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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시그널 우리가 이 드라마를 봐야만 하는 이유

by 자이미 2016.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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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첫 선을 보였던 <시그널>은 기대만큼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르 드라마가 여전히 척박한 우리 환경에서 가장 앞선 작가의 신작은 기대만큼의 재미를 보여주었다. 최고가 만나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시그널>은 하지만 그 주제에 더 큰 가치가 부여된다. 

 

공소시효에 대한 담론과 공론화;

잊혀진 범죄, 결코 잊을 수 없는 피해자 가족 이제는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세상 그 어떤 범죄에도 아픔이 없는 것은 없다. 그런 점에서 범죄는 분명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범죄는 자연스러운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실수이거나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생기든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이치다. 

 

 

<시그널>이 주목하고 있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공소시효다. 최근 사라진 공소시효. 물론 2000년 8월 이후의 미제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이지만 강력 범죄를 저지른다면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공소시효를 폐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웠다. 그리고 얻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하지만 2000년 8월 이전의 사건은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맹점이다.

 

대한민국에 공소시효를 사라지게 만든 '태완이법'의 주인공인 태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구미제 사건이 되고 말았다. 1999년 5월 20일 대구 골목에서 당시 여섯 살이었던 태완이의 입에 고농도의 황산을 붓고 달아났다. 태완이는 지독한 염산으로 인해 전신의 절반이 3도 화상을 입었고, 태완이는 49일간 고통을 겪다 숨지고 말았다. 

 

태완이가 느꼈을 그 고통은 감히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태완이는 '검은 비닐봉지'와 '모르는 아저씨'라는 단서를 주었지만 끝내 범인을 잡는데 실패했다.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범인을 찾기에 혼신을 다했다. 그런 부모들의 노력은 여론을 만들었고, 뒤늦은 2013년 다시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부모들이 지목한 용의자는 경찰이 증거가 없어 더 이상의 진척을 보이지 못했고, 그렇게 태완이를 살해한 범인은 끝내 잡지 못한 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태완이의 죽음은 하지만 헛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접한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2015년 3월 발의했다. 그리고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불린 이 개정안은 7월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독한 고통 속에 숨져간 태완이의 범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태완이의 죽음은 대한민국의 강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도록 이끌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던 공소시효 폐지는 하지만 완성형이라고 불릴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

 

2000년 이전의 범죄들은 공소시효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그 유명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도 '개구리 소년'과 영화 <그 놈 목소리>의 실제 주인공인 '이형호 유괴 살인사건'도 영구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미제사건들이 존재한다. 2006년 6월 발생한 전주 수의대생 실종사건 역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중요한 미제 사건이다. 이 사건 외에도 2003년 11월 경기 포천 여중생 엄모(당시 14세)양 살인사건, 2004년 9월 대구 요구르트 독극물 투입 사건, 2004년 10월 경기 화성 여대생 노모(당시 21세)씨 실종 사건, 2008년 5월 대구 초등학생 허모(당시 11세)양 납치·살인사건, 2009년 2월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 사건 등 풀어내지 못한 미제 사건들은 여전히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는 황당한 공소시효 사건이 게재되기도 했었다. 19년 동안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쳐왔던 남녀가 국내로 돌아오기 위해 도피 중이던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을 찾아가 밀항 사실을 자수했다. 스스로 강제출국을 통해 국내로 돌아오려던 그들의 노림수는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6년 12월 당시 양궁 선수였던 가해자가 선수 합숙소 근처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며 남편을 살해하고 도주하며 시작되었다. 내연녀와 함께 국내를 떠돌던 그들은 1998년 위조 여권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쳤고, 2002년 일본에서 다시 중국으로 밀항해 10여 년간 은둔을 했다.  

 

범행 후 15년이 지난 2012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확신한 살인범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국 내 보유재산을 국내로 어렵게 반입하기는 했지만 국내로 돌아갈 위조 여권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난 2015년 11월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을 찾아 밀항 사실을 자수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문제는 국내를 떠나는 순간 공소시효는 멈춘다는 사실을 착각했다는 사실이다. 단식투쟁까지 하며 입국을 시도했던 그는 인천공항에서 들어오자마자 살인죄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공소시효는 종료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건은 그래서 황당하다.

 

공소시효는 그 기간 동안 범행을 저지른 자가 반성을 하는 시간이 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범행을 저지른 자가 도피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반성을 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달리,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종료되기를 바라며 살아갈 뿐이다.

 

 

<시그널>에서 어린 소녀를 납치해 살해하고 이를 목격한 남자 의사마저 죽인 희대의 살인마의 삶을 봐도 충분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간호사로 살아간 그녀 역시 공소시효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할 뿐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조그마한 반성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영국은 경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에 공소시효라는 것 자체가 없다. 미국의 경우도 몇 개 주를 제외하고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없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2010년 살인과 강도 살인 등 중대 범죄 12개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우리는 왜 드라마 <시그널>을 봐야만 하는 것일까? 이 드라마는 이 수많은 미제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는 여전히 죽은 이들을 잊지 못하고 범인을 잡아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드라마에서도 등장했듯이 15년 동안 단 하루도 먼저 보낸 딸을 잊지 못한 채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진범을 잡아달라고 요구하던 어머니. 공소시효가 지난 후 너무나 뻔뻔스러운 범인 앞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는 그 어머니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2000년 이전의 사건들 역시 영구미제사건으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소급 적용하거나 완전 폐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모든 강력 범죄들에 대한 공소시효를 완전히 폐지하고, 전담팀을 통해 미제 사건을 풀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미제 사건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담론과 공론화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한다. 우리의 관심만이 그 미제 사건들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시그널>이 보내는 신호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방송을 통해 공감을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미제 사건들을 풀어낼 수 있는 시스템의 정비와 공소시효 뒤에 숨어 있는 범인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큰 가치가 있다. <시그널>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결코 이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관심이 결국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었듯, 그런 관심이 곧 모든 사건을 풀어내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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