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9. 15:23

솔로몬의 위증-왜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나서야 했을까?

학 내에서 학생이 죽었다. 자살이라고 정리가 되었지만 누군 가는 타살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전국 최고를 자처하는 고교에서 발생한 죽음 앞에 학교는 서둘러 사건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갑자기 날아든 '고발장'이 모든 것을 뒤틀기 시작했다. 


고발장이 날아왔다;

광장에 모인 학생들과 같은 드라마, 왜 어른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나서야 했을까?



언제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서연은 고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는 것이 할 일의 전부다. 손에 마비가 올 정도로 공부만 하는 서연과 그런 그를 지켜보는 반 친구 서언. 그런 서언이 갑자기 숨진 채 발견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이 학교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고사는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왜 죽어야 했을까? 모두가 의아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서둘러 자살로 정리하고 마무리하기에 여념이 없다. 급하게 정리되며 모두의 기억에서도 사라져 가는 듯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고발장'이 날아들었다. 왜? 누가? 무슨 이유로 '고발장'을 보냈을까? 고발장은 동급생이 보낸 것이다. 자신을 목격자라고 자처하며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일은 언론과 경찰까지 알게 되며 큰 논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소우는 자살이 아니라 최우혁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주장이었다. 최우혁은 무성산업 최사장의 아들로 정국고의 폭군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학내에서 논란만 만들고 다니는 최우혁은 이소우가 죽기 얼마 전에도 교실에서 싸움을 하는 것을 많은 학생들이 목격하기도 했다. 


문제의 '고발장'을 작성해서 교장과 서연에게 보낸 것은 주리였다. 주리는 자신을 벌레 보듯 하며 괴롭히는 최우혁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주리가 실제 목격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주리는 자신을 따르는 친구 초롱과 함께 '고발장'을 작성했다. 


주리의 복수심은 언론을 통해 공론화 되도록 이끌었다. 서연의 아버지가 형사라는 사실을 알고 '고발장'을 보냈음에도 조용한 상황이 주리를 분노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언론이 개입하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불안을 느낀 초롱은 주리에게 경찰에게 가서 사실을 밝히자고 하지만 오히려 교통사고를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착한 초롱을 이용하기만 했던 주리에게 그녀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친구라고 믿었던 주리에게 자신이 농락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없이 달리던 초롱은 트럭에 치여 병원에 실려가고 말았다. 오직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주리의 '고발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문 너무 믿지마. 그러다 중요한 현실을 놓친다. 내가 방송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소우가 왜 죽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박 기자와 서연의 대화였다. 찢겨진 '고발장'을 받고 언론에 공론화 시킨 박 기자가 서연과 이야기를 하면서 던진 이 화두는 흥미롭다. 소문에 집착하다 보면 중요한 현실을 놓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하고 싶었던 것은 이소우가 왜 죽었는가라고 밝혔다. 이는 본질이다. 왜 이소우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중요하다. 이 드라마의 시작이자 핵심이고 결말을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가치가 바로 이소우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한테 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느냐. 우리 반에 빈 책상만 네 개에요. 그게 어른들의 보호고 도움이에요?"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이소우가 왜 죽었는지 우리가 밝혀내면 되잖아요"

가만히 있는 게 너희에게는 유리하다는 박 기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좋아요'나 누르는 것이 전부인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어른 도움 없이 뭘 할 수 있느냐는 질책에 서연은 분노했다. 서연의 분노는 당연하게도 학내에서 법정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가치가 다가온다. 일본의 문화와 달리 한국에서 학생들에 대한 가치와 이유에 대해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솔로몬의 위증>은 그래서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자체적으로 학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매력적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수백 만의 국민이 광장에 나섰다. 이 촛불 집회에서 가장 주목해야만 하는 부분은 학생들이다. 그동안 광장에서 보이지 않았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정치에서 외면 당해왔고, 스스로도 정치를 멀리해왔던 그들이 광장에 나왔다. 


어른들은 언제나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만 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더욱 불평등이 극대화 되면서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음을 청소년들은 정유라 사태로 인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 드라마 역시 이런 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의 '가만히 있으라'에 대한 반발이자 그들 스스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부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자들과 맞서 싸우지 못한 채 현실과 회피하기에 급급한 다수의 학생들. 어른들은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어른들의 부당함에 맞서 스스로 진실을 찾겠다는 아이들의 움직임은 그래서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다. 어른을 더는 믿지 못하고 아이들이 직접 나서 진실을 찾겠다는 그 결의는 그래서 반갑다.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누구도 그들을 도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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