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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묵은 기억들

쓰리 빌보드-딸을 잃은 엄마의 분노, 그 광기가 불러온 나비효과

by 자이미 2018.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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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나간 후 실종되었다. 실종된 아이는 겁탈 당하고 불에 태워진 채 버려졌다. 아이가 죽었는데 범인을 잡지 못한다.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잔인한 사건. 하지만 무능하거나 불편한 경찰은 좀처럼 사건에 근접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밀드레드는 엄마의 이름으로 일어섰다. (스포일러 포함)


세 개의 광고판이 부른 나비효과;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작은 마을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벌어졌다. 납치되어 겁탈 당하고 기름을 뿌려 불에 태워버린 엽기적인 사건이다. 사건은 일어났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누가 범인인지 윤곽도 잡기 어렵다. 다른 이들은 잊을 수 있지만, 엄마는 그렇게 허망하게 간 딸을 잊을 수는 없다. 


밀드레드와 딸 안젤라는 사이가 좋지는 않다. 이혼 후 평온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관계는 그래도 모녀 사이 이기에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것은 거친 말들로 상처를 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밀드레드는 더 아프다. 자신 때문에 딸이 그렇게 죽었다는 죄책감도 존재했다. 


큰 도로가 생기며 밀드레드 집 앞에 있던 구도로는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렇게 도로에 근접해 있던 광고판 세 개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관리하는 레드를 찾아가 1년 계약을 맺는다. 한 달에 5천 불이라는 큰 돈을 들여 광고판 세 개를 임대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광고가 게재되자 마을은 시끄러워졌다. 마을 경찰 서장인 윌러비를 조롱하고 경찰 조직 자체의 무능을 탓하는 광고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적했던 그 마을에 버려진 광고 탑 세 개에 새로운 광고가 실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영화 <쓰리 빌보드>이다. 


작은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안다. 현명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가 두터운 서장 윌러비와 달리, 백인 우월주의 딕슨은 사고뭉치다. 충성도는 높지만 사리 판별 능력이 떨어지는 딕슨은 무식한 자가 완장을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 영화는 미투 운동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내용은 미투가 아닌 잔인한 살인사건에 대한 진실 찾기지만,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었던 폭로의 가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 가해자가 명확한 사건, 그리고 침묵했던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세상을 바꾸는 과정과 이 영화가 동일하다 볼 수는 없다. 


핵심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의 문제에 침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침묵하는 사회에 거대한 반항을 하며 모든 것은 시작된다. 사용하지 않는 빌보드에 경찰의 무능을 비판하는 광고를 하면서 진실을 찾기 위한 관심이 촉발되었다. 


<쓰리 빌보드>가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유는 변곡점으로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했던 그 작은 마을은 광고판에 광고가 붙으며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변곡점은 모든 것을 깨우는 엄청난 힘으로 다가왔다. 


시작을 했다고 쉽게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가장 합리적이며 현명한 서장은 암 말기다. 그는 스스로 죽기 전 가족과 밀드레드, 그리고 딕슨에게 유서를 남겼다. 그 유서들은 새로운 변곡점이 되었다. 전 남편이 남긴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는 트랙터를 처분해 5천 불을 광고비를 지불했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 광고비도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기부를 했다. 


윌러비가 밀드레드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자신은 암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가지만, 끝까지 싸워서 범인을 잡아 달라는 응원이었다. 마마 보이에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에 폭력이 일상이었던 딕슨은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광고를 허용한 레드를 잔인하게 폭행했다. 그 폭력으로 딕슨은 경찰복을 벗어야 했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은 딕슨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는 윌러비가 남긴 편지를 보러 간 후 삶이 바뀌었다. 음악을 들으며 윌러비가 남긴 유서를 읽던 딕슨은 갑작스러운 화제 속에서도 파일 하나를 챙겨 경찰서 밖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경찰서에 불을 낸 것은 밀드레드의 짓이었다. 모두가 퇴근 후 늦은 시간 불이 꺼진 경찰서에 분노한 밀드레드는 화염병을 던졌다. 그렇게 불을 질렀다. 그녀가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광고판에 누군가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추측이지만 그 범인은 분노한 딕슨일 가능성이 높았다. 윌러비를 따랐던 딕슨에게 그가 없는 세상은 견디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밀드레드가 논란 것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딕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유는 지독하게도 싫은, 그래서 증오하고 있던 딕슨이 그 상황에서도 딸 사건을 조사하던 '안젤라 파일'을 품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딕슨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 역시 윌러비가 쓴 유서 때문이었다. 그의 꿈 진짜 형사가 되고 싶어했던 딕슨에게 희망을 준 그 유서가 딕슨의 선택을 도왔다.


광고와 자살, 그리고 방화로 이어지는 변곡점들은 관련된 모든 이들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딕슨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진정한 삶에 대한 가치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잔인하게 폭행했던 레드.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그곳에 레드가 있었다. 


얼굴을 완전히 가린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레드. 자신이 딕슨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을 때 그는 보복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잠깐 분노해 고함을 치기는 했지만 레드는 딕슨과 같은 방법을 쓰지 않았다. 깊은 화상을 입은 딕슨에게 주스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레드의 그 행동은 딕슨에게 큰 변화를 이끄는 이유가 된다. 


술을 마시다 뒷자리에 앉은 남자의 자랑삼아 한 발언을 듣고 딕슨은 범인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안젤라가 사망한 것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고 그렇게 폭행을 당한 딕슨은 그 자체로 증거를 얻었다. 차량 번호까지 얻은 딕슨은 그렇게 진범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안젤라 사건을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사건이 일어나던 기간 중동에 나가 있었다.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파병 군인으로 읽히는 그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중동 전쟁을 일으킨 미군. 그리고 현지에서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 미군이 돌아와 그 짓을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충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흐름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는 밀드레드와 딕슨이 함께 혐의를 벗은 범인을 향해 떠나는 장면은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영화는 광기가 지배한다. 딸을 잃은 엄마가 보인 광기는 그렇게 모든 것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 용기를 내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모습이 없다면 변화는 없다. 그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그런 메시지를 조금은 강렬하지만 매력적으로 담아낸 <쓰리 빌보드>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중요한 변곡점들을 통해 변수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이야기가 보다 단단해지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재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묵직한 메시지 역시 왜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지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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