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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송곳 7회-우린 각자의 싸움을 할뿐 노조는 회사가 못해서 키운다

by 자이미 201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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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하는 그러나 애써 감춰지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송곳>은 매력적인 드라마다. 모든 권력은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길들이기에만 여념이 없지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런 한심한 현실 속에서 <송곳>은 우리 사회 노조의 가치를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우린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싸움을 한다;

준법투쟁과 노조 조끼에 담긴 가치, 노조는 회사가 못해서 키운다

 

 

 

 

한국인인 노조를 만들 가치도 없다는 갸스통 점장의 발언에 분노한 이 과장은 전쟁을 선언했다. 준법투쟁이 시작되며 푸르미 마트에서도 노사 대결 구도는 본격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노조 자체를 부정하는 그곳에서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선 그들은 여전히 힘들기만 하다.

 

주강민과 황준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7회는 이어졌다. 푸르미 마트에서 함께 일하게 된 사연은 그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가온다. 고교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그들은 학교 땡땡이도 함께 쳤고, 졸업 후 다단계에 빠져있던 준철을 구해준 강민이 위기에 처하자 함께 싸우던 게 그들이다.

 

푸르미 마트에 들어가 몇 년 일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의 이름으로 청과물 가게를 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가장 좋은 몫에 적당한 가격을 갖춘 가게 자리가 나왔지만 그들은 망설였다.

 

노조를 만들고 핵심적인 일을 하는 그들이 자신들의 꿈을 위해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만 생각한다면 바로 가게 계약을 하고 장사를 하면 되지만 그들에게는 책임감과 분노가 함께 했다. 평생 한 번도 누군가를 이겨보지 못했다는 준철은 모두와 함께 한 번이라도 이겨봤으면 좋겠다며 오열한다. 평생을 억누르며 살아야만 했던 고통. 불합리함과 부당함에도 맞서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노조 결성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인간의 선함과 약함에 기댄 관행들을 제거하면 조직은 멈춘다. 합리성을 강요하는 모든 조직은 비합리적 인간성에 기생 한다"

 

이 과장이 준법 투쟁을 선언하면서 푸르미 마트에서도 본격적인 노사 대립은 시작되었다. 부당 해고에 맞서 노조를 만들자 사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부당함은 더욱 악랄하게 다가왔고, 이에 맞서 노조는 준법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 했다.

 

 

제대로 된 권리를 부여하지도 않고 보장도 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오직 인간의 선함과 약함을 이용하는 사측의 관행은 결국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어왔다. 하지만 이런 선함과 약함을 제거하면 그 조직은 멈추고 만다. 그렇게 준법 투쟁은 부당한 노동력 착취를 하는 조직이 멈추는 이유가 된다.

 

대한민국의 조직 사회라는 것이 이런 선함과 약함을 이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서양보다 조직 문화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우리 풍토에서 노조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정이라는 단어를 악용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외치면 이는 곧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세계가 곧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푸르미 본조와 협상을 하던 사측이 던진 "문제 있는 사람들이 노조 하니까 그렇지"라는 말은 모든 것을 잘 대변해준다. 노조원들만 꼭꼭 집어 부당한 차별을 하는 현실 속에서 노조는 문제 있는 사람들의 조직이기 때문이라는 이 논리는 현재도 유효한 그들의 무기이자 신념이다.

 

노조의 준법 투쟁에 불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점장과 달리 정 부장은 적극적으로 노조를 파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선택은 인사상무를 만난 후 굳어진 신념이다. 처음부터 기회를 주지 않으면 되고 썩은 부위는 도려내고 새롭게 키우면 된다는 인사상무의 분노를 정 부장은 신념처럼 생각하고 실행한다.

 

 

'따봉'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 부장은 판매원으로 시작해 부장의 자리까지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만큼 노력했기에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문제는 그의 노력이 오직 사측에 대한 충성으로 맺어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부당함마저 사측의 요구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강요하는 행위는 이해될 수는 없다.

