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4 11:19

MBC스페셜-봉준호 감독 거장의 품격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었을 그 자리에 드디어 한국인이 서게 되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그를 조명한 <MBC스페셜>은 그래서 흥미로웠다.

 

거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한 자본의 집약체라는 점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은 그래서 힘들 수밖에 없다. 자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영화산업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은 그의 섬세함을 꼽는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은 그가 현장에서 보인 집요함이 만든 결과물이다. 외국 배우들까지 '봉테일'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는 현장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인물이다.

 

작은 소품 하나 놓치지 않는 그의 집요함이 곧 그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소년은 시상식에서 밝혔듯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어린 소년의 꿈을 꺽지 않은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돈 못 버는 자신을 사위로 맞아준 아내의 부모들에게도 감사드렸다.

 

축복이기도 할 것이다. 봉 감독이 감독의 꿈을 꾸던 시절에는 돈 벌기 어렵게 막연하게 꿈만 쫓는 한심한 존재로 인식되던 것이 감독이라는 직업이었으니 말이다. 영화학과가 아닌 연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봉준호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며 그의 열정을 피웠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며 영화감독 봉준호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에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백색인>과 봉준호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는 단편 <지리멸렬>은 그렇게 이미 그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영화 세계는 단편에서 모두 구현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시작부터 화려하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은 어려운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하기 위해 예식장 알바를 하고 버티고 버티며 자신의 꿈을 놓지 않은 그는 그렇게 기회를 잡았다. 첫 장편 영화인 <플란다스의 개>는 당시 외면받았지만 골수팬들을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부끄러워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색다름에 많은 영화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런 봉준호를 진정한 감독으로 이끈 것은 바로 <살인의 추억>이다. 그이 필모그라피는 그렇게 많은 수의 영화는 아니지만 장인의 손길로 만든 작품들로 인해 채워졌다.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 세계는 항상 흥미롭다. 물론 옵니버스 참여나 단편 등을 제외하는 그의 몇 편 되지 않는 장편 영화들은 모두 하나 같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다.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긴장감과 이를 상쇄해서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코믹적 요소를 '삑사리의 미학'을 정의한 프랑스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가는 흥미롭다.

 

봉 감독 스스로는 '삑사리'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프랑스 영화 전문 기자는 이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봉 감독의 작품이 흐르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단어라는 확신이다. 심지어 아름다운 단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삑사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봉 감독 영화를 관통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 에반스는 우리에게 <캡틴 아메리카>로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할리우드 최고 배우가 봉 감독의 <설국열차> 오디션에 참여했다. 당대 최고의 배우로 주목받던 크리스 에반스가 한국 감독의 영화에 오디션을 보는 것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었다. <살인의 추억> 등 봉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크리스 에반스는 너무 당연했다고 회고했다.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에드 해리스, 옥타비아 스펜서, 제이미 벨 등 쟁쟁한 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이례적이다. 모두 주인공을 맡아도 부족하지 않을 존재감을 가진 최고의 배우들이 모두 <설국열차>에 함께 했다. 우리에게는 망가진 여배우와 국내 광고에 출연한 정도로 인식될지 모를 틸다 스윈튼은 쉽게 볼 배우가 아니다.

 

자존심 강한 틸다 스윈튼이 도도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변신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신뢰도는 대단했다. 자신의 분량만 차량하고 트레일러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가 <설국열차> 촬영 당시에는 항상 현장에만 있었다는 말은 봉준호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알 수 있게 한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이런 관심과 존경은 일방적일 수는 없다. 상대가 존경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모두가 인정하고 공인하는 독재자다. 영화 현장에서 감독은 모든 독점적 권리를 가지는 인물이다. 그런 매력에 빠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도 나올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바로 감독이다.

현장에서 화를 낸 것을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배우들을 칭찬하고 단역 배우들마저 챙기는 감독을 누가 싫어할까? 그리고 함께 한 영화 스태프에 대한 존경을 망설이지 않는 봉 감독의 그 인성이 곧 거장을 만드는 힘이었다. 신인이었던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출연을 결정한 송강호의 에피소드는 인간 봉준호의 가치를 일깨운다.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진심을 다해 상대를 배려하는 이를 싫어할 이는 없다. 그 인성은 그렇게 지금도 최고지만 당시에도 최고의 배우였던 송강호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살인의 추억>에 출연하는 이유가 되었다. 외국 스태프에게 사진집을 만들고 메모까지 남기며 존경을 담는 감독을 보는 스태프의 마음은 감동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기생충>이 얻은 성취는 단순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만이 아니다. 현장에서 봉 감독은 한국영화에서는 불가능한 원칙을 사수했다. 표준근로계약을 철저하게 지키며 촬영을 했다. 영화 현장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금액으로 열정 페이를 요구받으며 노동을 한다.

꿈을 담보 삼아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바로 영화나 드라마 현장이다. 그런 곳에서 표준근로계약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곧 돈인 현장에서 철저하게 근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꺼린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면서도 표준근로계약을 지켜냈다.

 

순 제작비 135억이 든 <기생충>은 개봉 5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이미 개봉전 192개국에 팔리며 엄청난 수익을 거둔 이 영화가 칭찬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500억이 넘게 제작비가 들어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악랄할 정도의 노동 착취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봉준호 감독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거장의 품격은 재능이 천부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바라보는 행위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은 진정한 의미의 거장이다. 함께 한 모든 이들을 배려하면서도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 그만큼 자신을 희생하고 집중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내는 봉준호 감독은 대단한 리더가 아닐 수 없다. 

Trackback 0 Comment 0