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4. 08:52

육룡이 나르샤 4회-이방지 변요한의 분노, 그들은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이방원과 이방지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오늘 방송의 핵심이었다. 훗날 가장 중요한 존재로 자리할 그들이 길에서 우연하게 만난 두 남자의 모습은 <육룡이 나르샤>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왜구 침략을 빌미로 백성들을 더욱 수탈하는 고려 귀족들의 모습은 경악스럽기만 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래서 섬뜩하다. 

 

왜구들보다 못한 국가;

땅새를 이방지로 만든 참혹했던 사랑, 사리사욕에만 집착하는 위정자들

 

 

 

 

이방지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연희. 그녀를 지키지 못한 무력함에 땅새는 죽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죽음대신 복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무당파를 만들고 태극권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장삼봉은 땅새를 구하고 그가 이방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사대부들을 이끌며 무너진 고려를 바로 세우려던 홍인방은 유배에서 돌아와 변절자가 되었다. 도당을 이끄는 이인겸과 길태미와 하나가 되어 도당 삼인방으로 악명을 떨치는 존재가 되어버린 홍인방의 존재감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 어떤 시절에나 홍인방과 같은 존재는 있다. 현대사에서도 민주화를 외치던 인사가 어느 순간 변절해 역으로 민주주의를 해치는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접해왔다. 망각의 샘물이라도 들이 킨 듯 국민들 역시 역주행하는 권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현실은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말들을 만들어낼 정도다.

 

고려 말 수시로 침략해오는 적들로 인해 많은 백성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고통스러워했다. 단순한 외침에 대한 고통만이 아니라 배고픔에 시달려야만 하는 백성들에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나라를 바로세우고 백성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지켜야 할 존재들은 오히려 백성들을 수탈하고 죽이는데 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변절자는 원래 기존의 악랄한 존재보다 더 악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악랄함으로 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홍인방은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이인겸과 길태미를 위해 스스로 앞장서 악행을 저지르는데 조금의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다.

 

 

왜구의 침략이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도당에 모인 위정자들은 서로 미루기만 할 뿐 그 어떤 책임감도 가지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아니면 움직이지도 않는 그들에게 국가 땅도 사라진 상황에서 힘겨워하는 이인겸과 길태미를 위해 홍인방은 묘수를 짜낸다.

 

외적의 침략을 국가만 책임질 이유가 없다. 백성들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들의 땅을 빼앗아 왜구와 싸우려는 고려 귀족들에게 나눠주면 된다는 홍인방의 제안은 철저하게 자신들만을 위한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악랄함이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절대 악들이 무고한 백성들을 땅을 빼앗아 배를 불리겠다는 이 한심한 행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모습은 경멸스럽기만 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보다 정교하고 강력해지기만 한다는 사실이 두렵게 다가올 정도니 말이다. 이 지독한 약탈의 결과는 평범한 백성 땅새를 삼한 제일검 이방지로 만들어냈다. 고향 집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을 살아가던 땅새는 평생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연희와 행복한 꿈을 꾸었다.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 행위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길태미의 쌍둥이 형 길선미의 말을 듣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동생 분이와 그렇게 살아가려 했다. 자신을 기다려주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해준 연희와 그렇게 땅을 일구고 살아가는 것 역시 행복이라 생각한 땅새는 그저 즐겁기만 했다.

 

 

칠석제에 함께 할 땅새를 위해 옷을 만들며 수줍게 웃던 이 어린 연희는 그렇게 행복했다. 곤지를 찍으려는 순간 길태미가 보낸 패거리들에 의해 모든 것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자신의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마을 주민들은 잔인하게 살해당해야 했고 도망치던 연희는 그 패거리들에 의해 겁탈을 당하고 말았다. 먼발치에서 연희가 겁탈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땅새는 당위성을 찾기에만 급급했다.

 

앞서 이미 사람을 죽였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면 모두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땅새의 두려움을 어린 분이는 분노하며 "차라리 죽었어야지"라는 말로 대신한다.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상황에 맞서야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냐는 분이의 분노는 결국 땅새가 이방지가 되는 이유가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도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숨죽인 채 숨어있어야만 했던 자신. 그리고 복수를 하러 찾아간 자리에서도 노모와 어린 딸을 보고는 복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자결하려던 그는 장삼봉에 의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중국 최고의 무술가에 의해 땅새는 이방지가 되고 삼한 최고의 검객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이방원과 이방지는 동일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수치스러운 삶과 소신을 꺾어야 하는 순간 어린 방원은 맹자의 책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에게 수치를 준 자들을 잔인하게 죽여 복수를 했다. 그리고 그는 정의론을 펴며 악은 강하게 응징해야만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방지가 되는 땅새 역시 자신의 삶을 산산조각 난 자를 찾아갔지만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노모와 어린 딸을 보는 순간 그 잔인한 범죄자마저 죽일 수 없었던 그는 그렇게 이방원과는 기본적으로 달랐다. 서로 목적인 같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의 관계는 그래서 흥미롭다.

 

"왜구 홍건적과 다를 게 뭐여. 이 딴 게 나라여"

 

칠석제에 말도 안 되는 떼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마을 사람들. 죽은 아들과 딸, 형제자매를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적들에게서 백성을 지키는 것이 임무인 그들이 오히려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이기도 하다.

 

냄비 안에 갇힌 개구리가 조금씩 뜨거워지는 물에 적응해 자신이 삶아지는 지도 모른 채 그렇게 죽어가듯 현재 대한민국은 그렇게 몰락해가는 느낌이다. 스스로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도 분노하는 법도 모르는 이 지독한 무기력한 상황은 결국 고려 말 나라를 몰락시킨 귀족들과 크게 다를 게 없으니 말이다.

 

사리사욕에만 집착하고 그럴 듯한 명분만 존재할 뿐 실질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말장난뿐인 위정자들의 행태는 마치 강력한 DNA처럼 전혀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변할 뿐이다. 땅새에서 이방지가 된 그가 고려 귀족인 백윤을 한 방에 보내버리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낀 것은 그래서 당연할 것이다.

 

강렬함으로 다가온 이방지. 그리고 그런 이방지를 우연하게 본 후 결코 잊지 못했던 이방원. 이들이 정도전 앞에 다시 모인다. 그리고 그들은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는 현실에 대한 강렬한 풍자와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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