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7. 09:13

삼시세끼와 불타는 청춘-예능 사로잡는 아재의 가치와 의미

아재들이 대중문화마저 사로잡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조금씩 이어지던 아재 개그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아재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재 전성시대는 왜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청년 문화는 존재하지 않지만 아재 문화는 점점 확장되고 있음이 흥미롭다.

 

아재의 아재를 위한 아재 문화;

청년 문화는 존재하지 않고 과거의 청년들이 아재 문화도 이끈다

 

 

청년 문화는 그 시대를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과연 청년 문화라고 하는 것이 존재는 하는 것일까? 과거 시대별 문화 유형은 모두 청년들이 만들고 이끌어왔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펼쳐진 청년 문화들은 비록 외국 문화의 이식이 주가 되기는 했지만 시대를 이끌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복고에 빠져있다. 과거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는 그만큼 현실에 대한 불안이 크다는 반증이다. 현실에 만족하면 우린 미래를 꿈꾼다. 앞으로 닥칠 미래가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은 다양한 형태의 문화로도 발전되고 확장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과거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반복되지만 경제적인 힘겨움이 가장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 과거 청년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지금의 청년 세대는 미래가 없다. 부모 세대보다 더 공부하고 더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청년들에게는 현재도 불투명하다. 미래가 막힌 현실 속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사라지며 그들은 사회를 이끄는 동력으로서 가치조차 상실했다. 여전히 386세대라고 불리던 기성세대들이 모든 것을 이끌고 있는 사회에서 청년은 존재감 역시 미미하게 다가올 정도다.

최근 방송되었던 <1박2일>에서는 리오 올림픽 중계를 위해 나서는 스포츠 스타들과 '아재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아재력'을 평가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즐거워했고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아재들의 아재들을 위한 아재 올림픽에 이렇게 호응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삼시세끼 고창 편>에서는 아재가 기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유해진에 의해 농익은 아재 개그가 펼쳐지고 가장 나이어린 남주혁이 후계자를 자청하는 모습은 시청 포인트다. 이제는 스승인 유해진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아재 개그를 하는 20대 청년 주혁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재는 <삼시세끼 고창 편>을 보면 우리 사회에 그들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성공한 40대 선배들과 이제 막 시작한 20대 후배. 그들의 관계는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경계는 존재한다.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그 경계 속에서 아재 개그를 펼치는 선배의 문화에 동화되어가는 청년의 모습은 그저 <삼시세끼 고창 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복고 열풍을 주도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아재들의 추억 여행이다. 이런 특화된 장르에 청년들까지 열광하는 것은 재미있다. 자신들은 경험도 해볼 수 없었던 부모세대들의 청춘 시대를 그들도 흥미로워하는 것은 단순히 부모 세대에 대한 이해를 위함은 아닐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과 이에 열광하는 청년 세대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기성세대들은 과거 청년 세대 수많은 문화들을 만들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끌어왔다. 그 증거들이 모두 드라마에 녹아들었고, 그들은 그런 과거를 추억하며 행복해할 수는 있다. 이는 현재의 청년 세대에는 과거 청년들과는 다른 주도적인 문화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불타는 청춘>은 무척이나 상징적인 프로그램이다. 향후 주류 형식이 될 수밖에는 없지만 조금 이른 듯한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 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4, 50대 스타들의 여행이야기가 이렇게 호평을 받는 것은 복고 열풍과 일맥상통하다.

 

복고와 함께 아재들이 주도하는 문화가 어느 지점까지 이르렀는지는 <불타는 청춘>이 잘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적어지는 것과 달리 아재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더욱 강화되고 진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 시대를 이끌었던 청년 세대들은 성장하며 정치와 경제, 문화의 주체가 되었다. 그들은 청년 세대에도 기성세대가 되어서도 시대의 주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에 의해 함몰된 사회는 청년들을 재물로 삼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청년들의 꿈과 희망마저 짓밟고 있는 기성세대의 추악함은 결국 세대 갈등을 낳고 젠더 전쟁까지 불러오는 등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 미래가 없는 청년들에게는 분노만 남아 있고 그 분노는 결국 자학적인 파괴 행위로 극대화되고 있는 게 바로 우리가 사는 2016년 모습이다.

 

오렌지 족, X세대, Y 세대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청년들을 상징하는 문화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성장의 동력이 되었고, 그렇게 그들은 주류가 되었다. 주류가 된 그들은 청년 문화가 아닌 아재 문화까지 이끄는 중추다. 그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아재 문화가 잘 대변하고 있다.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가 있다.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그들은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이 없는 미래가 없는 세대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삼포세대가 존재한다. 현재는 오포, 칠포 세대라는 말로 점점 확장되는 우리 청년 세대 역시 일본의 세대와 유사해져가고 있다.

 

일본이 지독한 경제 몰락 시대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일본보다 더 지독한 시간들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청년들에게 아재라는 가치는 그저 재미나 동경의 대상이 아닌 어쩌면 증오의 이름일 수도 있어 보인다.

 

아재의 성공과 유행에서 과연 아재들은 청년들을 위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사회의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이끄는 과거의 청년들은 현재의 청년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능마저 주름잡고 있는 아재들의 아재파탈이 흥미롭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박탈된 청년 문화가 역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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