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 09:51

질투의 화신 3회-조정석에게 유방암 선사한 작가의 의도

조정석은 왜 국내에서 희귀한 남성 유방암 환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작가의 설정은 그래서 재미있다. 잘나가는 마초 기자 이화신과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기상 캐스터 표나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에 의외로 다가온 유방암은 <질투의 화신>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빨간 줄과 파란 줄의 차이;

수술 앞둔 표나리와 이화신, 유방암으로 하나가 된 처절한 로맨스

 

 

누군가에게는 쉬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어렵고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음주방송을 하고 그 자리에서 해고가 된 나리의 인생은 참 힘들다. 어렵게 자신의 꿈인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상 캐스터가 그녀의 자리였다. 지독하게 버티며 동생 뒷바라지까지 하는 그녀에게 삶은 그저 고통이었다.

 

지독한 마초 화신은 엉뚱하게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나리에게 분노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짓들이 성추행이라고 지적을 해도 나리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놓은 결론이 '유방암'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유방암이었다며 자신의 엄마와 가슴이 닮았다는 나리의 발언을 황당하게만 생각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찾아간 병원에서 화신은 황당한 말을 듣게 된다. 유방에 문제가 있다며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한다. 그렇게 전문의를 찾은 화신은 정말 자신이 유방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해고된 날 나리와 마주한 인물은 화신만은 아니었다. 화신의 오랜 친구이자 재벌 3세인 정원과 마주하게 된다. 우연하게 비행기에서 만난 후 이상하게 연결되는 둘의 관계는 운명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정원과 인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상황에 자신이 만나왔던 여자와는 전혀 다른 나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꼬여 있는 상황임에도 정원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에게 세상은 쉽기만 했으니 말이다. 쉬운 세상에 어렵게 사는 나리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둘의 만남은 결국 변죽을 울리기만 하겠지만 나리와 화신 사이 강력한 존재감으로 둘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주동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반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빨강이는 아버지가 입원한 후 식욕도 모두 잃었다. 삼촌인 화신으로 인해 한순간에 몰락한 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아버지이지만 그에게는 전부였다. 아버지가 망한 후 엉망이 된 둘은 락 빌라에 모든 것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죽음의 위기에 놓인 아버지로 인해 빨강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하게 집 근처에서 삼촌을 봤다. 옥탑방에 사는 나리 언니와 함께 가는 남자가 바로 삼촌이었다. 친 엄마인 계성숙과 새 엄마였던 방자영 모두 빨강을 자신의 딸이라며 키우겠다고 싸운다. 기자인 계성숙과 이혼 후 즉시 아나운서 방자영과 결혼식을 올리며 모든 것들이 꼬이게 된 그들의 삶은 여전히 뒤틀려 있을 뿐이다.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인 안치환의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들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빨강은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신에게 그 노래는 자신의 삶 마지막을 장식하고 보내주는 꽃가마와 같았다. 자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하얀 옷을 입고 꽃을 들고 병실을 찾는 모습. 그들은 모두 행복한 모습이었고 이질감도 없었다.

 

현실에서도 서로 싸우기에 바쁜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을 축하해주는 자리. 그렇게 중신은 딸 빨강이와 주변 사람들과 마지막 이별을 했다. 중신의 죽음은 화신의 이야기가 보다 극명하게 새로운 전개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장면 연출은 의외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반갑다.

 

죽음을 바라보는 색다른 방식은 <질투의 화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화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은 병원의 전문의는 나리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그 장소에서 나리 역시 수술을 통보 받는다. 비록 암은 아니지만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수술을 결정한 나리는 입원을 했다.

 

2인실에서 수술을 앞둔 나리를 당황하게 한 것은 옆 자리 환자가 바로 화신이라는 사실이다.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유방암 수술을 남자 중의 남자라고 자부하는 화신이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만 하다. 물론 나리가 이미 예견하고 지적했던 일이지만 사실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왜 화신에게 다른 것도 아닌 유방암을 선물했을까? 물론 가족력이 있는 나리와의 연결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곧 유방암일 이유는 없었다. 작가가 마초에게 유방암을 선사한 것은 시대 변화를 대변하는 강력한 한 수였다.

 

여전히 꼴통 마초와 같은 성향을 가진 남자들은 많다. 그런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유방암을 선사한 것은 그만큼 큰 의미를 부여받은 셈이다. 마초와 유방암이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을 통해 <질투의 화신>은 어설픈 마초 사회에 강력한 한 방을 내질렀다.

 

빨간 줄과 파란 줄로 나뉘는 사회. 정규직은 파란 신호등처럼 파란 색 줄을 하고 있고, 비정규직은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니 빨간 줄을 달고 있어야 하는 현실. 그 지독한 현실에 자조하는 나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가려는 나리가 과연 그 모진 상황들을 이겨내고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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