 

소위 말하는 빽도 줄도 없는 정민철이 이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철저하게 회사에 충성 맹세를 하고 실천하며 얻은 결과다. 고기를 다루다 손가락을 크게 다친 정 과장은 사측에 피해를 준다며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심줄이 끊어지며 엄지손가락은 언제나 치켜세워진 채로 남겨졌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 부장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준법 투쟁을 하는 그들 앞을 막아선 정 부장과 회사 측 사람들의 대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밀린 정 부장은 스스로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준법 투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기겁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행동 양식은 그저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 부장이 사측의 전사처럼 행동하듯 이 과장은 노조원들의 아픔에 힘들어 한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지병 같은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 과장에게 구고신은 그 미안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이기는 것 외에는 없다고 조언한다. 

 

 

노조를 처음 만들고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혹 잡혀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떤 처벌을 받을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곧 모든 것을 시작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포 정치를 이끄는 이유는 이런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함임을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정규직을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조원에 대한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 과장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는 누구나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싸움을 할지 말지 역시 각자의 결정이니 미안해하지 말라 한다. 모두가 이 과장 같은 인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쉽지만 모든 싸움은 각자의 선택이고 결정일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노조의 가치는 부당함에 맞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필요하다. 물론 노조가 존재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이상적인 노동 조건이 갖춰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그 어떤 곳도 그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필요하다. 더욱 여전히 공포 정치를 일삼고 강압적인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노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정 부장의 자해와 공갈 협박으로 경찰서에 출두하던 판매원. 그를 응원하기 위해 동료가 건넨 약을 그녀는 경찰서에 들어서기 전 자신을 배웅해준 이 과장에게 전한다. 먹고 힘내라는 그녀는 홀로 경찰서에 들어서 그 긴장감을 억누르지 못했다. 생전 처음 홀로 그곳에 들어선 그녀가 느꼈을 두려움은 상상 그 이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조실부모해 어린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돈도 벌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일을 시작한 한영실. 그렇게 일을 시작하며 친구를 만나게 된 영실에게 푸르미는 친정과 같은 곳이었다. 그만큼 특별한 공간인 푸르미 마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그녀가 느끼는 고통은 상상이상일 수밖에는 없다.

 

경찰서를 나서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주변을 보지만 그녀는 혼자다. 말로는 당당한 척 했지만 누군가 자신을 위해 기다려주기를 바랐던 그녀 앞에 이 과장은 존재했다. 애써 미안하다는 이 과장에게 "미안할 것도 많네요"라는 한영실의 말은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부당 해고에 맞서 싸워 복직이 된 차성학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모습이다. 부당한 행동이 일상이 되고 자연스러운 기업 문화로 굳어진 현실 속에서 어렵게 법적인 투쟁으로 복직이 된다고 모든 것이 정상이 될 수 없다. 복직이 된 차성학은 자신의 일이 아닌 공터에서 땅을 파는 일을 할 뿐이다.

 

사측은 그런 성학을 위해 사람을 하나 뽑기까지 했다. 오직 차성학을 괴롭히는 의무를 가진 자를 뽑은 사측의 의도는 명확하다. 노조를 만들고 대항하는 노동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악랄함이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성학은 매일 땅을 파고 묻는다. 그걸 멈추는 순간 이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 장교 출신인 이 과장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겁에 질린 이등병도 아니고 자신 역시 그런 병사에게 총을 겨눈 상사도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싸움이 아닌 모두가 각자의 싸움을 함께 하고 있을 뿐이라는 확신 말이다.

 

노조 조끼를 받은 노동자는 눈치를 본다. 혹시 자신만 이 조끼를 입어서 부당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본격적으로 노조 조끼를 입고 근무를 하는 첫 날. 그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누구도 보지 못하게 숨겨온 조끼를 계산대 밑에서 조용하게 입고 몇 번의 다짐을 하면서 눈을 감은 채 용기 내어 일어선 노동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노조 조끼를 입고 일어선 노동자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계산대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노조 조끼를 입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송곳>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노조의 가치는 부당함에 맞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니 말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한 광화문 집회에 법으로 금지한 차벽이 다시 등장하고 물대포를 조준해 70대 남성이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 주장을 강압적으로 막아서고 나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노조는 회사가 못해서 키운다"는 말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런 분노는 국가가 못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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