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2. 09:08

디어 마이 프렌즈 4회-고현정의 푸념은 왜 낯설지가 않을까?

희자와 정아는 둘 만의 오붓한 여정에 환호했다. 하지만 그런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안개가 가득했던 길은 그녀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정지와 가속 패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다 무언가를 치고 말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두 친구의 고달픈 고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현정의 익숙한 푸념;

뺑소니 사고 앞에 내던져진 평생 친구와 남편 폭력에 도주를 선택한 딸 순영

 

 

세상 모두는 나이와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가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황혼기에 접어든 그들에게는 이제 꽃길만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수많은 고민과 아픔들이 지배할 뿐이다. 지독하게 힘들었던 결혼 생활 끝에 세계 여행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기대하고 살았던 정아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평생 고생만 하다 쓰러져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요양원에서 지내는 어머니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며 살았다. 비록 어머니처럼 결혼 후 지독한 삶을 살기는 했지만, 노후는 다를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비루한 삶은 변하지 않는다. 짠돌이 남편은 변함이 없고 자신을 농락하기에만 급급하다. 

 

세계 여행을 안 간다는 남편 석균에 분노한 정아는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와 절친 희자와 함께 엄마가 있는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저 그렇게 둘이 함께 거리에 나선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벌어지며 모든 것을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로에 쓰러진 노인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정우에게 빨리 가자던 희자. 

 

그렇게 그녀들의 달콤했던 일탈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 허무한 여정의 끝에 잔인한 현실과 마주한 정아와 희자는 서로의 잘못이라고 외치지만 그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다. 넋이 나간 정아는 희자를 따라 부지런하게 피 묻은 범퍼를 청소하기에 여념이 없다. 앞집 마크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집으로 달아나듯 향하는 정아는 정신이 없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여전히 정아를 구박하기에 여념이 없는 석균에게 분노가 폭발하며 무치고 있던 생채를 집어 던져 버렸다. 딸의 집을 찾은 정아는 화를 내며 빨리 집에 가라며 재촉하는 딸 순영과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큰딸과 싸운 후 버스정류장에서 작은 딸이 보낸 문자를 보며 더욱 허무해진다. 그저 정아는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들 수발이나 드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큰딸 순영이 엄마를 그렇게라도 밀어내고 싶었던 것은 그 지독한 고통의 현장에서 도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직업으로 숨겨진 남편의 잔인한 폭력은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입양아로 자라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확신했던 순영은 그렇게 모든 것이 망가져버렸다.

 

남편 석균이라고 행복할 수는 없었다. 평생을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지독할 정도로 버티며 살아야 했다. 가장 만만한 자신의 편이라 생각한 부인 정아를 구박하기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쩌면 석균도 그 지독한 삶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년퇴직한 후에도 일을 해야만 했던 석균은 그렇게 경비원으로 근무하지만 그 성격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이 힘겹고 한심하기까지 한 이 현실 속에서 석균이 의지할 수 있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라고는 정아 외에는 없다.

 

사고 후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 희자는 막상 자식들에게 뭔가를 적으려 하지만 남길 말이 없었다. 그렇게 착한 막내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 희자는 솜사탕을 사서 아들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이 느껴지는 희자는 그렇게 만화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언제나 든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을 감싸주던 어머니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자신의 품에서 잠들어 있다. 언제 녹아 없어질지 모르는 솜사탕을 들고 잠든 엄마. 그 솜사탕처럼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엄마를 위해 아들 민호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그대로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전부였다.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를 그렇게라도 보듬고 있고 싶은 아들의 마음은 강렬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뺑소니 후 정아는 다시 사고가 났던 장소를 찾았다. 완이 역시 자신의 옷에 묻은 피와 여러 정황상 이모가 사고를 냈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현장에서 정아 이모를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그녀는 젊은이가 아닌 늙은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완이는 그런 이모가 싫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완이는 이모들을 욕하고 있었다. 하지만 희자와 정아는 그 시간 자수를 선택했다. 독할 수 없는 그녀들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했다. 애써 젊지 않은 늙은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던 정아는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너지고 말았다.

 

애써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언제 죽어도 좋을지 모를 늙은이를 친 것과 생각해보면 까칠한 남편과 이기적인 자식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엄마를 둔 자신보다 더 서글픈 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역시 언제 죽어도 모를 늙은 모습이었다.

 

"나도 참 늙었네. 그럼 나도 그 늙은이처럼 길거리에서 개죽음을 당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평생 친구인 희자와 마지막으로 좋은 찻집에서 차를 마신 두 친구는 완이에게 마지막 문자를 남기고 경찰서로 향한다.

 

자신이 두른 머플러가 좋다는 정아에게 망설임 없이 둘러주고 자신의 탓이라는 희자는 그렇게 손을 잡고 경찰서로 향했다. 이모의 문자를 받은 완이는 미친 듯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동안 자신이 쏟아냈던 독한 말들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그 말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가벼웠는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나이 먹었으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아직 철없는 자신이 내뱉었던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 완이는 뒤늦게 깨달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모두 알고 있는 듯했던 말들은 그렇게 자신을 향한 비수로 다시 돌아와 꽂혔다.

자수를 하고 꼭 마주 잡은 희자와 정아의 손.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통해 <디어 마이 프렌즈>는 묵직한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을 모두가 함께 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소중하다. 두 평생 친구의 대단한 우정도 특별하지만 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삶은 곧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우리 부모 세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완이의 독설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나 역시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저 부모라는 이유로 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졌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가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상처를 줬던 그 기억들 말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참 좋은 드라마다. 왜 이제 서야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지 의아하고 아쉬울 정도다. 세대와 성별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젠더 전쟁이 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고통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급격한 산업화처럼 대한민국의 '젠더 전쟁'은 지독할 정도로 기형적으로 폭주하고 있다.

 

세대별 갈등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100세 시대가 오면서 노인들을 위한 세상은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전쟁과 독재의 시대,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드러난 수많은 문제는 사회적 병리 현상만 양산해냈다. 이런 문제를 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달려온 대한민국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민낯을 다시 돌아봐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 그렇게 <디어 마이 프렌즈>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 나와 우리를 돌아보라고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