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 09:42

육룡이 나르샤 44화-이방원과 정도전 운명 가른 요동 정벌, 시위는 당겨졌다

이방원과 정도전의 운명을 완벽하게 갈라 놓은 것은 다시 요동 정벌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도 요동정벌 추진과 회군의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요동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운명을 극단적으로 갈라 놓았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다시 운명의 추는 요동;

이방원과 정도전의 모든 것을 건 대결, 다시 한 번 그 대상은 요동이다

 

 

명 주원장은 조선의 정도전을 제거하고 싶었다. 군권까지 가진 정도전이란 인물이 자신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방원과 무명이 하나가 되어 정도전을 밀어내기 위한 전략은 그렇게 명으로 그를 보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시점 정도전이 명으로 가게 되면 조선은 완벽하게 이방원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지만 승기를 잡은 이방원의 공격은 더욱 강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방원의 책사가 된 하륜이 적극적으로 정도전을 명으로 보내라 간청하고, 정몽주의 제자인 권근이 이방원의 사람이 되어 스스로 명으로 가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방원의 독수에 맞선 정도전의 패는 스스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자신이 권력이 없으면 명도 그를 오라고 명할 명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묘수는 더 큰 문제를 이방원에게 안겼다. 좀처럼 정도전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이방원의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만나 나눴던 대화 중 '정치와 사심'사이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당신이 품으면 정치고 내가 하면 사심이냐는 이방원의 말과 함께 "이긴 자의 사심이 대의가 된다"는 발언은 영구불변의 원칙이 된 듯하다. 진 자의 사심은 정치가 될 수 없고 대의로 세워질 수도 없지만, 이긴 자의 사심은 곧 힘이 되는 것이 과거나 현재나 변하지 않는 진리니 말이다.

 

이방원의 욕망과 잔인함이 강렬하게 드러난 것은 신덕왕후 강씨가 죽기 전의 모습이다. 어린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고 항상 이방원의 눈치만 봐야 했던 신덕왕후. 이방원을 제거하지 못하면 어린 자신의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장자도 아니고 가장 어린 막내아들에게 세자의 자리를 주는 것은 여러 위험요소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와 달리, 왕권 시대에 왕이 되지 못하면 누구나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왕이 되기 전 신분은 언제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위태로움을 알기 때문에 정도전이 곁에 있기를 누구보다 청했던 신덕왕후는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이방원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이방원의 손에 세자의 손은 덮어 제발 보살펴 달라는 요구에 이방원은 손을 빼버린다. 그 순간 모든 것은 정의되었다.

 

신덕왕후가 그토록 염려했던 현실은 곧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내려놓고 잠행을 하던 정도전이 준비한 것은 요동정벌이었다. 그동안은 사병타파를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명분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이 패는 그저 '사병타파'를 위함이 아닌 요동을 되찾기 위한 전쟁으로 굳어져 갔다.

 

 

흑첩을 활용해 요동 지역을 철저하게 조사했고, 명나라의 움직임까지 분석한 정도전은 확신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요동을 되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과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던 것과 달리, 계절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고려 말기와는 달리 엄청난 부도 존재한다. 군권을 장악했던 정도전은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고려 말 불가능한 상황과 달리 이번 요동 정벌은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이런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는 것은 명의 초대 왕인 주원장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주원장의 손자인 주윤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원장의 죽음은 곧 명의 내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원장이 죽게 되면 요동 지역을 지키고 있는 주체가 금릉으로 진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요동이 빈 곳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요동 정벌이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명의 내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다.

 

정도전은 명의 내전이 오래 갈 것이라 봤다. 주원장의 아들들이 각 성의 임금으로 앉아 있는 만큼 서로가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도전이 흑첩을 움직여 정보를 모으고 분석했듯이 무명 역시 긴밀하게 명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정도전과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봤다. 주체가 주윤문과의 싸움에서 생각보다 일찍 승전보를 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역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이방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도전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는 주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기 때문이다.

 

이성계도 공감을 표한 요동 정벌은 결국 불가능해졌다. 이를 막기 위해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정도전은 제대로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할 수 없지만 요동을 정벌한다고 했어도 명의 세 번째 황제가 된 영락제에 의해 공격을 당했을 수밖에 없다.

 

명은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왕국이었다. 주원장이 몽골이 지배하던 시대를 마감하고 전쟁을 이어갔듯, 영락제 역시 자신이 죽기 전까지 영토 확장을 해갔던 인물이다. 요동은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탐을 냈던 공간이다. 그 공간을 조선이 가진다고 해도, 월등한 전력을 가진 명의 공격을 과연 조선이 지켜낼 수 있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원의 손을 들어준다. 정도전이 꿈꾸던 세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희망가로 다가오지만 당시에는 강력한 왕권을 앞세운 이방원의 편이었다. 주체는 오래 걸릴 것이라 여겼던 황권을 건 싸움에서 쉽게 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광처럼 땅을 넓히는데 모든 것을 받쳤다.

 

 

안정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누가 옳다고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 땅이었던 요동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되찾아야 하는 땅이라고 여겨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준 당시 상황은 이방원에게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고 있다.

 

역사를 되돌려 봐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방원은 세자와 정도전을 죽이고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된다. 누구나 아는 역사에 대한 시각차는 언제나 격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분이의 존재감은 <육룡이 나르샤>의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다.

 

무명이 철저하게 상업적인 판단을 하는 집단으로 꾸며졌듯, 밀본은 정치적인 집단을 의미한다. 왕권 중심이 아닌 '재상총재제'를 외치는 존재다. 밀본의 핵심은 '민본'에 있다. 정치는 곧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가 정도전이 꿈꾸었던 세상과 비슷하다. 그가 외쳤던 '민본'을 위한 정치를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도 다시 외치고 있다. 철저하게 정치꾼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는 그들은 왕권 중심을 외치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왕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패거리 정치를 통해 권력을 잡은 그들은 수많은 악행들을 통해 영구 집권을 하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역사적인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그 안에 있을 법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결국 분이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 곧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가치이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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