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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잊혀진 계절-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될 뿐이었다

by 자이미 201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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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만극의 완성도를 보여준 걸작이다. 다시 시작된 KBS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기대치를 극대화 시켜줬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탁구공>이 보여준 가능성에 <잊혀진 계절>이 보여준 장르의 완성도는 단막극이 만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연쇄 사건;

인간의 심리 묘사의 탁월함, 모든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에 시작되었다



새벽 갈대 밭에 큰 가방을 던지고 사라진 남자.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사건은 수렁처럼 빠져들게 만들었고,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과연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던 것일까?


이야기의 중심은 고시원이다. 노량진 고시촌 그 중 한 곳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이은재(고보결)는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만 한다. 5년째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은재에게 더는 시간이 없다. 온 정신을 집중하지만 참 쉽지 않다. 그런 어느 날 옆방에서 들려온 통화 소리에 놀랐다. 


그 시끄러운 통화 소리가 이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은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경찰 시험은 필기 만이 아니라 실기도 중요하다. 아침마다 열심히 달리던 은재는 편의점 알바생인 김우현(재호)이 짐을 옮기던 과정에 부딪쳐 손에 상처를 입고 만다. 그 상처는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이유가 되었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날 은재를 찾은 이는 동작경찰서 경찰이었다. 이 방문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강의실에서 모두가 수업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홀로 휴대폰을 보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 넘어진 허준기(김무열)는 장수생이다. 8년째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관심이 없다. 


준기는 은재 옆방으로 이사 온 날 냉장고를 옮겨 달라는 고시원 주인의 부탁으로 최지영(고민시)과 처음 만났다. 하지만 이들은 만나서는 안 되는 운명이었다. 공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직 도망치고 싶은 피난처가 필요해 고시원에서 공부를 핑계로 버티고 살아가는 준기의 어설픈 행동들은 나쁜 감정들을 키우고 쌓아갈 뿐이었다. 


지영은 옆방에 사는 은재와 친해져 보려 노력하지만 이미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상태에서 시끄러운 옆방 신입이 반가울리 없었다. 지영과 준기의 관계가 더욱 균열이 가게 만든 것은 택배였다. 장난감을 구입한 준기는 지영 택배가 자신 것이라 착각한 채 상자를 뜯어버렸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그렇게 점점 서로에게 날카로운 감정만 쌓았다. 


은재에게도 지영은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다. 입이 거칠기만 한 지영의 툭 던지는 한 마디가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고시원생들이 다니는 편의점 알바생인 우현은 은재를 좋아한다. 그 감정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1년 전 컵라면을 먹다 사래 걸린 그녀에게 캔커피를 건네주던 그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은재도 그날 자신에게 위로하듯 커피를 준 우현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우울한 시간들 속에서 자주 접할 수밖에 없는 편의점 알바생. 그가 건넨 위로가 외로운 은재에게는 힘이었다. 


캔커피와 손바닥 상처, 그리고 약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는 은재가 최종 합격이 된 후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힘들게 식사 한 번 하자는 우현의 용기에 은재는 받아들였다. 시험 합격이 만들어준 여유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행복한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였다. 


모든 것이 뒤틀린 것은 새벽 갈대 밭에 사체가 담긴 거대한 가방을 버리고 가는 남자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신은 지영이었다. 감정이 뒤틀릴 대로 뒤틀린 준기와 지영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 과정에서 날카롭게 마주했다. 괜한 참견을 하며 시비를 거는 준기에 지지 않고 받아치는 지영. 그런 그녀에 분노해 뒤따라가 극단적 행동을 하는 준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가짜 CCTV와 여자 층 비밀번호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알려준 주인으로 인해 준기는 손쉽게 지영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시험을 앞두고 민감한 은재는 모든 소리와 차단을 하려 노력했다. 그날 옆방에서 났던 소리를 은재는 애써 외면했다. 물론 그게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 은재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었지만 은재는 자신의 시험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애써 자기 합리화를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은 벌어졌고, 그렇게 시체를 버린 준기는 동생인 허윤기(정준원)에게 전화를 했다. 잘나가는 기자인 동생에게 자신이 한 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판에 뛰어들고 싶어 안달이 났던 윤기에게 거치장스럽기만 한 형이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고백은 분노할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윤기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 자신의 형을 이용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그 얇은 생각은 모든 것을 더욱 뒤틀리게 만들기 시작했다. 언론인임을 앞세워 대중들을 농락하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윤기의 행동은 살인을 한 형 준기보다 더욱 악랄할 뿐이다. 


<잊혀진 계절>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기묘할 정도로 연결된 그 사람들 사이에 관계만 들어지고 의문과 결론이 도출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매끄럽고 흥미롭게 이어진다. 처음 보여진 장면에서 연결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방식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이 경찰이다. 그런 경찰이 되고자 하는 그녀의 바로 옆방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 한 번의 사건의 추가 살인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사람마저 사라진 순간까지도 그녀는 최대한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그 지독한 시간이 만들어버린 괴물과 같은 감정의 메마름이 타인이나 다름 없는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기는 했지만 편의점 알바생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그녀에게 하루 이상을 넘길 수 있는 감정으로 남기 힘들었다. 나쁜 감정만 있던 옆방 여자는 더 그렇다. 


쉽게 지워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감정들은 그렇게 그녀의 몸 깊숙히 쌓인다. 잊혀진다고 잊혀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뇌리에 강력하게 각인된 기억은 지워질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잊었다고 하지만 그 죄책감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려 했다. 


익숙한 풍경들이다. 고시촌의 공시생들의 모습과 언론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며 알바하는 대학생.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표류한 채 스스로 고시촌 장수생이 되어버린 청춘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가짜 CCTV가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고시원 주인은 자신의 집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모르면 그만이니 말이다. 


살인자를 태웠던 택시 기사는 의심스러웠다. 몇 번 제보를 하려 했지만 망설이다 포기했다. 수많은 흔적들이 남겨지지만 우린 미처 알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며 미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은재와 그 시간 청소를 하는 청소부의 그 인연은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 혹은 여전히 암울함을 선사한다. 


익명의 도시. 그런 부유한 섬들이 살아가는 거대 도시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들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보고, 때로는 드론으로 전체 풍경을 바라보듯 은유하는 <잊혀진 계절>은 매력적이다. 모든 사물들마저 모두 의미가 있는 이 드라마는 장르 드라마의 가치를 다시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단막극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잊혀진 계절>은 왜 이런 시도들이 지속되어야만 하는지 말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퇴보하는 현재의 TV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니 말이다. 공감력 떨어지는 일본 드라마 따라가기에 다시 집중하는 한국 드라마에 <잊혀진 계절>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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