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3. 09:01

김제동의 톡투유 100회 특집-소통이 금지된 세상 소통을 이야기 하다

100회를 맞이한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이하 김제동의 톡투유)>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이야기가 소통 되는 공간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게 했다. 모든 이들의 생각이 곧 주제가 되는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바로 그 '소통'에 있다. 소통이 제어 당한 시대 그들이 걸어온 100회는 그래서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이제 걱정말아요 그대;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가 주제가 되는 토크쇼, 100번의 이야기에 담은 우리



김제동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금칙어와 같은 존재였다. 이명박근혜 시절 과거로 회귀하기를 원하는 그들에 의해 민주주의 퇴보도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독재자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갈구였다. 그 시대에 대한 갈증은 그들 스스로 독재자가 되고 싶다는 갈망의 표출이었다. 


독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통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이끌려는 행동은 결국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가장 우선했던 것이 바로 언론 통제였다. 언론을 장악해 소통을 막아버린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국가와 국민을 자신들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강한 갈증 외에는 없었다.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자유는 곧 폭압과 탄압의 시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명박은 광장의 소통을 막았다. 국민이 광장에 모이는 것 자체를 부정했다.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 만들어진 이유 역시 그런 단절의 역사 때문이다. 소통을 막은 독재자가 하는 일은 결국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제하고 자신만을 위한 정책은 그렇게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독재자가 되고픈 욕망만 지배하던 이명박근혜 시대 잃어버린 자유와 소통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음습하게 만들었다. 이야기하고 싶어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 소통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주장만 존재하는 현실은 암흑기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김제동의 톡투유>는 그래서 특별했다. 


지상파에서 입지가 좁아진 김제동.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관객과의 소통이다. 이미 전국 투어를 통해 '소통의 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증명했던 그는 그렇게 JTBC를 통해 재현해내기 시작했다. <김제동의 톡투유>는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물론 방송에서는 모든 이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적극적인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가치에서 그들은 동일하다. 일방적으로 마이크를 쥔 자가 이야기를 하고 청중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 전달식이 아닌 양방향 소통을 강조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자 가치였다. 


주제가 사전에 정해지기는 하지만 최대한 함께 한 시민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이 프로그램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화자가 존재하고 그 날의 손님도 초대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오직 그곳에 함께 하는 수많은 이들과 소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프로그램의 거의 대부분은 적극적인 소통으로 이뤄진다. 정해진 주제에 따른 각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는 과정은 공감으로 연결된다. 그 과정의 가치는 곧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리고, 혹은 빼앗겨버린 당연한 권리의 향연이기도 했다. 


광장은 막히고, 소통마저 빼앗긴 이명박근혜 시대.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스케치북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적극적으로 나서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소통'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김제동도 노래를 하는 가수도, 전문가는 유명 연예인들도 주인공이 아닌 그저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역할로 전환되는 <김제동의 톡투유>의 주인공은 언제나 방청석에 앉아있는 시민들이었다. 오프닝이 그 어느 프로그램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높은 방송. 그 모든 오프닝의 주인공은 바로 녹화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몫이었다. 


최대한 그들과 이야기를 하기를 원하는 김제동의 모습은 그래서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더욱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시대에 이런 소통의 창구는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소통할 수 없는 시대는 죽음과 같다. 침묵을 강요하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제동의 톡투유>는 그 모든 가치를 잘 보여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손석희 앵커가 그토록 해보고 싶었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제동. 그 입담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다가오는 것은 공감 능력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공감하는 능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가장 소중한 가치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공감'이 그 어느 가치보다 소중하다. 이런 시대적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이 바로 <김제동의 톡투유>라는 것만은 명확하다. 


소통이 금지된 세상 소통을 이야기한 <김제동의 톡투유> 100회는 그래서 더 큰 가치를 지닌다. 2015년 2월 파일럿 방송을 시작으로 2015년 5월 3일 첫 방송이 된 <김제동의 톡투유>는 그렇게 100번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었다. 그것 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충분하다. 새로운 101번째 발걸음을 하는 이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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