌이는 그들의 관계 속에서 이 장면은 한 쪽이 완벽하게 무너질 수도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김명민과 백성들의 노래는 뭉클함까지 심어주었다. 

 

위정자들 엿이나 드세요;

부패한 권력을 막는 것은 국민이 하나 되는 것, 정도전 진정한 잔트가르

 

 

 

나약한 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그걸 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담은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다수의 힘이다. 소수의 가진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은 고려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되었고 나라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만 급급한다. 드라마 속 이인겸이나 길태미처럼 말이다.

 

세계에 길에 남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부패한 부르조아를 무너트린 역사적인 시민 혁명이다. 그 프랑스의 시민 혁명에서 울려 퍼졌던 '민중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전이 선창한 노래는 그래서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원 사신을 막기 위해 지략 대결을 벌인 그곳에서 위기에 처한 정도전이 목청껏 불렀던 그 노래의 힘은 곧 혁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고려에서 가장 강한 장군인 이성계는 이인겸의 간사한 지략에 무너지고 말았다. 평생 숨기고 싶었던 그의 비밀은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성계의 아버지와 자신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을 어떻게 이인겸이 알고 있는지 의아하지만 그는 평생 감추고 싶은 비밀을 알고 있는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배신자를 강력하게 처단하는 진정한 사내인 이성계가 사실은 배신자였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었다. 쌍성총관부 시절 자신과 집안을 도왔던 조소생을 배신하고 고려의 영웅이 되었던 이자춘과 이성계. 평생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이인겸이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비굴하게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충성을 맹세하는 이성계의 모습을 훔쳐보던 방원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바라본 세상에서 가장 용맹하고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잔인한 이인겸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어린 방원을 무너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조선 창건 후 아버지와 아들, 왕과 왕자로서의 대립 관계의 시작은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러러보고 싶은 아버지가 넘어야만 하는 아버지가 되는 순간 아들은 아버지는 더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방원과 땅새는 정도전을 보면서 스스로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이 되어버린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인겸의 집에 숨어들어 창고에 갇히고 연희극 패거리의 짐 속에 숨어들어 도망칠 수 있었던 분이와 땅새는 겨우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땅새가 정도전 무리에게 붙잡힌다.

 

땅새가 그렇게 붙잡힌 것 역시 운명이었다. 정도전이 이인겸에게 스스로 원 사신을 맞이하겠다고 나선 것을 알게 된 고려 신진사대부들은 자신들의 병사를 데려와 정도전을 포박하고 가두게 된다. 이 상황에서 땅새가 갇히는 신세가 되며 분이는 방원과 함께 그곳으로 향한다. 운명처럼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막혔던 정도전의 지략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이인겸은 정도전을 이용해 그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모든 이들을 무너트리기 위해 묘수를 착안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원 사신을 죽이려는 정도전을 이용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다. 고려 제일 검이라 자청하는 태미가 스스로 원 사신으로 위장하고 군중들 앞에서 정도전을 제압하며 승리를 만끽하는 순간 승자는 바닥에 쓰러져있던 정도전이 되는 순간은 진정한 반전이었다.

 

칼이라 생각했던 것은 칼이 아닌 커다란 엿이었다. 자신을 이용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이인겸 무리들에게 "엿이나 드세요"라며 조롱을 하는 정도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모든 패를 읽고 있던 정도전은 이인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고, 결국 원 사신 스스로 두려움에 물러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의도했던 모든 것들이 정도전에 의해 만들어진 함정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무력으로 그들을 막으려 나섰다. 하지만 이미 정도전의 편에 서서 원과의 수교를 막으려는 이들은 칼 앞에 몸으로 맞섰다. 원과 수교를 하는 순간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는 없다.

 

몰락해가는 원과 수교를 하는 순간 커가는 명나라에 의해 침입을 당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수탈에 백성들은 더는 살 수가 없었다. 소수의 권력자들은 온갖 사치를 부리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다수의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죽어나가야 하는 것이 고려 말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반짝이는 화려함 뒤에 잔인한 현실이 감춰져 있던 고려. 그 고려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멸망은 자명한 사실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정도전의 이 선택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왔다. 누구의 편이 아니라 백성 앞에서 서서 그들의 고통을 품은 정도전의 용기는 노래와 함께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성난 민중들의 노래.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음악. 심장 박동이 북 소리로 가득해지면 내일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되지"

 

'레미제라블'의 시민 혁명이 최고조로 오르던 순간 모두가 함께 부르던 '민중의 노래'는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더는 부패한 권력을 묵과할 수 없었던 민중들이 거리에서 거대한 그들의 행렬에 맞서 한 사람의 선창을 시작해 모두가 합창을 하는 그 장면은 영화 <레미제라블>의 핵심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과 같은 혁명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4.19 혁명과 5.18은 대한민국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민혁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군중들이 함께 하던 노래가 있다. 그 중 한 곡인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곡은 여전히 뛰어난 음악성과 상징성까지 갖춘 걸작이다.

 

'오적'이라는 글로 박정희 독재시절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세상에 알렸던 김지하가 작사한 이곡은 혁명가와 동급이었다. 그 가사의 간절함은 시대를 상징하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말년이 되어 독재자의 딸을 찬양하고 표리부동한 행동을 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은 경악했다.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던 그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를 더는 부를 수 없게 만든 김지하의 변절은 우리 시대의 몰락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김지하와 같은 변절의 이야기는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중요하게 다가온다. 고려 말 혼란을 틈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권력의 맛에 심취해버리는 홍인방이 바로 그 인물이니 말이다. 이제 이성계와 정도전의 존재를 알린 <육룡이 나르샤>는 아직 4명의 용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중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정도전의 모습인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이방지가 되는 땅새와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 사모하는 존재인 정도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믿었던 아버지에게서 더는 찾을 수 없었던 '잔트가르'를 이방원은 정도전에게 찾았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노래. 그 속에 어머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열쇠가 있다고 믿는 땅새와 분이는 정도전의 노래를 통해 그를 희망으로 봤다. 그렇게 정도전의 전설은 시작되었다.

 

독재에 항거하던 자가 독재자의 딸에 충성을 맹세하는 현실 속에서 더는 빅엿을 들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이를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타협하는 현실 속에서 당당하게 권력에 엿을 먹이는 정도전의 이 한 방은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앉듯 시원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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