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디어 마이 프렌즈 16회-우린 모두 길 위의 삶, 그들의 인생은 치열하고 당당했다

by 자이미 2016. 7. 3.
반응형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궁금했던 이들은 모두 만족했을 듯하다. 누군가의 죽음보다는 희망을 보다 크게 이야기를 하는 <디어 마이 프렌즈>는 가장 매력적인 결말로 위대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위대한 이야기의 끝에는 기대는 내려놓고 희망은 품게 만들었다.

 

우린 모두 길 위에 선 삶;

노을 앞에선 그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온 몸에 암이 퍼진 것이 아닌 가 의심했던 난희의 수술이 끝났다. 연하가 슬로베니아에서 병원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완이에게는 눈앞의 사랑보다 엄마가 더 소중했다. 스쳐지나가는 완이를 그저 바라보며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르는 연하는 그렇게 지켜볼 뿐이다.

 

서럽게 우는 완이를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잡아주는 연하는 그런 존재였다. 3일 동안 그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병실을 지키는 연하는 그렇게 조용하게 떠났다. 연하가 떠나는 순간에도 배웅도 하지 않는 완이에게는 더는 사랑을 찾아가기는 염치없었다.

 

수술은 끝났다. 야구공만한 암 덩어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개복 수술을 하는 도중 암이 밤톨만 했다며 자신의 수술 담을 이야기하는 난희는 행복했다. 항암치료가 남기는 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그녀로서는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급격하게 기억을 하지 못하는 희자는 사람들을 잘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 난희 병실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정아에게 다른 사람들을 못 알아보고 누구냐고 묻는 희자. 완이에게 전화를 해서 난희에게 문병도 가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희자는 그렇게 조금씩 세상과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민호는 소중한 손자를 낳았다. 그렇게 엄마가 사는 집으로 들어온 민호와 하늘이 부부는 희자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 잠을 자자며 희자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서는 민호. 하지만 희자는 차마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 거실로 향했다.

 

병실에서 처음으로 손자를 안을 때. 염려하던 사람들의 시선. 그 시선의 무게감은 아이를 다시 보는 순간 커졌다. 기억이 사라지며 혹시 자신이 잘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 넘을 수 없는 문턱은 결국 희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희자는 충남이에게 부탁해 치매 요양원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 1인실 침대에 앉으며 희자는 충남에게 "나 두고 떠나"라고 한다. 아직 요양원에 들어설 이유가 없지만 희자는 자신 때문에 막내아들이 힘들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스스로 단절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기 원하는 희자는 그런 삶을 선택했다.

 

누구보다 희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충남이의 눈물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일가친척을 모두 책임져야만 했던 충남. 평생을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왔던 충남에게도 희자의 그 선택은 그 어떤 일보다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민호가 희자를 찾아와 울며 함께 집으로 가자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변함이 없다.  


집으로 돌아온 난희는 고민이 깊어진다. 완이가 연하와 여전히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된 자신의 동생으로 인해 완이는 절대 그런 상처를 가진 이와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그녀가 연하를 만났다. 휠체어를 타고 차를 가져오는 연하. 환하게 웃는 그는 난희의 손을 잡으며 수술이 잘 되어 다행이라는 말은 건넨다. 

 

그런 연하의 손에 있는 반지. 완이와 함께 여행을 할 때도 봤던 반지다. 둘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암 수술을 받은 후 달라졌다. 완이 작업실에 있던 연하의 사진이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완이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엄마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완이는 슬로베니아로 떠나는 연하와 통화를 했다. 마지막 날 잡을 수 없는 완이는 이제 자신을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그저 행복 하라는 말만 남기고 서럽게 우는 완이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를 그렇게 놔두고 완이는 갈 수는 없었다.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엄마 난희는 선택했다. 자신의 고집으로 딸의 삶까지 망칠 수 없다는 확신 말이다. 슬로베니아 행 티켓까지 사서 완이에게 준 난희는 결혼까지 하라고 허락한다. "연하 한테 가"라는 말로 부모와 자식이 더는 종속이 아닌 자유로운 관계임을 선언한 난희는 그런 선택이 맞다고 확신했다.

