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7. 09:57

육룡이 나르샤 40화-유아인에 칼 겨눈 김명민, 밀본은 결국 신세경이다

무명과 손을 잡고 권력을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이방원. 여진족 족장 중 하나인 모엔파를 만나러 간 정도전은 만상객주에서 그곳이 무명의 본거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찾은 육산과 마주 한 정도전은 더는 이방원을 방치할 수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어린 선돌의 죽음과 빨간 봉투, 분이와 조직원은 반촌에서 밀본이 된다

 

 

 

여진족 족장을 만난 정도전은 만상객주에서 무명의 정체를 확인한 후 더욱 고민이 커졌다. 눈앞에 존재하는 무명을 제거하지 않는 한 새로운 국가에서 자신의 뜻을 그대로 펼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명과 이방원은 조선이 제대로 된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꼭 제거해야만 하는 존재들이었다.

 

정도전은 새로운 국가가 시작되면서부터 요동정벌을 계획했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위해 그는 건국 초기 변방에 나가 여진족장들을 은밀하게 만났다. 문제는 이런 정도전의 움직임은 그의 발목을 잡는 이유가 되었다. 태조 이성계 역시 결국 정도전이 꿈꾸었던 요동정벌을 수락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만상객주의 실체가 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정도전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무명과 이방원이 손을 잡은 상황에서 더는 지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심중은 가지만 확신이 없었던 정도전의 지략은 결국 이방원의 발목을 잡는 이유가 된다.

 

명으로 가려던 초영에게 이방원 모필을 통해 돌아오게 만들고 현장을 덮친 정도전으로 인해 이방원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무명과 관련이 있으면 처벌하겠다는 이성계의 엄명이 있었던 차에 이방원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태조를 분노하게 했으니 말이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몫이다. 정도전은 후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 의해 철저하게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자신이 죽인 정몽주를 영의정부사로 추증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정도전에 대한 견제와 정몽주를 죽였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종 2년에 정도전이 복권되기 전까지 조선에서 정도전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성계가 총애했던 그래서 어린 나이에 왕세자가 된 여덟 번째 아들인 방석은 결국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든 이유가 된다. 방석은 정도전이 추천한 인물이 아닌 신덕왕후 강씨의 간곡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뛰어난 인재라는 것은 이성계가 받아들일 정도였으니 탁월했겠지만, 어린 방석을 왕세자로 앉히면서 거스를 수없는 권력 투쟁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예고된 권력 투쟁을 막기 위해 정도전은 태조에게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일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선 초 정도전은 병권까지 거머쥐며 말 그대로 무소불휘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권력이 정도전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생각했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정도전의 일방적인 행동과 그의 성정이 과격하다는 평가는 어느 정도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문제가 되었다.

 

정도전과 함께 조선 개국에 큰 공을 세웠던 조준과 이신적 등이 그를 멀리하고 결국 그의 죽음을 이끄는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추진하고 하나의 틀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도전의 도전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가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려 했던 것 역시 그런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나라가 아닌 '재상총재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왕을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을 필요했다. 그런 권력을 가지고 그에 필요한 법제들을 만들고 구축하는데 있어 정도전의 노력이 폄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권력이 누구 하나에게 집중되면 이는 곧 부패의 이유가 된다.

 

정도전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뛰어난 인물이다 보니 그를 죽이고 왕이 된 태종은 그를 사후에도 멀리했다.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행동이 역으로 부정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도전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천재일 수도 있다.

 

그가 새로운 국가를 개국하고 관철하고 싶었던 재상중심의 '신권정치'는 독일식 총리제나 영국식 수상제, 그리고 스위스 식 집정부제와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만약 정도전의 '재상총재제'가 당시 뿌리를 내렸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진다.

 

사병을 타파하고 병력을 하나로 모으고, 개인의 토지 소유를 막고 토지공동체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정도전의 정전제는 결국 조봉암의 농지개혁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수백 년 전 이 모든 것이 이뤄졌다면 아마 우리는 현재 우리가 사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정도전의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지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 개국과 함께 명은 경계했다. 정도전의 생각처럼 요동정벌이 성공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새로운 중국의 주인이 된 명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는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의 재상중심의 '신권정치'가 경제와 토지개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정도전의 개혁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조선 건국과 함께 이런 개혁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전혀 다른 나라가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무너트리고 조선의 세 번째 왕이자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그는 정도전을 부정했지만 그가 추구했던 많은 가치들을 수행하기도 했다. 사병을 혁파하고 병권을 강화했으며, 왕제 수업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자신의 큰 아들이 공부보다는 음주가무에 빠지자 그가 아닌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 도를 세자로 삼았다. 

 

공부를 너무 해 오히려 책을 보지 못하도록 막을 정도로 공부에 열심이었던 충녕대군은 후에 세종대왕이 되었다. 정도전이 그렇게 원했던 '재상총재제'는 이룰 수 없는 가치가 되었지만, 최소한 능력을 갖춘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이념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과 정몽주에 대한 평가는 결국 그들을 누가 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되었다고 본다. 이방원은 자신이 죽인 정몽주를 왕이 된 후 영의정부사로 추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후대에 이런 모든 것을 더 뒤틀리게 만든 것은 바로 독재자 박정희가 정몽주를 충절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정도전에 대한 폄하가 더욱 가혹해지기도 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분이와 세종대왕마저 힘겹게 만들었던 비밀조직 '밀본'의 역할은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명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연향과 육산은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들이고, 그들의 내분은 결국 심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촌에서 터를 잡게 된 분이와 그의 조직원들이 결국 밀본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가오니 말이다. 

 

작가에 의해 구축된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닌 역사가 담지 않은 특별한 존재들에 있다. 세종대왕 시절을 담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핵심이었던 '밀본'은 정도전의 동생 아들이 외치는 '재상총재제'를 말하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인 <육룡이 나르샤>는 '무명'을 시작해 '밀본'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분이의 향후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아닌 분이가 왕족인 이방원과 모든 권력을 잡고 있는 정도전을 동굴로 불러낼 수 있었느냐는 의견들이 많다. 그럴 수 없음을 극중에서 분이는 스스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에 대해 그럴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역사에 기록된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과 대결도 흥미롭지만 이보다는 분이의 역할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어린 선돌이 죽었다. 그런 각성은 결국 분이를 독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희생 뒤에야 각성하게 되는 자신을 탓하는 분이는 과감하게 권력을 실체들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백성들은 복잡한 권력 투쟁이 아닌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은 반촌에 자리를 잡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반촌은 권력에 대항하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 공간으로 자리한다. 반촌은 조선의 게토였다. 누구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고, 어떤 권력도 반촌을 범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분이의 반촌 행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역사에 기록된 반촌과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풀어가는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촌에는 분이와 같은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역사에 세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어떤 권력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반촌이라는 공간의 가치는 단순힌 성균관 유생들을 위한 가치로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칼을 겨눴다. 더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둘은 결국 둘 중 하나가 사라자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분이의 역할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결국 역사에 기록된 그들의 전쟁과 상관없이 남겨진 것은 힘없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백성을 통칭하는 분이의 존재감은 그래서 더욱 큰 가치로 다가온다. 작가가 분이와 그의 사람들이 반촌에서 정착하며 어떤 가치를 품을 것인지에 대한 묘사가 곧 핵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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