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8. 08:37

육룡이 나르샤 45회-조영규의 죽음이 부른 잔인한 각성, 유아인 피의 정변 시작

이방원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이어지게 만들었다. 평생을 자신의 곁에서 동고동락을 해왔던 조영규가 대업을 앞두고 숨지고 말았다. 비밀스럽게 숨겨둔 무기를 지키다 숨진 영규. 그의 사체 앞에서 오열하던 이방원은 세자와 정도전을 모두 죽이겠다는 결심을 한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동상이몽;

보약과 벼루 그리고 조영규의 죽음, 잔인한 피의 정변은 시작 된다

 

 

 

이방원에게 조영규는 중요한 존재다. 어린 시절부터 호위무사로 자신의 곁에서 항상 함께했던 조영규는 이방원과 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다.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일 때도 조영규가 철퇴를 들고 모든 것을 했다. 이방원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해왔던 그의 죽음은 이방원의 불안을 정변으로 이끌게 만들었다.

 

 

역사는 1395년 조영규가 병사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죽음은 맞지만 척사광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철저하게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한 드라마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무척이나 드라마틱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글로 적힌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이방원은 왜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까? 단순히 호전적이고 권력에 대한 탐욕만이 넘쳤기 때문일까? 다양한 의문들이 넘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진실을 가지고 작가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정몽주와 정도전을 죽인 인물. 자신의 동생인 세자와 왕권을 노린 형을 처참하게 죽인 존재. 그렇게 스스로 왕이 된 이방원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이 드라마에는 가득했다. 그리고 합리적인 의심과 그럴 듯한 가능성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요동 정벌은 과연 우리에게 필요했을까? 당시에도 이는 중요한 화두였을 것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요동은 모두가 탐을 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과연 조선 초에 요동 정벌이 과연 필요했을까?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도전이 완벽하게 준비했던 계획이라는 점에서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지도는 변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장의 끝이 행복한 결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끝내 이루지 못한 요동 정벌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이성계와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정도전의 요동 정벌은 극중에서는 조영규의 죽음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고 기술하는 이들도 많다. 왕이 되고자 했던 이방원으로서는 이 상황은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사병을 혁파하고 권력을 손에 쥔 정도전. 그가 그렇게 강력한 모습으로 자리하는 이상 이방원에게는 그 어떤 힘도 가질 수 없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제공격을 통한 권력을 쟁탈 외에는 없었다. 왕의 자리는 결코 순리적으로 이방원에게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그에게는 당연했다.

 

 

 

왕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수많은 이들은 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과거 잔인한 권력 다툼이 생사를 건 사투로 이어지던 시절에는 당연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무혈 투쟁들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권력을 둘러싼 쟁투다.

 

이방원의 정변이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부인인 민다경의 지략 때문이었다. 사병 학파가 본격적으로 이어지기 전 그녀는 은밀하게 무기를 숨겨두었다. 결국 그 무기들이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죽음을 이끄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방원을 도와 두 번의 정변을 이끈 민다경은 가장 혁혁한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가 기록한 사실과 달리, 불안이 가중되던 상황에서 그 미묘한 긴장감은 반촌에 은밀하게 마련된 무기고에서 시작되었다. 이방원을 구하고 그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무기고였다.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정변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의 지략으로 유배를 당할 수도 있었던 왕자들은 아버지 이성계 앞에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왕자들과 종친들이 모두 모인 상황에서 정도전은 사병들을 모두 부대에 귀속시키고, 집안에 있던 무기들 역시 모두 회수했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오던 수견패 반납을 요구한 이성계는 이로써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 모든 것이 끝난 시점 등장한 정도전은 이제 사병은 혁파되었다는 선언까지 했다.

 

 

민다경에 의해 은밀하게 숨겨진 무기를 지키던 조영규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공양왕 왕요의 아들인 은호가 그곳에 있었다. 화살촉을 그곳에서 발견해 신기해했던 은호는 열린 문이 궁금해 들어섰지만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이유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없었던 영규는 갈등하다 은호를 보내려 했지만 마침 등장한 척사광에 의해 모든 것은 뒤틀리게 되었다. 대결 중 은호가 죽고 당황한 사이 분노한 척사광에 의해 숨지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거대한 꿈을 키우고 이를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만들어낸 정도전에게 감탄한 이방원은 그에게 보약을 선물하고 나서 자신은 어린애나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어린 동생인 세자 방석에게는 좋은 벼루를 사다 주고 환담을 하는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방원의 행동은 그런 불안이 만든 결과이기도 했다. 과거 성균관 시절 나쁜 3인방을 죽이기 전 그가 했던 행동이 다시 한 번 등장한 셈이다. 내가 과연 이들을 죽일 수 있을까? 우려가 많던 상황 그 다짐을 위해 선물을 했던 이방원의 습성이 이번에도 이어진 것이다.

 

조영규의 싸늘한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던 이방원. 그는 결심했다. 정도전을 죽이고 세자를 끌어내린 후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요동 정벌에 대한 불안과 강력하게 구축되던 정도전의 힘을 더는 무시할 수 없었던 이방원의 움직임은 잔인한 피의 정변으로 이어질 준비를 마쳤다.

 

 

 

척사광을 상대하는 것은 이방지가 아닌 무휼의 몫이 되었다. 후반으로 가면서 존재감이 사라지기 시작한 이방지 대신 조영규의 죽음을 목격한 무휼이 전설의 무사인 척사광과 대련할 존재로 낙점을 받은 듯하다.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척사광과 무휼의 대결은 결국 <뿌리 깊은 나무>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가온다.

 

5회를 남긴 상황에서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지는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과연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현재의 흐름으로 보면 이방원의 두 번의 왕자의 난과 조선의 3대 왕이 되는 과정에 모든 것이 맞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밀본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질 것이고, 분이가 그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제대로 다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결국 역사에 남겨진 인물들이 아닌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이 곧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점에서 분이와 이방지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런 중요한 이들이 전면에 등장할 수 없다는 점이 결국 <육룡이 나르샤>의 한계로 다가온다.

 

 

유아인의 연기는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이방원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력은 단순히 작가의 이야기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다. 그런 가능성을 만든 것은 바로 유아인의 연기다. 섬뜩할 정도로 이방원에 몰입한 유아인의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매력적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유아인이 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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