 

스스로 요양원을 선택한 희자이지만 그 지독한 상황이 두렵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을 했지만 병든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죽어간다는 사실이 희자를 더욱 힘겹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희자는 새벽에 정아에게 전화를 했다. 정아가 길 위에서 죽고 싶다고 했던 말을 꺼내며 "나도 데리고 가"라는 희자의 말에 정아는 반색을 하며 기다리라고 한다.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서 희자의 애절한 말에 제대로 대응도 해주지 못했던 정아. 이제는 달랐다. 더는 희자의 부탁을 외면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 일찍 석균의 차를 타고 희자를 향해가는 정아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 정아를 뒤따라오며 "나도 데려가"라고 외치는 석균의 모습은 그저 서글퍼 보였다. 평생 지독할 정도로 버티는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석균의 인생은 그렇게 아프게 현실을 직시하는 삶으로 변해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길 위에 선 정아와 희자는 행복했다. 안소니 퍼킨스의 미친 사랑을 담은 영화 <페드라>에서 자신의 차를 몰며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허밍으로 부르며 "페드라, 페드라"를 외치며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그 영화는 정말 길 위에서 죽는 삶이었다.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죽음을 선택한 알렉시스의 마지막은 그렇게 강렬한 음악과 함께 남겨져 있었고, 정아와 희자 역시 그렇게 함께 했다. 

 

그들의 여행은 허망하게도 기름이 떨어진 차로 인해 길 위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충남이에게 전화를 한 정아. 더는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기 싫었던 충남은 다른 이들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렇게 친구들은 모두 함께 모였다. 비록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인해 낡은 여관에 묶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졌다. 

 

비 내리는 여관 방 안에서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한다. 죽음이 더는 두려운 존재가 아닌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가치로 여기는 그들의 삶은 여유가 가득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할지 이야기하는 그들에게는 죽음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해 치열하기만 했다. 결론은 그들의 죽음은 "길 위에 서"로 결론을 내렸다.

 

그날 이후 그들은 일상의 삶을 살면서 함께 여행을 떠났다. 캠핑카 하나를 가지고 함께 여행을 하는 그들은 그렇게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그들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계속되었다.

난희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고, 희자는 치료를 겸한 요양원 생활을 성재와 함께 한다. 더는 일을 찾지 못한 석균은 집에서 인형 눈을 붙이는 부업을 한다. 라면을 끓여준 정아를 위해 먼저 물을 떠다주는 석균은 그렇게 변했다. 여전히 공부를 하는 충남과 대변과 싸우는 영원. 엄마의 말처럼 연하를 찾은 완이는 그렇게 그들의 삶을 시작했다.

 

'늙은 나의 친구들'이라는 완이의 책. 할머니에게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느냐는 말에 "별거 없지 뭐" "별거 없는 인생 이만하면 잘 살았다 그렇게 생각해야지"라는 90을 넘게 산 할머니의 말에 완이는 "별거 없는 인생에 남겨진 거라고는 고작 이기적인 자식들이 전부. 이건 아니다 싶었다"라는 생각을 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에 대한 완이의 고백은 결국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왜 나는 지금껏 그들이 끝없이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지난날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어차피 처음에 왔던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 길도 초라하지 않게 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너무도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다만 소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좀 더 오래가길.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오래 가길"

 

완이를 통해 노희경 작가가 회고한 부모님들에 대한 시선은 <디어 마이 프렌즈>가 무엇을 위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완벽하게 담아낸 결론이었다.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완이는 이 순간이 조금만 더 오래가기를 바랐다.

 

그들은 죽음을 향해 내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왔던 만큼 처음 태어난 그 길이 초라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말은 감동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왔다. 바닷가에서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는 그들 역시 젊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일 뿐이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다. 혹은 애써 외면해왔던 부모님들의 삶. 그 치열했던 삶은 그렇게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너무나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이기적인 자식들의 마지막 소망이 좀 더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길 위에 선 그들의 삶은 여전히 치열하기만 하다. 

노희경 작가의 역작이 된 <디어 마이 프렌즈>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어쩌면 이런 드라마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형식만 차용된 실버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세상이 도래할 수는 있겠지만, 시대를 가르는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그 가치를 다시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막연한 불안과 절망보다는 그렇게 살아왔듯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그들의 인생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노희경 작가의 결론은 너무 아름답다.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완벽한 마무리로 <디어 마이 프렌즈>는 끝이 났다. 16번의 이야기 속에 담은 우리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 자식들이었는지 곱씹게 만들었다. 완이의 마지막 독백처럼 우린 참 어리석은 존재들일 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