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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Broadcast 방송

거리의 만찬 9회-환자 간병은 개인의 몫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다

by 자이미 2019.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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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환자를 간병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부모가 나이 들어가며 간병의 책임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모두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힘겹게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병비가 너무 높아 가족이 간병을 하며 그 가족 모두가 붕괴하는 일들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 달에 최소 250만원 이상의 간병비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한두 달이 아닌 기약 없는 간병을 버틸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간병이 필요한 환자의 90% 이상이 가족 간병이다.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간병에 나서기 때문이다. 가족 간병의 큰 문제는 가족 경제와 삶이 함께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런 부담과 불합리함을 바로잡기 위해 간호 간병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실행되고 있지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극히 적다. 전체 병상의 10%를 넘는 수준이다. 간호 간병이 가능한 병원에서도 불만은 터져 나온다. 간호사의 수가 늘어 이를 충당하는 것이 아닌 간호사들의 책임만 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경우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치료를 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치료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아이를 책임지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해야 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


치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인 부모에게 아이는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소아완화의료팀'은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 겨우 두 곳 뿐이지만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조건들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2015년 처음 시작된 '소아완화의료'는 여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병수와 의료진으로 인해 모든 환아들이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단순하게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가족들의 마음까지 고민해주는 병원은 소중한 가치다.


'소아완화의료'는 '호스피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저 죽어가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에 중증의 아이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마지막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일부는 더는 치료를 할 수 없어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마지막 순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배려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은 그저 그런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증 환아들에게 치료를 하고 가족들이 어떻게 간병을 하며 버텨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족 중 한 명이 크게 아프면 가족 모두가 흔들린다.


간병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가족 중 누군가는 간병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은 결국 기존 가족 간의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가 된다. 이를 현명하게 버텨내는 것은 말처럼 쉬울 수가 없다. 그런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아완화의료팀'은 가족 상담을 추진해 고민들을 풀어내는 역할도 한다.


아픈 아이와 살아가는 엄마들의 소원은 단순하다. 그저 내 아이가 그렇게라도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란다. 하루 20~30번 가래를 빼주지 않으면 숨이 막혀 사망할 수 있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울 수 없다. 하루 2~3시간 자는 것도 어렵다는 어머니들의 힘겨움은 두려움으로 다가올 정도다.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웃을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일상적인 일들조차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죄인처럼 살아가야 한다. 처음 병원에 와서 휴게소에서 아이가 아픈 환자를 둔 어머니들은 서로 웃고 밥을 먹는 장면을 보며 놀랐다는 환자 어머니의 마음이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아이를 입원하고 치료하며 그 어머니는 왜 그들이 웃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웃어야 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타인들은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쓰러지면 아이를 돌볼 수도 없다. 그래서 그렇게 어머니들은 힘을 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편한 복장으로 간병을 했다는 한 어머니는 화장은 안 하지만 항상 깨끗한 옷으로 아이를 만난다고 했다. 한 두번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아이. 그 아이의 마지막 눈빛을 본 후부터 그게 마지막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이를 위해 가장 깨끗한 옷과 단정한 모습으로 아이를 본다고 했다. 아이의 마지막 기억에 예쁜 엄마로 남고 싶은 마음은 모든 이들을 아프게 한다. 그게 환자를 둔 가족의 마음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픈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 온전히 그 가족들의 몫이 되는 사회는 힘들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영국과 같은 간병 시스템을 우리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충분히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보다 좋은 상황에서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정치꾼들은 정쟁을 멈추고 사회적 약자와 약자로 전락해가는 많은 이들을 위해 나서야 한다.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며 다음 오는 총선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아니라, 국민을 대변하는 역할로 국회에 들어와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최소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완장질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한심한 정치꾼들에게 아픈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힘겨움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가족들이 그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관심도 두지 않는 한심한 자들이 모인 국회는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암 덩어리 그 자체일 뿐이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소아완화의료팀'을 확충하고 중증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를 며칠이라도 쉴 수 있도록 간병 시스템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보편적 복지를 위한 비용은 당연하다.


일부 정치 무리들은 이를 공산주의라고 비판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인다. 복지라는 단어만 나오면 공산당이라는 프레임을 거는 한심한 자들은 자신의 복지에는 사활을 건다. 그런 정치 세력들로 인해 모두를 불행으로 내모는 일은 안된다. 간호간병 병실 확대와 전문 간병인 제도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보편적 복지 확대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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