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1. 08:33

디어 마이 프렌즈 3회-김혜자와 나문희의 일탈,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자식과 부모 세대의 서로 다른 시각을 담은 <디어 마이 프렌즈>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황혼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그들의 삶은 과연 남들의 삶인지 되묻게 한다. 망상장애가 두려웠던 희자로 인해 경찰서에 모인 그들의 모습으로 시작한 3회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희자와 정아의 일탈;

우리는 모두 시한부일 뿐, 지금 이 순간이 그들에게는 가장 젊은 한 때였다

 

 

70대에 들어선 완이 엄마의 선배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디어 마이 프렌즈>는 우리 부모 세대를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게 한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부모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볼 수밖에 없다. 모두는 우리가 그렇게 외면했던 부모들 세대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외면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망상장애 증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희자는 꽃단장을 하고 스스로 죽기로 작정했다. 빌딩 옥상은 문제였고 거리에 나선 그녀는 자식뻘 되는 운전수에게 욕만 듣고 만다. 화난 운전수의 말처럼 한강 다리를 선택한 희자는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이뤄질 수는 없었다.

 

친구 정아와 후배인 난희와 영원, 그리고 완이까지 모두 모인 경찰서의 풍경은 왁자지껄하다. 아들 민호에게만은 알릴 수 없다는 희자로 인해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서 젊은 시절 유명 배우였던 영원이 등장하며 서장이 된 친구로 인해 아들을 부르지 않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희자의 고집으로 정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어린 아이처럼 들떠서 행복해하는 희자의 모습은 다시 평상시 그녀의 모습이었다. 살아있음에 행복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 희자의 앞집에 사는 낯선 변태 외국인이라 불린 마크 스미스의 문자로 인해 그들은 모두 영정 사진을 찍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영정 사진을 찍겠다고 나선 엄마를 향해 외치는 완이의 "엄마가 왜 죽어"는 모든 자식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자신보다 부모님들이 죽음에 더 가까워졌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극중 완이처럼 우린 이를 거부하고는 한다. 그 강한 부정은 곧 그런 현실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겹다는 항변이기도 하다.

 

완이는 여전히 혼자다. 유학도 갔다 오고 책을 써서 인정도 받았던 작가다. 물론 현재 그 이상의 뭔가를 하지 못한 채 번역가로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녀는 나름 행복했다. 연하의 남자 친구인 서연하와의 서글픈 사랑은 그녀에게는 큰 상처였다.

 

죽도록 사랑했고 그래서 결혼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 그 사람이 결혼을 꺼려하자 법적인 구속력이 없이도 함께 평생을 하고 싶었다. 먼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연하는 다리를 잃었다. 과거 그 화려함을 잃어버린 연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은 그렇게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치도록 사랑한 연하를 잊기 위해 유부남인 선배 한동진을 찾은 완이는 그렇게라도 지독한 아픔을 잊고 싶었다.

 

유명한 사진작가인 마크 스미스에게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꽃단장을 하고 나선 이모들. 그들은 당연하게 영정사진을 받아들이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영정사진은 '재수 없는 것'일 뿐이다. 완이가 그들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그런 그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자신의 죽음 뒤 장례식장에 자신을 알릴 사진을 찍으면서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맨얼굴만 촬영하던 마크는 곱게 화장한 그들의 촬영을 거부했지만, 충남은 한 마디 한다. 평생 고생스럽게 일만 해오며 화장도 할 틈도 없었던 자신들에게는 유일하게 곱게 꾸밀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최소한 마지막 순간만큼은 초라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모르는 부모 세대들의 진심이다.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사진 위에 적힌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라는 문구는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영정 사진을 재미 삼아 찍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완이는 조금씩 그들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모두가 떠난 후 홀로 마크 스미스를 찾은 희자는 맨얼굴로 그 앞에 나선다.    

 

"친구들 사진 찍는 걸 보니 오늘 지금이 자신들에게는 가장 젊은 한 때더라" 

늙은 모습이 싫어 화장하지 않고는 사진도 찍지 않겠다던 희자가 홀로 다시 마크를 찾아 맨 얼굴로 사진을 찍은 이유였다. 남들보다 늙은 나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 그나마 가장 젊은 한 때라는 말은 그래서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한 때 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세계일주 여행을 위해 모진 삶을 참고 지냈던 정아는 항상 밝았다.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고난 끝에 낙이라고 세계 일주를 남편인 석균이 언제나 약속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꼴통 남편은 여행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결혼 후 5년 동안 애를 가지지 못했던 정아는 첫째 딸을 입양했다. 그렇게 순영을 입양한 후 다른 자식들을 얻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녀는 정아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딸이 교수에게 시집을 가는 날 그녀는 많이 울었다. 그런 딸이 자신에게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항상 아프다는 딸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던 정아는 결국 그 아픈 손가락 때문에 더욱 아플 수밖에는 없게 된다.

 

교수에게 시집을 갔지만 순영은 행복할 수 없었다. 의처증에 걸린 교수 남편은 언제나 폭력을 행사했다. 그 폭력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강력해졌고, 그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상처만 깊어지는 순영은 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런 딸의 변화를 눈치 챌 수 없었던 엄마의 한스러움은 힘겨워질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남편이 결코 세계일주 여행을 할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한 정아는 화가 나 남편 차키를 가지고 나선다. 언제나 그 세계 일주만 기다리며 버텨온 삶이 순식간에 무너진 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친구 희자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전부인 정아는 그렇게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양원을 향해 달렸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그렇게 자유를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안개가 낀 도로를 달리던 정아는 뭔가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고 만다. 그들의 일탈은 그렇게 잔인한 현실 속에 멈추게 된다. 정말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그녀들의 인생은 언제나 힘겹기만 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영원하기를 원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그런 우리의 욕망을 비웃기만 한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라는 문구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너무나 명확하고 당연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정아가 그토록 여행에 목을 메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평생 고생만하다 요양원 병실에 누워서 지내는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결코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지독할 정도로 엄마의 삶을 따라가는 딸의 숙명. 그 지독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정아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당당한 저항. 그래서 정아를 응원하고 싶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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