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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Broadcast 방송

회사 가기 싫어-워킹맘과 유리 천장에 우는 여성 직장인의 현실

by 자이미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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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가기 싫어하는 직장인들은 얼마나 될까? 회사 가고 싶은 직장인보다는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 회사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런 선택지는 결국 회사에게도 손해일 수밖에 없다. 자발적 직원과 어쩔 수 없는 직원들 사이 생산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회사 가기 싫어> 이번 편에서는 여성 직장인의 애환을 다뤘다. 드라마 성이 너무 커서 지난해에 비해 정보 전달력이 아쉽기는 하다. 러브라인이 형성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직장인의 애환이나 다양한 정보들이 줄어들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아쉽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드라마다.

회사 가기 싫어

오늘 주제는 여성 직장인의 삶이다.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직장내 성 평등은 요원한 일이다. 많이 바꾸려 노력은 하지만 남녀 불균형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 회사 내의 여성 중역들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사내 변화가 요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워킹맘인 양선영 하루는 힘들기만 하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지방에 사는 시부모까지 찾아야 했던 그녀는 반차를 내야만 했다. 회사는 그런 워킹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기계처럼 일만 하는 직원이 필요한 회사에서 애를 키우는 워킹맘은 계륵과 같은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대리인 한진주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능력자라면 남자가 우선이 되는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 출장을 가야 하는 진주는 정 대리와 함게 간다는 이유로 출장을 반려당했다. 남녀 사원이 함께 가면 말이 나올 수 있고, 숙박비도 더 나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M문고 과장인 윤희수의 삶은 말 그대로 여성 직장인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온몸으로 체험한 인물이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소문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굿굿하게 버텨낸 희수에게 회사는 어떤 곳일까?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희수에게 남겨진 것은 독하다는 인상과 수많은 소문들 뿐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믿고 싶은 가십에만 집착할 뿐이다. 능력이 좋은 여자에게는 낙인을 찍어야 한다. 그렇게 못난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한 능력과 한계를 감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은 '슈퍼맘'을 원한다. 애를 가지고, 애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여성들은 모두가 슈퍼맘이 되기를 요구한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모든 일에 완벽한 여성을 원한다. 회사 일에도 충실하고 집에 가면 집안일도 능통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 워킹맘은 슈퍼맨 이상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면 안 된다.

 

문제는 세상에 '슈퍼맘'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누구도 모든 일들에 완벽한 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남자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왜 여자들에게는 당연한 듯 강요하는가? 일과 가정, 그리고 육아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다.

 

힘으로 하는 노동이 일상이 되었던 시절에는 삶의 분담이 존재했다. 힘을 쓰는 남자는 일을 해야 했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들은 집안에서 일을 했다. 육아 역시 여성의 몫이었다. 그렇게 구분된 삶은 바뀌었다. 과거와 같은 육체 노동이 일상인 사회가 아니다.

 

육체노동도 존재하지만 다양한 일자리들이 만들어지며 남자와 여자의 경계는 사라져 갔다. 오히려 시대가 변하며 남자보다 여자가 더 회사 일에 적합한 경우들도 많아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여자는 '여자다움'을 강요받는다. 집안일과 육아도 부족해 일까지 덤으로 해야 하니 말이다.

회사 가기 싫어

여성에게는 '슈퍼맘'이기를 요구하면서도 왜 남성은 변하려 하지 않는가? 세상이 변한만큼 역할도 변해야 한다. 여성이 일까지 하는 세상이라면 남성도 집안일과 육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변화 없이 누군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폭력이다. 

 

시대는 변했고 모든 것들은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관습과 습관에 집착한 채 변화를 외면하는 현실이 과연 당연할까? '슈퍼맘'이라는 용어 자체가 폭력이고 강요다. 세상에 '슈퍼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강력한 유리 천장을 깨트리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 외침이 결국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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