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28. 08:45

귓속말 1회-이보영 이상윤 첫회부터 묵직하고 촘촘한 그물이 드리웠다

역시 박경수 작가였다. 첫 회부터 폭풍처럼 몰아치는 전개에 묵직하고 촘촘한 그물에 갇혀 버린 주인공들의 모습은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지배권력 집단의 얽히고 설킨 관계들을 축약해서 모두 보여준 <귓속말>의 첫 회는 그 자체 만으로도 충분했다.


웰컴 투 법비 월드;

이보영과 이상윤의 지독한 운명, 탐욕이 지배하는 시대 악은 언제나 성실하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까지 세차게 내리는 저녁, 도로를 달리던 창호는 거칠게 운전하는 자에 의해 사고 위험에 빠지고 만다. 더 큰 문제는 만나기로 했던 후배 성식이 통화 중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해직 기자들인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날 누군가 개입했고, 그렇게 죽음의 덫은 잔인하게 창호의 발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신영주 경위는 해직 기자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는데 모든 것을 건다.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방산 비리와 관련된 자료들 속에 대한민국 법비의 상징인 태백 로펌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영주 앞에 등장한 것은 바로 살인자 누명을 쓴 아버지였다. 


판사 이동준은 강직하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대법관이 자신의 사위를 구하기 위해 동준의 아버지와 만나 거래까지 한 대법관 앞에서도 동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병원장인 아버지나 대법관의 압박 속에서도 비리사범을 원칙대로 판결한다. 


재벌도 판사의 친인척이라고 해도 비리를 저지른 자들과는 조금의 타협도 없는 동준은 모두가 인정하는 강직한 판사다. 하지만 이 강직함이 결과적으로 독이 되고 말았다. 태백이라는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법무법인에 의해 빅 피처는 그려졌다. 자신들을 옥죄는 전직 기자인 신창호를 살인죄로 누명을 씌우고 그 판결을 이동준에게 맡긴다는 태백의 최일환은 잔인한 인물이다. 


동준은 스무살이 되어서야 아버지인 이호범의 호적에 올려졌다. 병원장인 이호범은 그런자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그는 아들인 동준을 이용하려고만 할 뿐이다. 대법관과 거래를 하려 했던 이유 역시 병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을 하게 된 것 역시 최일환이 강직한 판사인 동준을 원하기 때문이다. 최일환과 이호범의 관계는 주종 관계일 뿐이다. 아버지 시대 주종 관계였던 그들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로펌의 대표인 최일환에게 병원장인 이호범은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종일 뿐이다.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영주는 노력하지만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경찰 고위직마저 태백에 의해 지배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답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사건 판사가 이동준이라는 사실에 희망을 품는다. 


"보이는 증거는 외면하지 않는다"


첫 법정이 끝난 후 동준을 만난 영주가 들은 말이다. 최소한 증거를 외면하는 판결을 하지 않겠다는 동준의 이 한 마디는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증거를 찾기 위해 준비하던 영주는 연인이자 형사인 현수와 함께 강가에서 잃어버린 아버지의 휴대폰을 찾게 된다.  


태백에서 움직이는 용역 깡패들이 문제의 휴대폰을 찾는 것을 확인한 영주는 중간에서 그걸 낚아챘다. 그리고 그 휴대폰 안에 담긴 증거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증거라면 아버지는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 이는 곧 태백의 위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동준을 압박하는 태백의 힘 역시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대법원마저 쥐고 흔드는 최일환에 의해 동준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환은 인사위원회의 멤버들까지 선정하는 힘까지 보여준다. 도망칠 곳도 없을 정도로 옥죈 상황에서 동준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처럼 그저 편안하게 변호사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 되지만 젊은 동준에게는 불명예로 판사에서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누구보다 강직하고 정의로운 판사였다는 그 모습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모욕을 당하며 물러날 수는 없었다. 


최선의 선택을 멀리한 채 최악의 상황에서 차악이라 자위하면 선택한 동준은 정략 결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최일환이 조건으로 제안한 신창호 사건을 대신 작성한 판결문을 읽어주는 것으로 악마와 손을 잡았다. 믿었던 판사의 배신. 확실한 증거까지 가지고도 억울한 판결을 한 동준을 영주는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영주가 믿고 의지했던 연인 현수 역시 자신만 살겠다고 거짓 증언을 한다. 그 배신으로 인해 영주는 경찰직에서 파면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는 현실 속에서 영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복수를 하는 것이 전부다. 


결혼식 전날 사시 동기생 모임에서 술에 만취한 동준을 집이 아닌 호텔로 데려간 영주는 가장 잔인한 복수를 시작했다. 은밀한 동영상을 찍은 영주는 동준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결혼식 당일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에 처한 동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강직하고 정의로웠던 판사 이동준은 잔인한 법비 최일환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파면까지 당한 전직 형사 신영주 사이에 끼어버린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귓속말>은 시작부터 강렬했다. 강직한 언론인의 등장과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방산비리와 거대 로펌의 개입. 탐욕스러운 병원장의 청와대 입성에 대한 갈증. 의료 민영화에 대한 기대치까지 쏟아지는 첫 회는 이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최일환의 모습을 보면 우병우를 떠올리게 한다. 청와대마저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 놓고 검찰 조직마저 장악한 거대한 법비인 우병우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준의 아버지이자 병원장인 이호범이 외치는 대통령 주치의에 대한 갈망 등도 최근 벌어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한 단면을 보는 듯 씁쓸하기까지 하다. 


강렬한 시작과 묵직한 메시지가 첫 회부터 쏟아진 <귓속말>은 역시 박경수 작가다웠다. 물론 그의 전작들에서 사용한 방식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런 형식은 결국 박경수 스타일로 봐야 쉽게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심지어 최일환의 사무실이 전작인 <펀치>의 서울지검장 이태준 사무실과 동일한 모습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촘촘하게 엮여진 캐릭터들의 등장은 첫 회부터 완벽하게 구성을 마쳤다. 첫 회 단순하게 사건을 만들고 전개하는 수준을 넘어 중요 캐릭터들이 상호 충돌하며 이후 이야기를 위한 복선들로 엮어 놓은 과정은 역시 박경수 작가의 힘을 느끼게 했다. 이보영이 조금은 야윈 모습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첫 악역에 나선 이상윤 역시 무리 없이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법비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드라마 <귓속말>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치를 무너트리는 법비의 세계. 그 거대한 악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가진 자들은 더욱 강력해지는 이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과연 어떤 식으로 발산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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