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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송곳 6회-지현우의 분노,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by 자이미 201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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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마트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저 단순히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더욱 엉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송곳>은 답답함을 풀어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갑질이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임을 <송곳>은 잘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모르는 사회;

자가당착에 빠진 드라마 <송곳> 드라마와 현실 사이 엇갈리는 노동자 탄압

 

 

 

 

노조란 무엇인가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송곳>을 봐야하는 이유가 된다. 오늘 방송에서는 노노갈등을 어떻게 일으키고 구축하는지가 잘 드러나기도 했다. 사측에는 독이 될 수밖에 없는 노조를 막기 위한 그들의 행동은 악랄함으로 이어질 뿐이다. 

 

 

결코 가질 수 없는 희망을 품게 만들며 스스로 적이 되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사측의 집요한 행위는 점점 거세게 푸르미 마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행위는 불안을 조장하고 강화시키고는 한다.

 

노조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푸르미 마트 노조는 손쉬운 상대일 뿐이다. 다만 푸르미 마트 역시 갑질을 해보는 것이 낯설어 힘들 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것이 바로 '무노조 경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사측의 강력한 힘을 견제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그들이 스스로 연대하고 맞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조는 당연한 수순일 뿐이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여섯 번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송곳>이 노조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를 견지하는 이유 역시 우리 사회에 노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노조를 가질 자격이 없다"

 

6회 방송에서는 프랑스 사측이 왜 한국에서 노조를 부정하고 탄압하고 압박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나라 전체가 부정과 비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노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갸스통의 반박은 명확했다. 갸스통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가당착 일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자신도 노조원이지만 한국에서는 노조를 탄압하는 존재가 된 갸스통의 자신을 위한 당위성은 이수인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기업을 파괴시키기 위한 노조. 정부도 언론도 부정하는 노조를 누가 인정하느냐는 갸스통의 발언은 편의적인 발언일 뿐이다.

 

기업을 파괴하는 노조로 둔갑시킨 것은 사측이고 정부다. 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를 탄압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대로 있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방어하는 것이 강성 노조라고 이야기 된다면 이는 부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요구 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미 권력의 시녀를 자처한지 오래다.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 그리고 다시 언론탄압을 시작한 현재까지도 언론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테니"

 

드라마 속 이수인이 자가당착에 빠진 채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갸스통에게 한 이 말은 속 시원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는 논리는 존재한다. 그 논리가 어떤 식으로 수단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경계선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앞세우며 충돌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노조 설립을 하고 힘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힘겨움은 이번 회 차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노조를 만드는 것이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힘들어도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발언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힘든 일이기도 하다. 결국 그 사람들이 수단이자 목표인 상황에서 조바심은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이유가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수인과 구고신이 등장하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송곳> 6회의 핵심이었다. 밟으면 꿈틀하고 억울하면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빼앗겨도 화내지 않고 때려도 반격하지 않으니 탄압은 당연함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구고신의 첫 강의 장면은 압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잘 사는 선진국이 되는 것처럼 장밋빛 청사진이 나오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철저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갈취하면서 그래야 잘 사는 선진국이 된다는 어불성설은 당연하게 늘어놓는 현실 속에서 분노는 내재된 공포 속에 존재한다.

 

대단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송곳>은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조중동의 하나이자 거대한 재벌의 피를 이어받고 있는 JTBC에서 이런 드라마가 방송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많은 이들은 JTBC에서 <송곳>을 선택하고 방송한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기도 했다.

 

손석희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고 일정 부분 지상파도 하지 못하는 날선 공격을 한다는 점에서 위상이 과거와 달리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본질이 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드라마 <송곳>에 등장하는 음악과 관련된 노동자 탄압은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소수의견>의 작가 손아람 작가의 글은 <송곳>을 보이콧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음악을 제공하고 있는 업체가 보인 탄압과 이를 묵과하고 있는 JTBC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음악 생산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하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송곳>을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음악을 빼앗긴 채 제대로 된 임금도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그런 상황을 타계할 생각도 없이 착취하는 고용주의 편에 선 방송사의 행태는 <송곳>과는 너무나 먼 지점에 서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웹툰과 극중 구고신이 이야기를 한 대목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 발언은 촌철살인처럼 다가온다. 실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송곳> 음악 논란은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음원을 관리하고 유통하는 음원출판사와 같은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노동력 착취 현장은 드라마 <송곳> 속 푸르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악랄하기만 하다. 한겨레신문의 보도(우린 뭐든 시키는대로 하는 무명의 작곡 기계였다)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라는 대사 속에도 음악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만든 노동자들은 지금 현재 사측의 부당함으로 힘겨워하고 있다. 이런 악랄한 노동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편에 선 방송사가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창작지원비라고 불리는 알량한 '월급'도 문제이지만 창작자의 몫이 되어야 할 저작권에 대한 권리마저 침해하는 악랄한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곳의 음악을 과연 드라마 <송곳>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여전히 부조화인 종편과 손석희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이를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송곳>을 둘러싼 부당함은 JTBC의 현실이자 미래가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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