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9. 07:04

기보배 향한 최여진 모친 논란의 핵심은 개고기가 아니다

기보배가 브라질 리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딴 날 국내에서는 최여진 모친의 글 하나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보배를 향한 최여진 모친의 비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원색적이어 입에 담기도 힘겨울 정도다. 애견인으로서 개고기를 먹는 그녀는 미개인이고 국가 망신이라는 최여진 모친의 비난보다 그 안에 담긴 가치관이 문제다.

 

개고기 앞세운 분노 배출;

극단적인 대립의 시대를 그대로 품은 최여진 모친, 그녀의 문제는 개고기가 아닌 인성이다

 

 

모델 출신에 연기도 겸하는 최여진의 어머니가 자신의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그 글에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양궁선수 기보배와 부모를 인신공격하는데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막말에 욕설, 그것도 모자라 인육까지 등장한 최여진 어머니의 글은 경악 그 자체였다. 

 

우리 사회는 이명박근혜가 집권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일베로 통칭되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샴쌍둥이처럼 닮은 그들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베를 향한 메갈의 미러링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고 있을 뿐 해결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부의 불평등은 우리 사회를 빈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폭력적으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보다는 파괴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래서 위험하다. 안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는 모든 이들이 시한폭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뉴스를 통해 등장하는 극단적인 사건 사고들은 모두 처참함과 달리 이유가 불분명하기만 하다. 그저 누군가가 싫다는 감정만으로 잔혹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현실은 불안을 더욱 강화시키기만 한다. 연일 한반도를 들끓게 하는 무더위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지독한 무더위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은 연예인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내지른 막장급 발언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미개하게 바라보는 개 식용에 대해 개인의 생각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 것도 없다.

 

많은 이들이 보신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고 시대가 변화하며 개를 식용으로 생각하는 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개를 식용으로 사용했던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여진 어머니가 내지른 분노는 단순하게 개 식용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여 진다.

 

최여진 어머니가 쓴 SNS의 글은 노골적인 비난만 존재할 뿐이다. 선진국이 미개하다고 하니 부끄럽다는 한심한 사관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녀가 쓴 부모는 왜 안 먹냐는 발언은 경악스럽다. 자신에게 애완견은 가족이나 다름없으니 개를 먹는 너희들은 부모들도 잡아먹겠다는 식의 분노 표출은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분노한 이유도 바로 이 배설에 있다. 과거 가축이나 마찬가지로 개를 키워왔던 문화 속에서 개는 유용한 식량 중 하나였다. 소나 돼지가 여전히 우리에게 유용한 식량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구 사회의 관습이나 문화는 우위에 있고 우리의 문화는 저급하다는 단순한 논리가 빚은 참사는 지독한 가치 불균형을 불러오고는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월하다고 강요된 문화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논리가 된다는 이 독한 믿음이 곧 모든 불행의 시작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우린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산다. 고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모든 것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도 되었다. 최여진 어머니는 소고기 20kg을 사서 자신이 키우는 개들에게 먹이며 행복해했다. 언제나 돈 많이 벌면 다시 사주겠다는 그녀의 사고 체계에서는 소는 짐승이지만 개는 가족이다.

 

서구 사회의 주식인 소는 지구를 황량하게 만들었다. 이 지독한 더위도 어쩌면 그 방대해진 스테이크가 불러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은 해마다 그 공간이 좁아져간다. 인간의 허파가 망가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지구 역시 다를 것이 없다.

 

소고기에 대한 미친 듯한 갈구는 더 많은 사육을 요구하게 되었고, 아마존의 거대한 숲은 사람들의 식욕을 위한 소 사육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갈 식량마저 소의 주식이 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이건 정상일까? 기묘하게 뒤틀린 감정들 속에서 오직 자신의 가치만이 옳다는 맹신. 그 맹신은 쉽게 사라지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편 가르고 상대를 비하하고 악랄하게 상처 내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의 현실이 최여진 어머니의 잔인한 글 속에 모두 들어있었다. 오래 전에 나온 기사 한 줄에 분노에 경기를 앞둔 기보배 선수에 대한 비난도 모자라 부모도 먹어보라는 식의 말투는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대중들이 최여진 어머니에게 분노하는 것은 개고기 식용과 관련한 그녀의 주장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대주의를 끄집어 들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현실에서 개고기는 점점 외면 받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써 다시 개고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자기만족을 위한 배설을 하기 위해 그 대상이 필요했고, 리우 올림픽에 맞춰 최여진 어머니는 기보배의 과거 기사를 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핵심을 잃은 분노를 위한 분노는 막장 사이트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논점은 사라지고 오직 분노만 있는 배설은 대중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대중을 상대로 먹고 사는 딸은 이 사건으로 인해 평생 어머니의 행동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갈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개고기를 탓했지만 논점을 잃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시선도 잃어버린 폭주는 결국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들어버렸다. 이런 식의 잘못된 타깃 설정들은 최근 들어 자주 등장하는 전략들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끝은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기보배를 향한 최여진 어머니의 분노는 개고기가 아닌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인간 이하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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