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9. 08:05

육룡이 나르샤 46회-유아인의 눈빛연기로 완성한 숨 막혔던 마지막 1분

예고된 결과임에도 긴장감이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은 <육룡이 나르샤>가 뛰어난 드라마라는 반증일 것이다. 요동 정벌을 앞둔 한양의 밤은 묘한 긴장감과 함께 세상이 바뀔 준비를 마쳤다. 시위를 떠난 활은 이미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피할 곳도 없는 곳에 선 정도전. 그리고 그런 정도전을 바라보는 이방원. 그렇게 역사는 새롭게 쓰여 지기 시작했다.

 

조영규 죽음이 불러 온 각성;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역사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이방원, 하늘도 그의 편에 섰다



수족과도 같았던 조영규의 죽음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했다. 선택하고 결정하기 어려웠던 결심을 쉽게 만들어버린 조영규의 죽음은 흑마술처럼 수많은 죽음을 예고했다. 밀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택은 단순해진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 긴박함에는 동물적인 감각만이 모든 것을 좌우할 뿐이다. 

 

 

명의 초대 황제인 주원장이 죽은 후 분주해졌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주원장의 죽음 후 급격하게 변할 수밖에 없는 정세에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서 있다. 일척간두의 상황에서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협력을 하지 않으면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변수는 조영규였다.

 

조영규의 죽음은 정도전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가 죽은 장소가 은밀하게 숨겨진 무기고라는 점이 문제였다. 상처를 통해 척사광이 조영규를 죽였다고 추측은 하고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조영규의 죽음으로 반촌에 숨어 들어와 살고 있던 왕 씨의 후손은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척사광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에 무휼이 관여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방지가 홀연히 사라진 조선 땅에서 최고의 무사가 되는 무휼로서는 최고수를 꺾어야만 하는 명분이 존재한다. 더욱 친형과 같았던 조영규의 죽음. 그 죽음이 자신이 척사광을 죽이지 못해 벌어진 결과라고 자책하던 무휼에서는 강력한 명분이 존재한다. 척사광을 물리치고 최고의 무사가 되어 세종의 호위무사가 되는 것이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미 결말이 나와 있는 드라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시작한 드라마는 그만큼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결론을 추론하는 형식이 아닌 과정에서 작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육룡이 나르샤>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 흥미롭고 재미있는 드라마임은 분명하지만 작가는 과연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선명해지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 속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내세운 것은 그들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가치관은 중요하다.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존재는 바로 분이다. 다른 이들이 누군가에 의한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 것과 달리 분이는 그녀가 중심이다. 처음에는 정도전을 따랐고, 이방원과 묘한 감정을 나누기도 하는 인물이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종속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분명한 가치관이 존재하고 그녀가 꿈꾸는 세상 역시 명확하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생각이 곧 작가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분이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문제는 그런 분이가 후반부 들어서며 점점 사라져가는 듯한 느낌이다. 역사적 사실이 변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육룡이 나르샤>로서도 중요하지만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 관계가 최고조로 올라서며 사라져 버린 분이는 그래서 아쉽다.

 

주원장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도전과 이방원은 서로 다른 꿈을 실현시킬 시간이 왔음을 알게 된다. 이성계가 정도전의 편에 서서 요동 정벌에 앞장선 가운데 왕자들은 자신들을 전쟁에 참여시키는 것은 어린 세자가 그 사이 입지를 공고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 믿었다.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그 사이 세자가 확고한 입지를 다지면 왕자들도 더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통해 왕자들이 모두 전장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아버지인 이성계가 앞장서 요동 정벌에 나선다는데 반박할 아들은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방원은 군사를 움직일 방법을 찾는다. 책사인 하륜은 중전 능 관리를 하는 순번 중 이숙번의 당번 이 출병일보다 앞서 있다면 정변은 가능했다. 500명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그날이라면 이방원이 꿈꾸는 정변은 완벽하게 성공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첫 출병일은 20일, 이숙번의 당번일은 26일이었다. 6일이나 뒤늦은 시간은 결코 이방원의 계획을 실행시킬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성계의 병으로 인해 출병일은 다시 일주일 늦은 27일로 변경되었다. 하늘은 그렇게 정도전이 아닌 이방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쌀가마로 꾸며 은밀하게 무기를 옮긴 그들은 밤 10시를 뜻하는 인경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잔인한 정변은 시작되었다. 요동 정벌을 앞두고 계획을 짜기에 여념이 없는 정도전과 달리, 모든 준비를 마친 이방원은 정변에 합류한 이들과 함께 정도전을 향해 나아갔다.

 

결연한 의지를 담은 이방원과 방지에게 사랑을 확인한 연희는 자신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행복한 미소만 가득하다. 어린 시절 겁탈 당하기 전 땅새에게 옷을 만들어주려다 전해주지 못했던 연향. 그 오랜 시간 옷 만드는 것을 두려워했던 연희는 용기를 내서 이젠 방지가 된 땅새에게 갑옷을 전해주었다. 이 지독한 사랑은 결국 '왕자의 난'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방원과 정도전의 마지막을 위한 상황은 왜 이렇게 서글프고 아프게 이어졌을까? 승자의 기록을 위한 드라마라면 이 상황이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느린 화면에 너무 다른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잡아내는 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이상으로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어버린 둘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도전이 분이를 만나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였다. 백성들과의 소통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자책. 너무 바빠 변화를 가져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정도전의 말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서글프다. 여전히 국민들의 각성은 정치꾼들에 의해 농락 당하고 있는게 우리네 모습이니 말이다.

 

"고단하구나 방원아"라는 말을 건네며 최후를 맞이한 정도전을 담아내는 예고편은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시대를 앞서갔던 민본주의자 정도전의 죽음은 서글프고 아플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의 마지막 역시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왕자의 난'은 시작되었다.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연출은 매력적이었다. 역사적 순간을 묘사하는데 있어 기존 사극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긴장감을 <육룡이 나르샤>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4회 작가는 <육룡이 나르샤>를 왜 만들고 싶었는지 그 모든 것이 담길 예정이다. 그런 이유로 이 드라마의 마지막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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