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7. 10:01

양희은 상록수와 노무현 상록수-2016년 190만개의 촛불과 다시 노무현

전국에서 190만 개의 촛불이 켜졌다. 비와 눈이 오가는 궂은 날씨에도 국민의 분노는 다르지 않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만 15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밝혔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은 그렇게 당당하게 광장에 모였다. 


상록수로 하나 되다;

예고에 없던 양희은의 등장, 상록수를 합창하며 바보 노무현을 불러내다



트랙터를 몰고 2주 동안 국토 횡단을 하며 서울로 올라오던 농민들은 서울 입성에는 실패했다. 프랑스에서는 경찰이 호위하며 트랙터 시위를 이끌던 모습과는 너무 달라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대치하던 농민들도 트랙터를 버리고 서울로 향했고, 그렇게 광장에서 하나의 촛불이 되었다. 


악의 날씨 속에서도 시민들은 이른 시간부터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첫 눈까지 내리며 광장은 차가운 속내만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차가운 곳에 시민들은 모여들었고 그곳은 이내 따뜻한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시민들의 온기는 그 차가운 광장을 따뜻하게 달궈놓았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은 지났다. 청년들의 시위 문화는 그렇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합리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배웠던 그들의 변화는 그렇게 광장에서 풍자와 해학을 낳았다. 물론 그 합리성이 지금의 이명박근혜 정권을 만들어낸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폭력이 아닌 비폭력을 앞세운 시민들은 성숙해졌다. 과거 화염병을 들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도 이제는 촛불을 들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에 나섰다. 시대는 변화하고 그렇게 달라진 현실 속에서 우린 폭력이 아닌 비폭력 평화 시위를 선택했다. 


물대포로 무장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던 경찰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도 폭력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지키는 권력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그들 역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법원은 이번에는 청와대와 200m 떨어진 청운동까지 시위를 허가했다. 


법원의 상징적인 선택은 매 번 촛불 집회를 하면서 청와대와 가까워지고 있다. 법에서 정한 청와대와 100m까지 법원은 그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눈앞에 청와대가 들어온 그 거리에서 시민들은 외쳤다. "박근혜 퇴진"을 목 놓아 외치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국민의 목소리는 청와대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8시에는 그 거대한 촛불이 모두 꺼졌다. 어둠을 이기는 거대한 빛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이 퍼포먼스는 장관을 만들어냈다. 촛불 파도타기에 이어 1분 동안 꺼진 촛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며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울리는 그 과장은 경건하면서도 뜨거웠고 활기찼다. 


거대한 공연장이 된 촛불 집회의 문을 연 것은 '시함뮤'의 공연이었다. 레미제라블에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었던 '민중의 노래'는 이제 광장에서는 당연한 순서 중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이 이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할 정도다.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안치환의 '자유'부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이어지는 노래들은 분위기를 고취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연의 절정은 예정에 없었던 양희은의 등장이었다. 서슬 퍼런 시대 금지곡이었던 '아침이슬'로 시작된 양희은의 노래는 '상록수'에서 절정에 올랐다. 


'상록수'를 부르는 양희은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은 '바보 노무현'을 생각했을 듯하다. 투박하게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던 그의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대통령제가 시행된 후 유일하게 제대로 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은 민주주의가 붕괴된 현실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 지평을 열어갔던 노무현. 그렇게 우린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명박과 박근혜가 권력을 잡으며 대한민국은 급격하게 미래를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정희와 마주한 박근혜는 민주주의를 처절하게 파괴해 버렸다. 


현대 사회에서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저지른 그는 새로운 행태의 독재 정치를 펼쳤다. 아버지가 탱크를 몰고 광장을 지배하더니, 딸은 비선들을 이끌고 민주주의를 붕괴시켜버렸다. 이런 박근혜를 포장하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취해있던 새누리당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이 현재 보이는 행동에는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권력에만 집착하고 있고, 박근혜교에 심취한 심복들은 박근혜를 예수와 비교하며 충성심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박정희를 비호하던 정치군인들처럼 말이다. 


박근혜는 노무현과 가장 큰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소통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권력 행사에만 심취했던 박근혜와 달리 노무현은 국무회의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었다. 소통을 최우선하며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함께 하는 대통령의 기준을 세웠다. 


권위를 버리고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노무현이 다시 많은 이들에 의해 되살려지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그 시절에는 노무현의 정치마저 부족하다고 느꼈던 국민들은 다시 독재시절로 회귀한 현재 다시 한 번 촛불을 들고 노무현을 떠올린다. 


양희은의 '상록수'에는 '바보 노무현'이 있다. 투박하지만 그 누구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했던 노무현이 다시 우리를 깨우고 있다. 국민 스스로 이제는 그렇게 성장해가고 있다. '바보 노무현'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다시 광장에 나와 풍자로 독재 권력에 맞서고 있다. 그렇게 국민은 성장해가고 있다. 너무나 뜨거웠던 2016년 11월 26일 광장에는 '상록수'가 흘렀고 우리의 마음속에는 다시 '바보 노무현'이 들어오고 있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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